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겨울밤 - 이재무

석전碩田,제임스 2023. 1. 18. 06:36

겨울밤

- 이재무​

싸락눈이 내리고 날은 저물어
길은 보이지 않고
목쉰 개 울음만 빙판에 자꾸
엎어지는데 식전에 나간 아부지
여태 돌아오시지 않는다
세 번 데운 황새기 장국은 쫄고
벽시계가 열한 시를 친다
무거워 오는 졸음을 쫓고
문고리를 흔드는 기침 소리에
놀라 문 열면
싸대기를 때리는 바람
이불 속 묻어둔 밥
다독거리다 밤은 깊어
살강 뒤지는 생쥐 소리
서울행 기적 소리 들리고 오 리 밖
상엿집 지나 숱한 설움 짊어지고
된바람 헤쳐오는 가뿐 숨소리
들린다 여태 아부지는 오시지 않고

- 시집 <섣달 그믐>(청사, 1987.12) (천년의 시작, 2003)

* 감상 : 이재무 시인.

1958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습니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1983년 <삶의문학>, <실천문학>, <문학과사회>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집으로 <섣달그믐>(청사, 1987),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문학과지성사, 1990), <벌초>(실천문학사, 1992),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 1996), <시간의 그물>(문학동네, 1997), <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푸른 고집>(천년의 시작, 2004), <저녁 6시>(창작과 비평사, 2007),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화남, 2007), <경쾌한 유랑>(문학과지성사, 2011), <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실천문학사, 2014), <슬픔은 어깨로 운다>(천년의 시작, 2017), <데스벨리에서 죽다>(천년의 시작, 2020). <즐거운 소란>(천년의 시작, 2022)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의 변방에서>(화남, 2003),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화남, 2010). <집착으로부터의 도피>(천년의 시작, 2016), <쉼표처럼 살고 싶다>(천년의 시작, 2019), 공저 <우리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웅진닷컴, 2002), <긍정적인 밥>(화남, 2004), 시평 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화남, 2005)이 있습니다.

2회 난고(김삿갓)문학상(2002), 편운문학상(우수상, 2005), 제1회 윤동주시상(2006), 소월시문학상(대상, 2012), <풀꽃문학상>(2015), <송수권시문학상>(2017), <유심작품상>(2019), <이육사문학상>(2020) 등을 수상하였고,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으며 계간 시 전문지 <천년의 시작> 대표입니다.

날 큰 명절을 며칠 남겨두지 않고 있는 설 대목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이재무 시인의 첫 시집 <섣달 그믐>에 실려 있는 시로, 딱 이맘때 감상하기에 적합한 시인 듯합니다. 추운 겨울밤과 한 가정의 가장인 ‘아부지’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아 부재중인 것을 시적 은유로 연결하여, 정겨운 옛 고향의 추억을 소환해내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정이 넘치는 기다림이 있고 또 혹시 무슨 변고라도 있는 건 아닌지 간절히 무사를 비는 사랑 가득한 정경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런데 시인에게 고향은 마냥 즐겁고 정겨운 아름다운 추억만 있는 곳은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그곳은 가난과 설움, 쓸쓸한 적막감이 가득한 곳입니다. 이 시에서 동원된 시어들이 간접적으로 이런 느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함박눈이 아니라 저물 무렵에 내리는 ‘싸락눈’, 우렁차고 생기 넘치는 개 소리가 아니라 ‘목쉰 개 울음’, 주인을 기다리다 식어서 ‘세 번을 데운 황새기 장국’은 졸아 국이 아니라 조림이 다 되었을 지경인데 ‘식전에 나간 아부지 / 여태 돌아오시지 않는다’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싸대기를 때리는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 서울행 기적(汽笛) 소리’,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은 후미진 곳에 있는 ‘상여집 지나 숱한 설움 짊어지고 / 된 바람 헤쳐오는 가뿐 숨소리’ 등 추운 겨울밤의 바깥 풍경들이 모두 ‘여태 아부지는 오시지 않고’라는 한 문장으로 귀결되면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이 경험한 ‘겨울밤’에 대한 추억은 비록 가난하고 쓸쓸했지만 정겹고,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어오는, 전형적인 옛 우리의 고향 풍경 그 자체입니다. 시인과 거의 같은 연배인 저의 겨울밤에 대한 정서도 이와 비슷해서 더욱더 이 시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마땅한 놀이 문화가 없었던 유년 시절에 친구들과 즐겨했던 화투 놀이가 갑자기 생각나는 건 무슨 연유일까요. 명절이 다가오는 이맘때쯤, 긴 겨울밤에는 친구들이 모여 늘 모이던 어느 집 사랑방에서 ‘화투 놀이’로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강렬합니다. 당시에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여 앉으면 화투 놀이를 했다는 기억입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짓고땡’이나 ‘섯다’라는 화투를 했고, 어린 우리들은 주로 ‘육백(600)’이라고 불리는 놀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은 경우 ‘민 화투’나 ‘월남뽕’이라는 평범한 화투를 하긴 했지만 주로 ‘육백’을 쳤던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객지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고스톱’이라는 새로운 화투 놀이를 접하면서, 유년 시절 내가 했던 화투 놀이인 ‘육백’이라는 게임을 언급했더니 아무도 알지 못하더군요.

울밤, 특히 명절 대목을 지나 섣달그믐 날 밤이 다가오는 이즈음에 조금은 유치하긴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유년의 추억들을 불쑥불쑥 소환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달 그믐, 음력으로 마지막 달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설날 바로 전날입니다. ‘까치설날’이라고도 하지요. 어릴 적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섣달그믐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새하얗게 샌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밤을 자지 않고 버티려다 결국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가장 먼저 부모님께 세배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부모님보다 늦게 기침하는 바람에 새해 첫 날부터 꾸중을 들었던 추억도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울밤, 한참 화투 놀이를 하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서 뜨락에 내려섰을 때 차가운 겨울밤 하늘에 가득 수많은 별이 쏟아지는 섬칫한 광경은 도회지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리온 별자리의 뚜렷한 모습, 그리고 북두칠성의 위용은 겨울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해가 저물고 또 다른 한 해가 다가오는 설 명절 대목 즈음, 유년의 겨울밤 추억을 소환해내는 시 한 편으로 그리움과 적적함을 달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런 땐 더더욱 이미 먼 길을 떠나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그저 애틋한 사부곡(思父曲)만 부를 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