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61

늙은이

90이 넘은 내 선생님은 내가 환갑을 맞았다니까 ‘늙은 젊은이’라고 해야 하나 ‘젊은 늙은이’라고 해야 하나 망설여 진다고 하셨다. 늙었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60에 비해선 70이 70에 비해선 80이 더 늙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단순 연령은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피아니스트 Rubinstein은 95세에 타계했다. Time 에 난 그를 애도하는 글의 끝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다.” 였다. 앞서 말한 존경하는 나의 스승은 이제 90을 넘기셨다. 그런데도 그의 인품은 더욱 고매해져가고 그의 사상은 점점 더 위대해져 간다. 또 그의 총명성이나 기억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번은 제자 3회가 선생님을 모시고 얘기를 나누었다. 자연히 옛 얘길 하게 되었고 옛 동창들 얘기가 나왔..

광고

광고란 문자 그대로 넓게 알리는 일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사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인데 요즈음 보면 대체로 지나친 과장 허위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샴푸 광고에서 나오는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은 실제로 샴푸로 감은 머리가 아니고 며칠 머리를 감지 않아 머릿기름이 흐르는 머리카락임을 누구나 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허위인데 생각보단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혹하니 기이하다. 가령 환자들은 약광고에, 여인들은 미용품에, 노인들은 젊음을 찾을 수 있다는 광고에 혹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보면 약한 자들을 파고드는 게 광고다. 그래서 혹하는 약자들이 그래도 나보다는 강한 이들이다. 나는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가 짧아졌다. 그때 그 지역에 유명한 기독교 부흥사가 있어 모든 병을 고친다며 TV 에..

기적

일본에서 수십년 일하다가 은퇴하는 한 기관사의 고백을 기억한다. 그는 그의 삶을 기적이라고 하였다. 오랜 기관사 생활에서 한번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출발 전에 안전을 위해 기도하였고 도착하면 감사의 기도를 빼지 않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아니냐고 하였다. 사실 산다는 것은 곧 기적이다. 나는 5남매 중 하나였는데 전쟁통에 다 죽고 나만 남았다. 그야말로 기적인데 그 기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고 있다. 고교시절의 폐결핵은 나의 삶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이 병으로 고생하며 보냈는데 결국 치료 되었다. 이 기적의 의미는 무엇인가. 12살에 아버지가, 스무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남은 돈 (물려 받은 유산이랄..

입장 차이

요즈음에는 공공건물 공공시설이 많아서 혹 길 가다가 급히 용변이 보고 싶어도 문제가 없다.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에는,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참으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어디 식당이라도 눈에 띄면 화장실 사용허가를 부탁하게 되는데 . 그땐 참 미안스러운 마음으로 묻게된다. 미국 유학시절에 피자집에서 주말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곧 잘 지나가던 이들이 차를 세우고 들어와 화장실을 묻곤 했다. 그리고는 사용 후 고맙다며 나가곤 한다. 시간제로, 주문 받고, 설거지, 청소를 하는 나로서는 피자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 중에 이 화장실만 사용하고 가는 이들이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게 아무 부담도 안 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쪽을 가리켜 주는 것으로 끝이..

내가 만난 미국사람들

세상 어디엘 가나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또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나는 내가 만난 미국인들 중에 그들의 친절이나 사는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1972년 처음 유학을 간 seattle의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지도교수로 만난 분은 50대 초반의 Dr.Jack Kittel 이었다. 처음 만나 나의 엉터리 영어에서 내가 겪을 모든 어려움을 다 예견하시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의사를 확인해 가며 나의 학업 계획을 적절히 짜 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문제가 있으면 들리라고 하셨다. 실제로 그렇게 하며 학교생활을 하였다. 독신자의 유학생활 중 불편한 것은 긴 휴가철이다. 추수 감사절, 성탄절, 부활절 둥의 기간에는 학교의 급식..

등산

가까운 선배의 조언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그것도 무슨 명산을 일부러 찾아다닌 것이 아니고 집에서 가기 편한 북한산엘 주로 다녔다. 한 주에 두 번 혹은 세 번씩은 꼭 다녔으니 북한산만 해도 적어도 천 번은 넘게 다닌 셈이다. 주위에서는 한 곳만 다니면 지루하고 싫증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드문 드문 다니면 같아 보일지 몰르지만 아주 자주 다녀 보면 갈 때마다 달리 보이는 게 산이다. 어떤 때 연 이틀을 가 봐도 다른 것을 본다. 작은 꽃 봉오리가 커졌다든가, 혹은 어제까지 매달려 있던 잎이 떨어졌다든가 등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갈수록 새롭고 볼수록 아름답고 좋은 게 산이라 마치 고전음악과도 같다. 늘 같은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기는 이유는 또 있다. 늘 다니는 ..

기도

우리 부모님과 누나와 나는 1947년 여름에 월남하였다. 우리는 서울 친척집에서 임시로 기거하였다. 일곱 살이던 나는 어느 날 그 집 어디였던가, 화경(돋보기)을 하나 주웠다. 그것으로 무언가를 태우며 노는 것이 신기하여 큰 즐거움이었다. 한데 어느 날 엿 장수가 지나가며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엿이 너무도 먹고 싶어졌다. 생각하다가 가지고 놀던 화경을 들고 가서 엿과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행복하게도 화경과 엿을 바꾸어 갖고 누가 볼까봐 혼자 숨어서 다 먹었다. 그리고는 내가 남의 화경을 가지고 엿을 바꾸어 먹은 것을 깨닫고 불안에 떨기 시작하였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자랐다. 그래 기도하는 것을 알았고 죄를 지으면 지옥간다는 것도 알았고 죄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

