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400

유턴을 하는 동안 - 강인한

유턴을 하는 동안 - 강인한 좌회전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좌회전 신호가 없다, 지나친다. 한참을 더 부질없이 달리다가 붉은 신호의 비호 아래 유턴을 한다, 들어가지 못한 길목을 뒤늦게 찾아간다. 꽃을 기다리다가 잠시 바람결로 며칠 떠돌다가 돌아왔을 뿐인데 목련이 한꺼번에 다 져 버렸다. 목련나무 둥치 아래 흰 깃털이 흙빛으로 누워 있다. 이번 세상에 만나지 못한 꽃 그대여, 그럼 다음 생에서 나는 문득 되돌아와야 하나? 한참을 더 부질없이 달리다가 이 생이 다 저물어 간다. - (2010년 봄호, 2010.1.16.) - 시집 (시로 여는 세상, 2012년 9월) * 감상 : 강인한 시인. 1944년 3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강동길.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 김환식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 김환식 윤오월 초순인데 모내기 끝난 들판이 야단법석입니다 다잡을 사연들도 없이 윗마을 아랫마을 청개구리들 다 모여 앉아 갑론을박 의견만 분분합니다 더러는 못난 내 흉도 보고 더러는 지들 잘난 체도 하고 또 더러는 가당찮은 입씨름으로 밤 깊은 줄도 잊고 소란을 피웁니다 그런 풍광을 추억하며 나는 좁은 논둑길에 넋 놓고 앉아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아득히 캄캄한 무논만 바라봅니다 - 시집 (황금알, 2022) * 감상 : 김환식 시인. 1958년 경북 영천시 고경읍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북공고 야간부를 졸업하고 포항제철 공사 현장에서 첫 직장을 시작하였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밤에는 포항실업전문학교(지금의 포항1대학)를 다니면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만학도(晩學徒)였습니다...

밥시 1, 7, 8 - 정진규

밥시(詩) 1 - 정진규 이런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 그 밥, 우리나란 아직도 밥이다 밥을 먹는 게 살아가는 일의 모두, 조금 슬프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길 떠난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한 그릇 나의 밥을 나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계셨다 기다리셨다 저승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 나도 이젠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올린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으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분들은 자주 밥알을 흘리실 것 같다 숟가락..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 조기영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 조기영 시를 쓰던 어느 날 거짓말 한번 있었습니다. 밥을 먹어야 하겠기에 돈을 벌러 나갔다가 주머니에 돈이 없어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 급히 나오느라 지갑을 놓고 나왔으니 이천 원만 빌려 달라 했습니다. 그 돈 빌려 집에 오는 길에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날따라 비조차 내렸습니다. 우산 없이 집으로 오는 길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그러나 - 내안에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하지만 마음이 비어 시를 쓸 수 없게 된다면 더욱 슬픈 일이 될 거야 - 이 말 한마디 하고 내게 웃었습니다. - 시집 (살림터, 2000) * 감상 : 조기영 시인. 주부(主夫), 정치를 하는 한 여자의 남편. 1968년 6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 박완서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 박완서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식힐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물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

서울의 게르 - 최금녀

서울의 게르 - 최금녀 게르가 허물어지고 있어요 쫓겨나는 유목민들이지요 재개발을 반대해요 사막을 반대해요 모래바람을 반대해요 구멍을 반대해요 애들이 담장에 찰싹 붙어 담배질하는 여길 너무 좋아해요 깡통으로 축구를 해요 깡통구좌가 바로 이것이에요 저기 있는 허공 캄캄하지요 모래뿐인 저 구멍 속을 들여다봐요 저 엄숙하고 친절한 것들, 내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는 것들, 살아 숨 쉬는 것조차 계량하는 것들, 고요하게 눈 부릅뜨고 내 사소하고 미약한 삶의 질량까지, 부끄러울까, 내 이름자 쓰고 봉함 사막을 반대해요 재개발을 반대해요 - 시집 (한국문연, 2022. 4월) * 감상 : 최금녀 시인. 1942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나서 월남하였습니다. 1962년 에 단편소설 ‘실어기’가 입선하여 소설로 등단하였습니..

