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석전碩田,제임스 2023. 2. 1. 06:15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2007)

* 감상 : 한강. 소설가, 시인.

1970년 11월27일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 풍문여고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3년 <문학과 사회>(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 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하였고, 이듬해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문단에 나왔습니다.

설가 한승원의 딸로, 부녀가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문학인으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 이후, 소설로는 <검은 사슴>(문학동네, 1998),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 2000),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 2002), <채식주의자>(창비, 2007),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 2010),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 <노랑무늬 영원>(문학과지성, 2012), <소년이 온다>(창비, 2014), <흰>(문학동네, 2016),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등이 있으며,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 2007)와 몇 권의 동화집과 산문집이 있습니다.

2005년, 당시 35세의 나이로 그때까지 최연소 이상문학상을 받았으며, 2010년 동리문학상, 2014년 만해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그리고 2016년에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의 하나인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국내에 문학 열풍을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이 소설의 번역자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런던 대학교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졸업한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로,  그녀가 번역한 책의 이름은 <The Vegetarian> (Portobello, 2015)입니다. 그녀는 한강의 다른 대표작 <소년이 온다>도 <Human acts>(Granta(NY), 2016)라는 이름으로 번역했습니다.

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2007~2018)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이 소설가로 유명세를 타기 전 시인으로 이미 등단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는 그녀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첫 번째 작품으로 실린 시입니다.

적 화자는 밥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다가 순간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한 후 시적 화자가 했던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무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 앉아 밥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했고, ‘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단순 과거형 문장으로 서술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대체 시인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일까. 그것도 자신의 첫 시집 맨 첫 페이지에 실릴 시로 선택하면서까지 이 시를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일 ‘밥 먹는 행위’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그저 그런 행위일 수 있는데, ‘어느 / 늦은 저녁’ 시인은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피어올라 공기 중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김을 보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닐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순간들과 생각들은 어쩌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저 사라지는 밥의 김과 같지는 않을까 하는 깨달음 말입니다. 그저 주어진 삶에 순응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적인 생각으로만 달려온 지난 삶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김 같은 건 아닐까 하는 깨달음. 시인은 잠시 생각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할까’

인은 행을 건너뛰어 연을 바꿔 그 대답을 합니다. ‘밥을 먹어야지 // 나는 밥을 먹었다’라고. 즉 이제는 그저 순간을 아무 생각 없이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나하나 직접 겪으며 ‘살아내겠다’는 다짐을 한 것입니다. 이제 시적 화자가 먹는 밥은, 그 이전에 먹던 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그저 허공에 사라지는 말 잔치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요 선언입니다. 창자속에 들어가 생명의 에너지원이 되는 것이 바로 ‘밥’인 것처럼 삶의 현장에서 철저하게 '몸으로 체화된 생생한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작가가 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지 // 나는 밥을 먹었다’

리는 매일 매일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삶에서 밥을 먹는 행위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상’입니다. 어느 시인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슬픔이 온 삶을 덮쳤을 때도, 시장기가 몰려와 밥을 먹어야 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대책없고 진저리나는 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 일상의 행위, 즉 ‘밥 먹는 행위’를 이제 그저 하잘것없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깨달음에서부터 시인이 탄생 되고, 또 소설가가 나오는가 봅니다.

을 마감하기 전, 오늘 감상했던 시와 동일하게 평범한 과거형 문장이지만 한강 시인이 짧은 문장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보다 제목이 더 긴, 그녀의 시 하나를 더 감상해 보겠습니다.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 한강

어린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2007)

2005년 5월 30일, 제주 바다를 마주 대하고 서 있는 시인은 자신의 삶에 찾아온 엄청난 ‘고비’를 넘기고, 이제 내 삶은 덤이라고 생각했을 때, 나의 그 슬픔을 어떻게 알았는지 옆에서 놀고 있던 어린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면서 말했습니다. ‘네 삶은 덤’이라고. 그리고 시인은 그 새가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숟갈 밥을 뜰 때에도, 또 날아가는 작은 새를 볼 때에도 그 모든 순간순간을 허투루 그저 영원히 날려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올 한 해도 살아낼 일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