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꾸중과 칭찬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24

사람은 칭찬으로 성장하고 꾸중으로 사회적응력을 키운다. 교육하는 사람은 이 두면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꾸중은 점잖은 표현이고, 사람은 ‘욕’먹는대 익숙해야 한다. 나는 학교생활에서 비교적 모범생으로 자라면서 뭐 그리 큰 꾸중 듣거나 매를 맞으며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살아오면서 어려운 때를 많이 겪는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대충 무시해도 될 경우에도 자존심 상해하고 속이 상해하곤 한다. 아무덕도 득도 안 되는 태도다.

 

학교의 모범생이 사회의 낙오생이란 말을 흔히들 하곤 한다.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우선 학교의 모범생이 군대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또 학교에서 교장이 교사를 구둣발로 차던 시대에 모범생이 사회생활을 견디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유학시절에 소위 한국에서 일류 학교만 다닌 학생들이 좌절하여 자살하거나 정신병에 걸리는 경우도 보았다.  모두 ‘욕’ 과 ‘좌절’에 저항력이 없어서였다. ‘욕’과‘매’는 사회생활에서의 저항력을 키우는데 그지없는 좋은 약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 모교에 부임하였다. 그 때의 생각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 반장 부반장하는 지도자급 학생들을 ‘욕’으로 훈련하고 소위 문제아들,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을 격려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걸핏하면 반장을 꾸짖고 매질도 하였다. 뭐 트집을 잡자면 얼마든지 있었다. 반에 문제가 생기면 반장 잘못이라고 매를 들 수 있었다.  그러면 반드시 무섭게 꾸짖고 매도 들었다. 학부모의 항의도 받았고 교장 선생님의 주의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내 생각을 실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날이 지남에 따라 욕먹고 매맞은 녀석들이 더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 같고 어떤 형태로든 잦은 접촉이 정을 더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모여 찾아와서는 옛날 매맞던 이야기하며 떠들곤 한다.

 

대신 장난꾸러기, 문제아 등은 철저히 보호(?)해 주었다. 한 녀석은 도무지 공부는 안하고 장난이 심해서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그 학교는 기독교 학교여서 조회, 점심, 종례 때에 간단한 예배 혹은 기도를 드렸다. 한 번은 그 녀석에게 기도를 시켰다. 제법 말이 되게 기도를 잘 하였다. 크게 칭찬하고 반의 종교부장을 시켰다. 처음엔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하더니 차차 종교부장 일을 점잖게 잘하고, 장난도 줄고 성적도 올랐다. 그는 그 후 미국유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금도 교육사업을 잘 하고 있다.

 

그와 같은 학년 학생들에게 있었던 사건이다. 시험이 끝났는데 내가 담임한 반 학생 10여명이 부정행위로 정학을 맞게 된 것이었다. 이런 일은 당한 반, 담임교사에게는 아주 큰 일이었다. 내막을 알아 보았다. 성적이 나쁜 녀석 하나가 남의 것을 보고 답안을 써서 성적이 잘 나온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기고 교과 담담 선생님이 불러서 추궁하였다. 어린아이 (중학교3학년)라  솔직히 고백하고 만 것이었다. 그 학교 교칙에는 부정행위를 고백 혹은 인정해도 정학처분을 받게 되어있었다. 그 학생은 당연히 정학이었고, 이상스레 성적이 좋아진 문제아들도 불려가 고백을 하고 모두 정학처분을 받은 것이었다.  담임도 모르는 새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부정행위는 미웠으나 가뜩이나 성적이 나쁜 녀석들이 정학까지 맞게 됐으니 그들의 졸업, 상급학교 진학 등이 큰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들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수업이 있는 반마다 들어가서 사실을 설명하고 ‘솔직한’ 학생들을 구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호소(?) 하였다. 그리고 이번 시험기간중 한 문제라도 보고 쓴 사람은 이름을 적어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고백’을 받은 학생이 200명이 넘었다. 나는 200여명 학생명단을 부정행위한 학생으로 학생과에 제출하였다. 결국 난리가 나고 교장 선생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 반의 정학 맞은 학생들의 처벌을 취소하셨다. 그때의 그 녀석들을 만나면 지금도 신이 나서 그 얘기다.

 

그때 중학교는 추첨으로 학생을 뽑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이 같을수가 없었다. 중학교 3학년에 제이름도 제대로 못쓰는 녀석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습효과를 높인다고 능력별 분반을 하였고 나는 제일 못하는 C반을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한글도 제대로 못쓰는 녀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저 쉬운 것을 재미삼아 놀이삼아 하도록 수업을 진행 하고 있었다. 한데 그 중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성적은 형편없으나 총명하였다. 그리고 주판을 잘 놓았다. 가망이 있어 보였다. 수업시간에 들어가면 그 녀석 칭찬을 먼저하고 수업을 하였다. 매사를 칭찬하고 심부름도 시키고 하였다.  매 학기말에 배치고사를 보아 다시 우열분반을 하였는데 그 학생은 다음 학기에 바로 A반에 배치되었다.

 

나는 유학시절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의사의 말에 절대 순종하였다. 환자가 지켜야 할 사항을 꼭 지키고 회복을 위한 주의 사항도 반드시 지켰다. 통증이 심하니까 진통제를 권하면서 사실은 진통제가 회복을 더디게 한다고 하여 나는 진통제 없이 통증을 참기도 하였다. 그래 나는 ‘좋은 환자’ 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날이 가면서 정말 회복이 빨랐다. 의사는 다시 ‘놀라운 회복력(wonderful healing power)'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사실 나는 예상외로 빨리 회복되어 퇴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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