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 이성임

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 이성임 나도 알아,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속수무책이라는 걸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자신을 그렇게 향기로 달래고 있다는 걸 그러니, 너도 너무 애쓰지 마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너를 맡겨봐 오늘 하루가 무너져 내리는 건 내일이 차오르기 위해서라고 애써 그렇게 생각해 봐 너도 알잖니, 네가 좌측으로 기우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기울어간다는 것을 우리 모두 농담처럼 조금씩 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너도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 -시집, (현대시학사, 2022.2) * 감상 : 이성임 시인. 1961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2009년 에 ‘단청하늘’외 4편의 시로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경희..

구부러진 못 / 나는 궁금하다 - 전남진

구부러진 못 - 전남진 정신 바짝 차리며 살라고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지면서 못은 그만 수직의 힘을 버린다 왜 딴생각하며 살았냐고 원망하듯 못이 구부러진다 나는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 살아보자고 세상에 박히다 다들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 망치를 돌려 구부러진 못을 편다 여기서 그만두고 싶다고 일어서지 않으려 고개를 들지 않는 못 아니다, 아니다, 그래도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정신을 놓을 때도 있지 않겠냐고 겨우 일으켜 세운 못를 다시 내려친다 그래, 삶은 잘못 때린 불꽃처럼 짧구나, 너무 짧구나 가까스로 세상을 붙들고 잘못 때리면 아직도 불꽃을 토해낼 것 같은 구부러져 녹슬어가는 못 - 시집 (문학동네, 2021.6) * 감상 : 전남진 시인. 1966년 경북 칠곡군 기산면 가시..

여기서 더 머물고 싶다 - 황지우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시집 (문학과지성사.1998) * 감상 : 황지우 시인. 1952년 1월, 전남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 1972년 서울대학교 ..

벚꽃 - 이윤학

벚꽃 - 이윤학 벚꽃 피기 전에 저 많은 분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저 분들 중에 벚꽃이 피기만을 기다린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벚꽃이 피기 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몰려오기만을 누가 기다리기나 했을까 그래도 올 때는 좀 나았겠지요 이쯤 되면 짜증만 앞서겠지요 앞이나 끝이나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겠지요 여기서 주저앉아 살 분은 없을 겁니다 - 시집 (문학과지성사, 2008) * 감상 : 이윤학 시인.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청소부’, ‘달팽이의 꿈’ 등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문학과지성사, 1992), (문학과지성사, 1995), (문학동네, 1997), (문학과지성사, 2000), (문학과지성사, 200..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시선집, (문학세계사, 2017) * 감상 : 김종해 시인. 1941년 7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63년 신인상에 시 ‘저녁’이 당선되었고,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내란’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정음사] [심상] 등의 편집에 참여하며 전문 출판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정진규, 이..

섬광(Sudden Light) -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섬광 -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예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인지는 알 수 없지요. 문 뒤편에 있는 그 풀밭을 알고 있어요, 달콤하게 코를 찌르는 향기, 한숨 소리와 바닷가를 비추던 그 불빛들도. 예전에 당신은 제 사람이었어요. 얼마나 오래 전인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제비가 날아오르던 그 순간 당신은 그렇게 고개를 돌렸고 베일이 벗겨졌지요, 난 예전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도 이랬었나요? 이렇듯 소용돌이치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의 삶, 우리의 사랑과 더불어 죽음의 어둠 속에서도 다시 회복되고 밤낮으로 다시 한번 기쁨을 주지는 않을까요? Sudden Light - Dante Gabriel Rossetti I have been here before, But when or..

봄밤 - 김수영

봄밤 -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며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 (민음사, 이영준 엮음, 2018) * 감상 : 김수영 시인...

