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오해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26

해는 무지해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많은 것을 오해하고 또 오해 덕에 살기도 하고 혹은 해를 입기도 한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말도 못난 자가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오해에서 즐겁게 살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30년 전쯤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소양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때 어느 강사의 미국 여자들의 상냥한 미소를 오해하지 말라.” 던 말을 기억한다. 지금은 그런 오해를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들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있는 학교는 정문에서 들어오다가 의자들이 있는 쉼터가 있다. 나는 가끔 학생들에게 그 곳은 학교 초입이고 외부인들이 학교에 대한 첫인상을 받는 곳이니 좀 예쁘고 단정한 학생들이 앉아 있어야 옳다.”고 하곤 한다. 헌데 앉아있는 학생들은 대체로 예쁜 것과는 관계가 멀다. 하긴 예쁜 여학생 들이면 거기 앉아있을 짬이 없을 것이다. 또 수업시간에 수업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여학생을 몹시 꾸짖는 경우가 있다. 모욕적인 언사까지 쓰면서 따끔하게 꾸짖으면 몹시 무안해 하곤 한다. 그러다가 끝말로 그래도 얼굴이라도 반반하니 망정이지 인물까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니?” 하면 지금까지의 무안감과 불쾌감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모습을 본다. ‘미인박명이라고 했지만 그건 추녀들을 위로하는 말일 뿐이다. 추녀에 관한 얘기는 없고, 모두 미인만 가지고 얘기들을 하게 마련이고, 인생이란 어차피 비극적인 면이 있게 마련이니까 미인이 박명해 보일 뿐이다.

 

의사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병원에 와서 큰 병을 발견하고는 당황하여 평생에 병원 한 번 안 다녔는데. . . .” 하면서 낙담하는 환자들이 있단다. 이들은 병원에 안 다니면 건강하다고 믿는데, 그것이야말로 큰 오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체격이 좋은면 건강한 걸로 알고 산에서 지르는 고함소리가 크면 건강하고 정력이 강한 것쯤으로 아는 것같다. 세칭 일류학교 출신은 일류인간이고 이류학교 출신은 이류인간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참으로 큰 오해다. 가령 같은 학교에 교수로 있는 두 사람이 하나는 일류학교 출신이고 하나는 이류학교 출신이면 누가 더 성장을 했는가는 자명하다. 이류학교 출신이 와 있는 곳에 일류학교 출신이 와 있으면 그 일류학교 출신은 그 동안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살아 가는데 있어 일류학교 나와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일류인생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무조건 충성하며 충신이고 무조건 부모 말을 따르면 효자인 줄 착각한다. ‘바른 것에 입각해서 충성해야 충신이고 옳게 효도해야 효자다. ‘무조건 따르는 의리깡패 사회의 의리(?)’ 일 뿐이다. 그런 의리는 올바른 의리가 아니다. 형제간의 관계에서나 부부 관계에서나 그 외 어떤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제 식으로 잘했다고해서 상대방에게 잘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오해일 뿐이다. 여우 학 대접하듯 먹지 못하는 환자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격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법이나 규정도 그 법철학이나 배경을 알고 지켜야 바로 지키는 것이다. 흔히 뭐든 크고 길고 있고 많으면 좋은 줄 아나 꼭 그렇지도 않다. 공룡은 너무 커서 멸종했다. 설교나 기도는 잘 하지 못할 바엔 짧기라도 해야 한다. 무좀이나 비듬 따위는 없는 편이 낫고 쓸데 없는 간섭도 없는 편이 낫다. 요즈음 교육의 문제를 가지고 떠들고 인적자원부에서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무슨 지시를 내리고 하지만 정작 필요 없는 것은 바로 인적자원부다. 거기 속해 밥 벌어먹고 거들먹거리는 이들을 위해서는 있어야 할 부처일지 모르지만 정작 교육을 위해서는 필요 없는 부처이다. ‘교과서란 도대체 무엇인가. 고리타분한 교장의 훈화는 왜 필요한가. 그것도 없어야 할 요소이다. 교육도 시장원리에 입각해야 한다는 시장원리도 문제지만, 무슨 간섭이란 말인가. 많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대로 시간이 많다고 일을 많이 하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둥거리고 필요없는 짓을 더 할 뿐이다. 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학자인양 으스대는 자들도 있다. 돈도 많으면 죄를 범할 뿐이다. 고교시절 선생님 한 분은 돈은 좀 불편할 정도로 부족한 편이 행복하다.” 고 했다. 맞는 말씀이었다.

 

어떤 경우는 자위(自慰)로 하던 말이 진리처럼 되어 버린 경우도 있다. 60년대 인구조절을 위해 만들어낸 표어 딸이 더좋아가 좋은 예이다. 그러다가 상급학교 진학경쟁이 심해지자 낙제생들을 위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입시 때가 되면 의례 신문 한 난에는 에디슨, 아인슈타인을 들먹이며 공부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며 낙방생들을 위로하는 글이 실리곤 하였다. 그러다가 차차 벤처니 연예계니 하며 한 기능 만으로 돈 버는 기회가 생기면서 공부는 못해야성공하는 것으로 몰아갔다. 이 시대는 공부를 못해야 잘 살고 성공하는 시대로 알게 되었다.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이라고 하고 적을 모르면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1996년 올림픽에서 북한의 유도선수 계순희(16)는 일본의 84전 전승의 전설같은 선수 다무라 료꼬(21)를 이기고 금메달을 땄다. 계순희는 결승전에서 다무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나왔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허리 굽혀 인사 잘하면 겸손한 사람이고 친절한 사람으로 안다. 그래서 백화점에서는 허리굽히기를 가르친다. 그러나 사실 겸손은 외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신을 경외하는 마음이고 그래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이다. 친절도 사랑을 가지고 상대를 도우려는 마음과 태도인 것이다.

 

안내를 감독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교회에서 창 가까운 밝은 곳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실내 광도가 낮아 안쪽으로 앉으면 글씨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안내하는 이가 안으로 들어가 앉으라고했다.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일어나 나오고 말았다. 그 안내인은 자기의 할 일을 오해하였다. 시력이 나쁜 이에게 밝은 곳을 안내하지는 못할 망정 쫓고 있었다. 자리 안내인은 자리 못 찾는 이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책임을 가질 뿐이지 공연히 여기 저기 자리를 지적하며 정리하려는 감독관이 아니다.

 

인격적 대우를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어느 경우에나 차근차근 말로 하는 것을 흔히 인격적 대우로 생각한다. 사실은 인간을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이 인격적 대우이다. 그러니까 때에 따라 감정을 보여 화를 내고 고함을 치는 것이 오히려 인격적 대우가 된다. 검소(儉素)와 인색(吝嗇)을 혼동하여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어느 높은 자리에 있는 이가 응접실을 검소하게 꾸민다고 냉난방 장치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가 검소한 이라고 창찬들을 하였다. 그런데 사실 그 응접실은 그 사람 개인의 방이 아니고 그 응접실을 이용해야 할 모든 사람들의 방이다. 그 검소하다고 칭찬받은 사람은 검소한 것이 아니고 인색했던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나를 슬슬 피하는 눈치면 존경하고 어려워서그러는 걸로 해석했다. 또 어려움 없이 따르면 내가 인자해서그렇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친구들 대답은 당장 철들라.” 였다. 피하는 것은 꼴보기 싫어서일 것이고 따르는것은 우습게 봐서그럴 것이라는 거였다.

 

때론 오해도 필요한지 모를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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