집 칠

유학시절 미국생활에 좀 익숙해졌을 때 방학을 이용해서 집칠(house painting)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기본적인 것을 배웠다. 좀 알듯 싶을 때 몇 친구를 동료로 해서 집칠업을 개업(?)한 것이다. 먼저 신문에 광고를 낸다. 전화가 걸려오면 그 집에 가서 견적을 낸다. 이 부분이 어려운 부분이다. 집의구조, 벽의 자질, 페인트의 종류 색깔 등을 고려해서 페인트의 양 , 칠하는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해서 값을 말한다. 주인은 몇 사람의 업자에게서 견적을 받고 선택하게 된다. 처음엔 실수 투성이었다. 거의 한 달이 나 걸릴 건물을 삼일에 한다고 했다. 주인이 갸우뚱하면서 우리에게 일을 맡겼다. 하루 해보니 어림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 팽개치고 도망해 버렸다. 칠하는 ..

자리와 일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월요일 아침마다 애국조회라는 것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생 전원이 운동장에 모여 국기에 경례하고 애국가 부르고 교장선생님 훈시 듣고 하는 주례행사였다. 그 모임에서 어려운 것은 학생들을 정렬시키는 일이었다. 약 2000명되는 학생들을 정렬시키기 위해 체육선생님이 교단에서 구령을 하곤 하였다. 우리학교에는 두 분 체육선생님이 계셨다. 한 분은 일본에서 공부한 멋진 구령을 하는 키가 상대적으로 큰 분이었고 또 한 분은 평범하고 작은 체격의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이 두 분을 각각 큰 체육, 작은 체육으로 불렀다. 이 두 분이 월요일마다 번갈아 학생들의 정렬을 맡아 지도하셨다. 그런데 꽤 늠름한 모습을 한 큰 체육의 멋진 구령에는 학생들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좁은 간격 우로 나란히,”..

꾸중과 칭찬

사람은 칭찬으로 성장하고 꾸중으로 사회적응력을 키운다. 교육하는 사람은 이 두면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꾸중은 점잖은 표현이고, 사람은 ‘욕’먹는대 익숙해야 한다. 나는 학교생활에서 비교적 모범생으로 자라면서 뭐 그리 큰 꾸중 듣거나 매를 맞으며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살아오면서 어려운 때를 많이 겪는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대충 무시해도 될 경우에도 자존심 상해하고 속이 상해하곤 한다. 아무덕도 득도 안 되는 태도다. 학교의 모범생이 사회의 낙오생이란 말을 흔히들 하곤 한다.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우선 학교의 모범생이 군대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또 학교에서 교장이 교사를 구둣발로 차던 시대에 모범생이 사회생활을 견디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유학시절에 소위 한국에서 일류 학교만..

고무풍선

어려서 학교 운동회 날에는 여러 경기 중에 고무풍선 불기가 있었다. 누가 제일 크게 부느냐의 시합인데 나는 이 고무풍선 부는 것이 늘 불안 하였다. 우선 흐늘 흐늘 한 입구를 찾아 입으로 바람 넣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공기가 들어가기 시작하여 풍선이 커지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승을 못할까봐서가 아니라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 싫어서였다. 경기에서 뿐아니라 평소에도 풍선을 불때면 마찬가지로 불안하였다. 한데 운 좋게 터뜨리지 않고 크게 불고 나면 자랑스러웠다. 그 풍선의 공기를 빼고 다시 불어도 먼저 불었을 때의 크기가 되기까지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어서 활발히 음악활동을 하는 자랑스런 친구가 있다. 그는..

남 생각

어릴 적 피난길에서의 일이다. 쌀을 지고 기약 없는 피난을 가던 길이라 쌀을 아끼고 아껴 끼니라도 때우고 있었다. 걸어서 가는 피난길이라 갈수록 지쳐 있었고 나는 늘 배가 고팠다. 그 날도 날 이 저물어 어찌어찌 어느 집 문간방을 빌려 하룻밤 묵기도 하고 어머니는 저녁을 지으셨다. 허겁지겁 내 몫을 다 먹고도 성이 안찼다. 어머니는 눌은 밥에 물을 부어 내게 주셨다. 배도 고팠지만 워낙 좋아하는 눌은 밥이라 널름 받아들고 먹으려 했다. 그때 아버지가 “내가 그걸 먹으면 어머니는 무얼 먹겠니?” 하셨다. 부끄럽고 서러웠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늘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시지 않으셨다. 나는 그때 어머니는 남는 것이 없으면 굶고 계시다는 걸 몰랐다. 대학시절 입주 가정교사를 하던 때였다. 아주 잘 사는 집이었..

정도(程渡)와 수준(水準)

정도는 일반적으로 양(量)의 도수를 나타내는 말이고 수준은 질(質)의 기준을 나타내는 말이다. 정도와 수준을 지킨다면 적어도 법적 도덕적 기준의 평가에는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 중 알라딘의 램프라는 이야기를 모두 기억한다. 알라딘이 마왕이 갇혀있는 항아리를 건져올린다. 뚜껑을 열자 나타난 마왕은 알라딘을 위협한다. 그는 “언제 언제까지나를 구해주면 무엇이나 다 해 주려고 했으나 그 기간이 지나고 나서는 구해주는 놈은 죽이려 했다.”고 한다. 기다리는 정도가 지나쳐 화가 난 것이다. 기다림에 정도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 버릇없음도 정도 문제다. 할아버지 수염 잡아당기는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 나는 사람에게 장난끼, 유치한 면,악한 면, 미친 기질 등이 있어야 사람답다고 여기지만 그것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