어쩌자고 - 최영미

어쩌자고 - 최영미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구나 속 뒤집어놓는, 저기 저 감칠 햇빛 어쩌자고 봄이 오는가 사시사철 봄처럼 뜬 속인데 시궁창이라도 개울물 더 또렷이 졸 졸 겨우내 비껴가던 바람도 품속으로 꼬옥 파고드는데 어느 환장할 꽃이 피고 또 지려 하는가 죽 쒀서 개 줬다고 갈아엎자 들어서고 겹겹이 배반당한 이 땅 줄줄이 피멍든 가슴들에 무어 더러운 봄이 오려 하느냐 어쩌자고 봄이 또 온단 말이냐 - 시집 (창작과비평사, 1996) * 감상 : 최영미 시인. 1961년 9월 25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 선일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그리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2년 겨울호에 '속초에서' 등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래 대담한 발상과 세련된 유머, 자본..

좋은 날이 오면 - 이기철

좋은 날이 오면 - 이기철 좋은 날이 오면 아름다운 서정시 한 편 쓰리라 바라보기도 눈부신 좋은 날이 마침내 오기만 하면 네 맘 내 맘 모두 출렁이는 강물이 되는 기쁜 서정시 한 편 쓰고야 말리라 그때가 되면, 끝없는 회의의 글을 읽고 번민의 숟가락 들지 않아도 되리라 돌 별 하늘 꽃나무만 노래해도 되리라 피 노호 상처 고통을 맑은 물에 헹궈 얼굴 맑은 누이 이름처럼 불러도 되리라 금빛 날을 짜서 만든 찬란한 한낮처럼 오래 가는 메아리처럼, 즐거운 추억처럼 루비 호박 에메랄드 사파이어처럼 잠을 밀어내는 젊은 날의 약속처럼 아, 좋은 날이 오면 잊었던 노래 한 구절 들 가운데서 불러 보리라 이름 부르기조차 설레는 좋은 날이 대문과 지붕 위에 빛으로 덮이기만 하면. - 詩選集, (민음사, 1982) - 시집..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 헨리 F. 리트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Abide With Me - 헨리 프란시스 리트(Henry Francis Lyte)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밤이 빠르게 찾아옵니다. 어둠이 깊어져갑니다. 주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날 돕는 자 더 이상 없고 위로도 떠나 갈 때 어쩔 줄 몰라 하는 불쌍한 저를 도와주세요.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Abide with me; fast falls the eventide; The darkness deepens; Lord with me abide. When other helpers fail and comforts flee, Help of the helpless, O abide with me. 인생의 작은 날이 썰물처럼 순식간 빠져나갑니다. 이 땅의 기쁨들이 희미해져가고 그 영화들이 지나..

커밍아웃 / 신이 앓고 계시다 - 이재무

커밍아웃 - 이재무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궁둥이에 꼬리가 생겨난 것이다. 내가 원숭이로 퇴화라도 했단 말인가? 기가 막혔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는 궁리에 몰두 했다. 꼬리가 난 사실이 알려지면 가택연금을 당할지도 모른다. 나는 꼬리를 말아 감추고 하루를 시작했다. 꼬리가 생긴 뒤로 언행에 주의가 따랐다. 차라리 꼬리를 내놓고 살까? 불쑥 충동이 일기도 했지만 닥쳐올 후폭풍이 두려워 가까스로 억누르며 살았다. 그렇게 꼬리를 감추는 일이 습관이 되어 갈 즈음 나는 사람들이 의심스러웠다. 저들도 꼬리를 몰래 감추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한번 의심이 들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꼬리를 가지고 있다. 꼬리가 없는 것처럼 굴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꼬리가 발각..

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 크리스 디 버그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 Chris de Burgh There once was a king who called for the spring for his world was still covered in snow But the spring had not been for he was wicked and mean In his winter fields nothing would grow And when a traveller called seeking help at the door only food and a bed for the night He ordered his slave to turn her away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Oh, on an..

나목 - 신경림

裸木 - 신경림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 시집, (창작과 비평사, 1993) * 감상 : 신경림 시인. 1936년 4월,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습니다. 노은초등학교, 충주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56년 에 시 ‘..

설날 아침에 / 우리네 새해 아침은 - 김종길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고대신문(1961)에 처음 게재, 김종길 시집 (삼애사, 1969) * 감상 : 김종길 시인, 영문학자. 1926년 11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