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400

고쳐 말했더니 / 지우개 엄마 - 오은영

고쳐 말했더니 - 오은영 사다리가 전봇대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하나밖에 없네." 전봇대도 사다리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두 갠데도 혼자 못 서지?" 사다리가 말을 바꿨어요. "넌 대단해! 다리가 하난데도 혼자 서잖아." 전봇대도 고쳐 말했어요. "네가 더 대단해! 사람들을 높은 데로 이끌어 주잖아!" - 월간 (2007년 3월호) * 감상 : 오은영 동화작가, 시인.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1999년 신춘문예에 동시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2년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그리고 2003년 새벗문학상에 단편 동화가 당선되었습니다. 작품집으로는 동시집 (현암사..

고라니에게 몸살을 옮다 - 박승민

고라니에게 몸살을 옮다 - 박승민 메밀밭이 있던 눈밭에서 고라니가 운다. 희미한 비음이 눈보라에 밤새도록 쓸려온다. 나는 자는 척 베개에 목을 괴고 누웠지만 다시 몸을 뒤척여 민물새우처럼 등을 구부려 돌아누워 보지만 눈바람에 실려오는 울음소리가 달팽이관을 자꾸 건드린다. 바람소리와 울음소리가 비벼진 두 소리를 떼어내 보느라 눈알을 말똥거린다. 눈밭에 묻힌 발이 내게 건너오는지 흘러내리는 찬 콧물이 옮겨오는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코가 맹맹하고 팔다리가 자꾸 쑤신다. 어떤 생각만으로도 몸살은 오는지 몸살은 몸속의 한기를 내보내서 몸을 살리라는 뜻인데 나도 모르는 어떤 응달이 아직 살고 있는지 귀를 쫑긋한다. 아내에게는 고라니에게 몸살을 옮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혼자 약 지으러간다. - 시집 (실천문학사..

눈보라 / 바다 - 이흔복

눈보라 길 밖에서 길을 바라보면 길 아닌 길 없다. - 시집, (실천문학, 1998) * 감상 : 이흔복 시인. 1963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이천과 여주에서 보냈습니다. 경기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문학 무크지 에 ‘임진강’외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실천문학사, 1998), (솔, 2007), (솔, 2014), (도서출판 b, 2021.10) 등이 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했습니다. 단 두 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이 시를 읽으면 제목은 분명 ‘눈보라’인데 시어들 중에 눈을 나타내는 어떤 단어도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눈보라가 휘날려 앞을 가눌 수 없는 화이트 아웃(White Out) 현상을 보면서 아마도 은유..

내꺼 - 김선우

내꺼 - 김선우 젊은 여자 개그맨이 TV에서 연애시절 받은 편지를 읽는다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니꺼가] 세 음절의 그 말을 힘주어 읽은 후 어깨를 편다 젊은 남자 가수가 노래를 한다 밥을 먹다가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멍해진다 '내꺼 중에 최고'가 노래 제목이다 내꺼 중에 최고… 보채는 당신에게 나는 끝내 이 말을 해주지 않는다 [누구꺼? 당신꺼 내꺼] 이 모든 소유격에 숨어 있는 마음의 그림자노동, 그게 싫어,라고 말하려다 관둔다 내가 좀더 현명하다면 [당신꺼]라고 편안히 말해줄 수도 있을 텐데 여인을 업어 강 건네준 후 여인을 잊는 구도자의 자유자재처럼 모두에게 속하고 어디에도 영원히 속할 수 없는 말이야 천만번 못하겠는가 내 마음이 당신을 이리 사랑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당신꺼]라고 말하지 않..

미안하다, 후박나무 - 강민숙

미안하다, 후박나무 - 강민숙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미안하다 너의 이름을 몰라 그저 나무라고만 부르고 다녔던 내가 미안하다 학교에 가서 네가 후박나무라는 걸 알았을 때 너를 호박나무라 부르며 마구 놀려먹었던 것이 미안하다 동네 사람들이 뜨락에 후박나무 심어져 있다고 하여 어머니를 후박 댁이라고 부를 때 나무를 베어 버리자고 억지투정을 부려 미안하다 후박이 얼마나 좋은 이름이고 후박나무가 나무 중에 나무인 줄도 모르고 껍질 벗겨 엿 만든다고 발로 툭툭 차고 다닌 내가 미안하다 변산 마실 길 오르다 후박나무 군락을 이룬 너희들 앞에서 미안하다고 말 할 적에 너는 바람결에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그 말만 들려주었지 - 시집, (실천문학사, 2021. 9) * 감상 : 강민숙 시..

