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불멸(천개의 바람이 되어) - 클레어 하너

석전碩田,제임스 2023. 1. 25. 06:36

불멸

- 클레어 하너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무덤 앞에서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 Poetry Magazine <The Gypsy>(1934. 12)

Immortality

- Clare Harner

Do not stand
    By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the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i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As you awake with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fling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day transcending soft night.
  Do not stand
    By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 Poetry Magazine <The Gypsy>(1934. 12)

* 감상 : Clare Harner Lyon.

1909년 10월 1일, 미국 캔자스주 Green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시와 음악에 재능을 보인 그녀는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Emporia 대학 입학, 캔자스 주립대학으로 옮기기 전까지 그녀는 문학반에서 활동했으며, 캔자스 주립대학에서는 대학 신문사 학생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틈틈이 시를 써서 시 잡지사에 기고하기도 했는데, 1934년 시 전문지 <The Gypsy> 12월호에 ‘불멸(Immortality)’라는 제목의 이 시가 실렸고, 그다음 해 2월 8일자 <캔자스 시티 타임>에 다시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녀에게는 Collins와 Olin이라는 두 오빠가 있었는데, 1932년 그중 한 명이 31세의 나이로 먼저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시는 그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쓴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1943년 해군 장교였던 David Haines Lyon과 결혼하여 센프란시스코로 이주, 그곳에서 언론인으로 일하였고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1977년 1월 27일,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의 기일(忌日)이 이틀 후가 되는 셈이군요.

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시인의 시이지만, 1977년 미국의 영화감독 하워드 호크스가 죽었을 때 존 웨인이 이 시를 처음 인용하면서 그 후 유명인들의 장례식, 또 먼저 간 고인을 기리는 행사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장송시 내지는 추모시가 되었습니다. 또 각종 문화 매체, 심지어 비디오 게임 등의 상품에까지 인용되면서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유명한 시’가 되었습니다.

리나라에는 2009년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일본인이 2003년에 이 시의 가사에 곡을 붙여 만든 곡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인기를 얻으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임형주의 노래가 수록된 음반이 출시되는 날이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일과 겹치는 바람에 추모곡으로 헌정이 되었는데, 같은 해 5월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도 추모곡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도를 표하기 위해서 먼저 떠난 고인의 영정 앞에 섰을 때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순간, 이 시의 가사가 얼마나 적합한 시어(詩語)들인지 그 표현 하나하나가 고맙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시는 영정 앞에서 애도를 표하는 사람에게 죽은 당사자가 시적 화자(話者)가 되어 건네는 형식으로 시어들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2행으로 된 원문은 정확하게 2행씩 라임(운율)이 맞아떨어져 전통적인 영시(英詩)의 격식을 잘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Weep:Sleep, Blow:Snow, Grain:Rain, Hush:Rush, Flight:night 등 ‘라임(Rhyme)’이 살아 있으면서 시적 여운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 나는 천 개의 바람 / 천 개의 바람이 되었지요 /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거에요’ 슬퍼 울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오히려 먼저 간 고인이 울지 말라고, 나는 죽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곳에 있지 않고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 것’이고, ‘방에는 어둠 속에서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줄’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으니 슬픔을 당한 사람입장에선, 얼마나 그 아픔이 더 깊게 다가올까요.

명의 전화 소그룹에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봉사했던 선생님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어제 받았습니다. 그간 건강에 특별한 이상 없이 잘 지내셨고 가끔 부정기적인 모임이 있을 때마다 늘 멀리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지켜보시다가 조금 한가해진 틈에 슬쩍 제 곁으로 와서 반갑게 손 잡으시며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시던 선생님이셨는데, 느닷없이 이런 슬픈 소식을 접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세 시대’에 이렇게 홀연히 먼 길을 떠나시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나이인 여든넷. 이 슬픈 소식을 접하고 그간 제가 인도했던 소그룹에서 ‘같이’ 공부하다가 먼저 가신 분들이 몇 분 더 계셨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면서, 오늘 감상하는 이 시를 슬쩍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전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해 별이 되고. 눈이 되고, 종달새가 되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왕 이 시를 감상하면서, 임형주가 부른 노래를 한번 더 감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 석전(碩田)
https://www.youtube.com/watch?v=o92HILktW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