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자리와 일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25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월요일 아침마다 애국조회라는 것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생 전원이 운동장에 모여 국기에 경례하고 애국가 부르고 교장선생님 훈시 듣고 하는 주례행사였다. 그 모임에서 어려운 것은 학생들을 정렬시키는 일이었다. 약 2000명되는 학생들을 정렬시키기 위해 체육선생님이 교단에서 구령을 하곤 하였다. 우리학교에는 두 분 체육선생님이 계셨다. 한 분은 일본에서 공부한 멋진 구령을 하는 키가 상대적으로 큰 분이었고 또 한 분은 평범하고 작은 체격의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이 두 분을 각각 큰 체육, 작은 체육으로 불렀다. 이 두 분이 월요일마다 번갈아 학생들의 정렬을 맡아 지도하셨다.

 

그런데 꽤 늠름한 모습을 한 큰 체육의 멋진 구령에는 학생들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좁은 간격 우로 나란히,” “열중 쉬엇,” “차렷.” 등 멋진 구령에도 학생들의 줄은 뱀같이 꾸불꾸불 하였고 웅성웅성하며 좀처럼 정렬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한데 작은 체육의 경우는 그렇지지가 않았다. 짝달막한 시골 아저씨풍의 작은 체육이 교단에 서면 벌써 학생들이 슬금슬금 움직여 줄을 맞추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 두 번의 “열 중 쉬엇,” “차렷.” 하면 정렬 끝이었다. 그 이유를 아직도 분명히 설명할수는 없다. 그저 지도자의 자질이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구나 느낄뿐이다.

 

의학에서 말하는 ‘병’은 몸의 어느 부분이 있다고 느끼면 그 부분에 병이 있다는 것이란다. 건강하면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고 산다. 하나, 가령 발가락 하나에 신경이 쓰이면 발가락에 병이 생긴 것이다. 중국 속담엔 ‘혁대, 신발, 여자는 있다는 것을 몰라야 맞는 것’ 이라는 말이 있다. 발에 신경이 쓰이면 그 신발은 맞지 않는 신이다. 여자가 있어 자꾸 신경이 쓰이면 내 여자가 아닌 것이다. 요순(堯舜)시대에는 너무 태평해서 백성들이 임금이 누구인지 몰랐다지 않는가. 이런 것들이 자리에 앉은 ‘윗사람’들의 자세라고 배웠는데 요즈음에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우선 거들먹거리고 으스댄다. 혹은 일을 한답시고 ‘정리’ 해댄다. 그래서 남을 괴롭힌다. 내가 있는 학교에서 어떤 자는 학과장이 되어서는 우선 조교부터 쫓아내고 바꾸려는 자가 있었다. 자신이 없어 불안을 느낀 탓이리라. 또 ‘힘’을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Lincoln의 “사람을 판단하려면 권력을 주어 보아.” 는 말은 명언이다.

 

나는 선부(禪父)에 나오는 얘길 좋아한다. 자기(子旗)라는 이가 자리를 맡아 힘써 일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가 그만두고 후임으로 그 친구 자천(子賤)이 그 자리에 앉았다. 늘 놀고 술만 마시는 것 같은데 일이 잘 되어갔다. 친구인 자기가 이유를 물었다. 자천은 “자네는 힘을 쓰고 나는 사람을 썼네.” 라고 하였다. 요즈음 말로하면 직권으로 무리한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모두 협력해서 같이 일해야 함을 시사하는 고사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을 잡거나 어느 자리에 앉으면 먼저 ‘뭔가 하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 출세하여 기회를 잡았으니 뭔가 해서 이름을 남기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우리 속담의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는 뜻을 잘못 이해한 이들이다. 이름은 남기려해서 남는 게 아니고 뒷 사람들이 평가해서 남을 수 있는 것 뿐이다.

 

‘일은 수영하듯 하라’ 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몸을 물에 맡기고’ 나아갈 뿐인 것이다.

 

나의 스승은 “부스러기 일을 잘하라.” 고 성경(마 15: 막 6: 눅 9 : 요 6:) 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시곤 하셨다. ‘눈에 띄는,’ ‘이름이 나는’ 일 보다 누구도 모르는 ‘작은 일’을 조용히 하라는 말씀이다]. 또 어떤 분은 사동(使童)에게 칭찬들어야 성공적인 직장인이라고 하셨다.

 

남강 이승훈(南岡 李昇薰) 선생의 일화가 새삼스럽다. 오산 교장시절의 일화다.  아마 생물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실습을 하며 거름을 주어야 식물이 자란다하여 생물교사가 똥지게를 지고 거름을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침 지나가던 남강선생이 연유를 묻고는 벌컥 화를 내며 “선생이 똥지게를 지면 되나.” 학생들을 가르쳐야지 똥지게 이리주게. 똥지게는 교장이나 지는거야.“ 하였단다. 과연 남강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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