사랑 - 고영

사랑 - 고영 두 사람이 한 자전거를 타고 한 묶음이 되어 지나간다 핸들을 조정하는 남자 뒤에서 남자를 조정하는 여자 허리를 껴안고 중심을 잡는다 남자의 근육세포가 미세함 그대로 여자의 가슴에 전해진다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조정해가는 완벽한 합일! 지금, 세상의 중심이 저들에게 있다 - 시집 (문학세계사, 2009) * 감상 : 고영 시인. 1966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습니다. 2003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첫 시집으로 (천년의시작, 2005)을 낸 후, (문학세계사, 2009), (실천문학사, 2015) 등 세 권의 시집을 냈고, 감성 시 에세이 (문학의전당, 2015)이 있습니다. (2016) 등을 수상했습니다. 2020년 9월호를 끝으로 폐간된 월간 ..

안개는 힘이 세다 - 우대식

안개는 힘이 세다 - 우대식 안개 속에서, 사회주의 옹호자가 나온다 조금 있다가 자본주의자가 나온다 안개 속에는 많은 주의자들이 산다 안개 속에서 사회주의자인 체하는 자본주의자가 걸어 나온다 교회주의자인 체하는 완전 자본주의자가 걸어 나온다 안개가 걷히면 자본주의자만 남았다 그게 뭐 대수냐고 누군가 중얼댔다 나는 자본주의는 힘이 세냐고 물었다 자본주의자들은 슬그머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눈이 쏟아지고 앞을 볼 수 없었다 눈도 자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안개 속에서 히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는 고맙다 ―시집 (여우난골, 2021) * 감상 : 우대식 시인. 1965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하여 숭실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으로 등단하여 시집 (천년의 시작, 2003..

줄 / 그대의 힘 - 이인구

줄 - 이인구 별들은 한 번도 줄을 맞춰 선 적이 없지만 하늘이 우왕좌왕 혼란스런 날이 있었던가 우린 늘 줄을 맞춰 서 왔지만 순서대로 무엇을 한 일이 없다 그저, 줄을 서지 않는 일을 두려워만 했을 뿐. -시집 (천년의 시작, 2021) * 감상 : 이인구 시인. 1958년 원주에서 태어났습니다. 2007년 를 통해 작품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50이 넘었을 때 시 쓰기를 시작했으니 만학도인 셈입니다. 30여년 공직(국정원 지부장) 생활을 하였고, 퇴직 후에는 민간 기업에서도 일했던 그가 본업을 하면서 두 권의 시집을 냈고 퇴직 후 본격적으로 시업에 전념하면서 또 두 권의 시집을 냈는데, 오늘 감상하는 시는 최근에 낸 신작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시집으로 (2006), (월간문학, 2013), (..

사람멀미 - 이정록

사람멀미 - 이정록 삶이라는 열차를 타고 먼 길 가다보면 때론 멀미가 나지. 나만 입석인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 아냐? 갈수록 짐은 무거워지고 구두 속 발가락은 이상한 짐승으로 자라지. 함께 떠나온 사람도 뿔뿔이 흩어지고 낯선 말소리에 외롭기도 하지. 굴속처럼 깜깜하기도 하지. 하지만, 이것만은 마음에 새기자. 너를 이정표로 삼고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네가 다른 지도를 찾아 두리번거린다면 차멀미가 사람멀미로 바뀐다는 것을. 사람이 싫어지고, 싫어하면 이번 여행은 끝이란 것을. - 시집, (문학동네, 2018) * 감상 : 이정록 시인. 1964년 7월,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였으며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과를 수료했습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농부일..

