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집 칠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25

유학시절 미국생활에 좀 익숙해졌을 때 방학을 이용해서 집칠(house painting)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기본적인 것을 배웠다. 좀 알듯 싶을 때 몇 친구를 동료로 해서 집칠업을 개업(?)한 것이다. 먼저 신문에 광고를 낸다. 전화가 걸려오면 그 집에 가서 견적을 낸다. 이 부분이 어려운 부분이다. 집의구조, 벽의 자질, 페인트의 종류 색깔 등을 고려해서 페인트의 양 , 칠하는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해서 값을 말한다. 주인은 몇 사람의 업자에게서 견적을 받고 선택하게 된다.

 

처음엔 실수 투성이었다. 거의 한 달이 나 걸릴 건물을 삼일에 한다고 했다. 주인이 갸우뚱하면서 우리에게 일을 맡겼다. 하루 해보니 어림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 팽개치고 도망해 버렸다. 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온통 흘리고 벽보다 몸에 더 많은 칠을 하는 지경이였다.  머리도 얼굴도 모두 페인트 투성이가 되곤했다. 도구나 기구의 사용도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벽에 사다리를 세워 놓고 페인트 통을 가지고 올라가서 벽 윗부분을 칠하고 있었다. 한데 사다리를 잘못 세워서 사다리가 미끄러지면서 페인트 통은 내동댕이쳐지고 나는 사다리와 함께 떨어졌다. “꽈당” 소리가 나고 아픈 것은 말할 수도 없었다.  그 때 뒷벽을 칠하고 있었는데 집 앞 잔디에는 그 집 주인인 노부부가 앉아 쉬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에 놀라 우리가 일하는데로 오는 기색이었다. 와서 보면 벽은 긁히고 잔디엔 온통 페인트가 덮여 있어 기절할 것이 뻔했다. 나는 아픈것을 참고 벌떡 일어나서 아무일도 없는 양 “랄랄랄라”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향해 마주 갔다. 노인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아무 일도 아니라며 태연히 딴청을 부렸다. 노인이 다시 쉬던 의자로 돌아가고 나도 뒷켠으로 와서 펄썩 주저앉아 아픈 곳과 상처를 주무르고 씻고 하였다.  같이 일하던 한 친구는 호스로 잔디 위의 페인트를 씻어내고 한 친구는 사다리를 점검하고 벽칠을 다시 하고 하였다.

 

미국인들은 신기하리 만큼 일꾼을 신뢰하였다. 물론 광고에는 경험있는 페인터라고 했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인데 절대적으로 신뢰하는데는 당황스럽기 조차 하였다. 대신 성실하게 일을 하였다. 한 번은 칠하기로 한 집에 가서 일을 하려니 미처 못 본 일거리가 있었다. 그 집 벽 주위로 탱자나무가 있는데 이 탱자나무들이 벽에 붙어있어 그 부분을 칠 할 수 가 없었다. 실수 했구나 싶지만 별수 없었다. 밧줄과 두터운 천을 빌려다 탱자나무를 무더기 묶고 덮고 하였다. 벽 밑 썩은 곳을 긁어내고 마르면 유성 페인트로 초 벌칠을 하고 후에 제색을 칠하였다. 자연히 견적기간보다 며칠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수니까 받아 들이기로 했다. 예정보다 긴 기간에 끝내고 주인에게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아직도 그 주인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You underestimated. I don't want to be unfair."하며 다시 견적을 내라고 하였다. 그래 며칠 분을 첨가하였더니 청구된 액수에 소위 보너스까지 더 주었다. 이들의 철저한 신뢰에 감탄했고 공평함에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일체 일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 했다고 해야 비로소 둘러 보고 만족해하며 칭찬하고 의례 돈도 더 주곤한다.

 

또 한가지 미국인들의 놀라운 점은 집의 색깔을 선택 할 때 이웃집 색깔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웃집들의 색깔, 주위 환경(숲이 많다든가, 연못이 있다든가 등)을 고려해서 색 선택을 의뢰하기도 하고 의논해 오기도 한다.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남과 함께 사는 그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태도이다. 이 나라가 이래서 강국이구나 느끼곤 하였다.

 

나는 집칠을 하면서 ‘노동의 기쁨’을 알았다. 아무생각 없이 칠을 해 나간다. 쉬운 곳도 있고 구석진 어려운 곳도 있다. 처마 같은 곳을 올려다보며 칠하다 페인트가 눈에 들어가면 온 세상 이 그 색으로 보인다. 한 여름 땡볕에서 일하다보면 목이 잠기고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리창틀 칠하기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 일의 진척 만큼 돈을 버는 것이다.  일하다 점심을 펴놓고 먹으면 그 맛은 천하 일미다. 이튿날도 일거리만 있으면 지친 몸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먹고 누우면 눕는 순간 곯아떨어진다. 그리고 일이 다 끝나서 돈을 받고 나면 마음이 풍성해 진다. 단순 노동의 기쁨을 만낀하는 순간이다. 이때에 나는 유행가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같은 행동을 계속 해야하니 지루하기도 하고 몸은 힘들다. 지루함과 힘든 것을 잊기 위해 노래를 불러보려고 하였다.  두고 온 모든 정든 것들을 생각하며 가곡을 불러 보려했으나 일하는 일하는 자세로서는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찬송가도 물러보려 했으나 역시 어려웠다. 되는 노래는 유행가 밖에 없었다. 어떤 자세 어떤 위치에서도 쉽게 소리가 나오는 노래가 유행가였다. 왜 노동자들이나 막일꾼들이 유행가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유행가야말로 가난하고 단순한 삶을 사는 이들의 좋은 위로임을 알았다.

 

집칠을 하면서, 주위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단순한 색깔로 내마음도 칠해 보려고 노력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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