일침 - 손 세실리아

일침 - 손 세실리아 도시에선 엄두도 내지 못한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됐다 섬이라 가능했다 사철 꽃과 동거를 꿈꾸며 갖은 묘목과 구근을 심고 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풀과 함께 라는 것인데 연둣빛 이마에 차마 손을 댈 수 없어 미루다 정이 들어 그만 동거를 묵인하곤 괭이밥 사랑초 박주가리 쇠별 땅빈대 좀바랭이 차례로 이름 익혀가던 참인데 새벽잠 없는 옆집 할머니 허락 없이 정낭 넘어와 풀무덤 쌓아놓고 끽연 중이시다 축 늘어진 풀 움켜쥐고 못마땅해 하자 같잖다는 듯 고장 정 씨 요물민 우리 밧디 다 날아들 건디 오고생이 보고만 시렌 말이냐 요디서 펜안히 살젠허민 느네 마당 검질은 느가 알앙 매라 시 안에 갇혀 풀과 풀꽃을 노래해온 어쭙잖은 나를 시 밖으로 끌어내 무릎 꿇게 한 - 격..

십일월 - 이재무

십일월 -이재무 십일월은 의붓자식 같은 달이다. 시월과 십이월 사이에 엉거주춤 껴서 심란하고 어수선한 달이다 난방도 안 들어오고 선뜻 내복 입기도 애매해서 일 년 중 가장 추운 달이다 더러 가다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메인은 시월이나 십이월에 다 빼앗기고 그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드레 행사나 치르게 되는 달이다 괄호 같은 부록 같은 본문의 각주 같은 산과 강에 깊게 쇄골이 드러나는 달이다 저녁 땅거미 혹은 어스름과 잘 어울리는 십일월을 내 영혼의 별실로 삼으리라 - 시집, (천년의시작, 2017) * 감상 : 이재무 시인. 1958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습니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1983년 , ,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

밤 미시령 - 고형렬 / 나무 - 이성선

밤 미시령 -고형렬 저만큼 11시 불빛이 저만큼 보이는 용대리 굽은 길가에 차를 세워 도어를 열고 나와 서서 달을 보다가 물소리 듣는다 다시 차를 타고 이 밤 딸그락,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듯 시동을 걸고 천천히 미시령으로 향하는 밤 11시 내 몸의 불빛 두 줄기, 휘어지며 모든 차들 앞서 가게 하고 미시령에 올라서서 음, 기척을 내보지만 두려워하는 천불동 달처럼 복받친 마음 우리 무슨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잠드는 속초 불빛을 보니 그는 가고 없구나 시의 행간은 얼마나 성성하게 가야 하는지 생수 한통 다 마시고 허전하단 말도 저 허공에 주지 않을뿐더러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 -그 사람 미워 다시 오지 않으리 - 시집, (창비, 2006) * 감상 : 고형렬 시인. 1954년 강원도 ..

가을은 / 신문 - 유종인

가을은 -유종인 전생(前生)의 빚쟁이들이 소낙비로 다녀간 뒤 내 빚이 무엇인가 두꺼비에 물어보면 이놈은 소름만 키워서 잠든 돌에 비게질이다 단풍은 매일 조금씩 구간(舊刊)에서 신간(新刊)으로 한 몸을 여러 몸으로 물불을 갈마드는데 이 몸은 어느 춤에 홀려 병든 피를 씻기려나 추녀 밑에 바래 놔둔 춘란 잎을 어루나니 서늘타, 그 잎 촉(燭)들! 샛강 물도 서늘했겠다 막걸리 몇 말을 풀어서 적막 강심(江心)을 달래야겠다 - 시조집, (실천문학사, 2012) * 감상 : 유종인 시인. 1968년 인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립 인천전문대(현 인천대학교 제물포 캠퍼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6년 에 시 ‘화문석’ 외 9 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그 후 2002년 신춘문예 시조 부문, 20..

기분이 좋다 / 아내와의 여행 - 신진

기분이 좋다 - 신진 ①처가에서 쌀 한 가마 보내 왔을 때 ②산골짝에서 도다리 회를 먹을 때 ③술병 마개 딸 때 ④벼랑 위에서 혼자 오줌을 눌 때 ⑤귤껍질을 벗길 때 ⑥까무러친 여자에게 화장지를 줄 때 ⑦우리나라 챔피언이 조빠지게 맞고 비길 때 ⑧남이 보는 거울의 남을 엿볼 때 ⑨방안에 누워서 데모소리 들을 때 ⑩이 시대의 학자와 이 땅의 언론인이 시국토론 하는 것을 볼 때 ⑪아이들이 TV보고 웃는 것을 볼 때 ⑫밥 사먹고 나오다 껌을 얻을 때 - 시집 (시와시학사, 1994) * 감상 : 신진 시인, 문학평론가. 1949년 5월 21일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동아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으며 1981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보사 주간, 인문..

하늘의 옷감 - 예이츠

하늘의 옷감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놓아진 하늘의 옷감이 있다면 밤의 어두움과 낮의 밝음과 어스름한 빛으로 된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색의 옷감이 있다면 그 옷감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꿈 밖에 없으니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드리오니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기에. - 김억 번역시집, (광익서관, 1921) The Cloth of Heaven - William Butler Yeats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

경청 - 정현종

경청 -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 시집 (시와시학사, 2003.10) - 2004년 제12회 공초문학상 수상작 * 감상 : 정현종 시인.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광고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

탄생 / 문장을 먹는다 - 허향숙

탄생 - 허향숙 시인이 그랬어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시나무에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눈이 번쩍 떠졌어 고 정 관 념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사념들 곰팡이 포자처럼 은밀하게 침투한 편견들 벼랑이 파도를 놓치거나 구름이 하늘을 흐르게 하거나 향기가 바람을 흔들어 깨운다는 생각의 전이 통념을 벗고 새로운 관념으로 갈아입으니 세계가 낯설고 경이롭네 나는 다시 태어나 한 생을 얻네 - 시집 (천년의 시작, 2021) * 감상 : 허향숙 시인. 1965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습니다. 2018년 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백강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천년의 시작, 2021)이 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늘 그렇게 생각하던 것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통..

해바라기 / 홍어 - 원무현

해바라기 - 원무현 아버지 뽕밭에 묻어야 했던 날 나와 어린 동생은 장맛비 속에 하염없이 고개를 꺾었지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겨우 붙어 있던 목 추스르신 어머니 아픈 목을 쓸어안으며 팍팍한 세상 잘 떠났지 뭐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팽! 코를 푸실 때 쪼개진 구름 사이에서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얘들아 해바라기 같은 내 새끼들아 고개 빳빳이 세우고 저기 저기 해 좀 보아 아무리 보아도 어머니 어머니 눈엔 아버지 얼굴만 떠있었는데요 - 시집, (도서 출판 글나무, 2005) * 감상 : 원무현 시인. 196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습니다. 2003년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집으로 (1994), (도서 출..

沙浦小集次杜韻[사포소집차두운] - 정약전

沙浦小集次杜韻[사포소집차두운](사포에 몇 명이 모여 두보의 시에 차운하다) - 손암 정약전 三兩客將秋色來[삼양객장추색래] 詩因遺興未論才[시인유흥미론재] 凉颷在樹蟬猶響[양표재수선유향] 淸月盈沙鴈欲回[청월영사안욕회] 小屋靑山侵席冷[소옥청산침석냉] 四隣白酒捧杯催[사린백주봉배최] 樵兒釣叟懽成友[초아조수환성우] 恣意家家笑語開[자의가가소어개] 서너 나그네가 가을 빛 따라와 시 지으며 흥을 돋우니 재주는 따지지 않네 서늘한 바람 나무에 있건만 매미는 아직 울고 맑은 달빛 모래밭에 가득하자 기러기 돌아오려네 푸른 산 오막집에 추위가 스며들자 사방 이웃들이 막걸리 잔을 건네네 나무꾼에 고기잡이까지 기쁘게 친구가 되니 집집마다 마음껏 웃음꽃 피었구나 - 다산 정약용이 자신의 저술을 정리한 필사본 문집 에 실린 시. 여유당..

배롱나무의 안쪽 /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배롱나무의 안쪽 - 안현미 마음을 고쳐먹을 요량으로 찾아갔던가, 개심사, 고쳐먹을 마음을 내 눈앞에 가져와 보라고 배롱나무는 일갈했던가, 개심사, 주저앉아버린 마음을 끝끝내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와야 했던가, 하여 벌벌벌 떨면서도 돌아와 약탕기를 씻었던가, 위독은 위독일 뿐 죽음은 아니기에 배롱나무 가지를 달여 삶 쪽으로 기운을 뻗쳤던가, 개심사, 하여 삶은 차도를 보였던가, 바야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을 지나 천우사화(天雨四花)로 열리고 싶은 마음이여, 개심사, 얼어붙은 강을, 마음을 기어이 부여잡고 안쪽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는 만삭의 - 시집, (창비, 2014) * 감상 : 안현미(安賢美) 시인.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과기대(서울 산업대)를 졸업했습니다. 2001년 신인상에 ‘곰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