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오지
- 이문재
탱탱한 종소리 따라나가던
여린 종소리 되돌아와
종 아래 항아리로 들어간다
저 옅은 고임이 있어
다음날 종소리 눈뜨리라
종 밑에 묻힌 저 독이 더 큰 종
종소리 그래서 그윽할 터
그림자 길어져 지구 너머로 떨어지다가
일순 어둠이 된다
초승달 아래 나 혼자 남아
내 안을 들여다보는데
마음 밖으로 나간 마음들
돌아오지 않는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였던 마음들
아침은 멀리 있고
나는 내가 그립다
- 시집, <마음의 오지>(문학동네, 1999)
* 감상 : 이문재 시인.
1959년 경기도 김포(지금은 행정구역상 인천시 서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 즉 ‘생태 시’로 잘 알려 진 그는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경희문학상, 정지용문학상(2021) 등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문학동네, 2014), <산책시편>(민음사, 2007), <마음의 오지>(문학동네, 2011), <제국호텔>(문학동네, 2012),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혼자의 넓이>(창비, 2021)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문학동네, 2003),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호미, 2009) 등이 있습니다. <시사저널> 취재 부장, <문학동네> 편집 주간을 거쳐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학동네 편집위원,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쓰는 시가 ‘생태 시’라는 별칭이 붙은 것에 대해 ‘도대체 생태시가 뭘까’ 물음이 가시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타인과 자연, 지구촌을 거쳐 저 멀리 우주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을 확장하는 시 세계를 보여주고, 지구의 생명체를 위협하는 환경 문제 등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문재 시의 특징인데 바로 이런 시의 경향을 일컬어 생태 시라고 분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도시의 일상에 갇힌 자신의 몸에서 출발하여 ‘걷기와 느림’으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 새로운 삶의 감각을 반영하는 시, 그래서 세속적인 인간 내면에서 성스러움을 찾아가는 시를 쓰는 생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어느 절에 있는 큰 범종이 아침 새벽 기도 시간을 알리는 그윽한 소리 내는 것을 자세히 관찰한 후 종을 자기 자신의 몸에 빗대어 노래한 시입니다.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통해서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자각(自覺)의 시라고나 할까요.
큰 종소리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 웅장하고 높은 종소리 아래에서 깊은 떨림으로 여운을 남기는 ‘여린 종소리 되돌아와 / 종 아래 항아리로 들어간다’고 노래한 시인은, 바로 그 종 아래로 들어간 여린 종소리가 아래 묻힌 독에 ‘고여 있다’는 재미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인 여린 종소리 덕분에 ‘다음날 종소리 눈뜨리라’는 것을 노래합니다. 다음날 새벽, 만물의 잠을 깨우는 저 은은한 종소리는 그 전 날에 되돌아 와 고여 있었던 여린 소리와 그 아래 묻혀 있던 독 때문이니, 결국 크게 울리는 종소리가 큰 게 아니라 ‘종 밑에 묻힌 저 독이 더 큰 종’이라고 시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잘났다고 ‘탱탱한 종소리’로 뽐 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묵묵히 희생하면서 ‘옅은 고임’으로 인내해 준, 그리고 ‘종 밑에 묻힌’ 독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34년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9년 정도의 기간, 교수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다음 학기 새로운 교수를 초빙하기 위한 면접이 줄곧 이어지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한 사람 한 사람 확정해 나갑니다. 그리고 개강이 다가올 무렵, 그동안 채용하기로 결정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소위 ‘신임 교수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마지막 단계의 일을 진행하면서 실무자로서 그들을 보며 늘 마음속으로 혼자서 되뇌었던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이 대학의 교수로 정식 임용되는 이 영광이, 당신 자신의 실력이 빼어나고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되었음을 알고 겸손해졌으면 좋겠다’는 문장이 그것입니다. 실무자로서 일을 해 보면, 실력 있는 사람도 뜻하지 않는 이유로 선택이 되지 않기도 하고, 또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되었던 사람도 의외의 하찮은 변수 때문에 불발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너무도 가까이에서 봐왔기에 그들이 임용 확정된 것은 ‘최소의 기본 실력 + 은혜와 타인의 덕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시작한 대학 교수 생활을 한 두 학기 지나다 보면 처음의 그 겸손한 태도와 자세는 다 사라지고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이 독불장군의 태도로, ‘탱탱한 종소리’를 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교수들은 학생뿐 아니라 동료 교수, 또 동료 교직원들에게도 금방 눈 밖에 나는 것도 많이 확인했습니다.
다음 연에서, 시인은 범종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일순 캄캄한 어둠이 몰려와 ‘초승달 아래 나 혼자 남아’ 종(鐘)이 되어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종에게 자기 자신을 이입(移入)했다고 하면 더 정확한 설명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린 종소리가 되돌아와서 종 밑에 있는 독에 고였던 것과는 달리, 내 마음에서 요란하게 떠난 ‘마음 밖으로 나간 마음들 / 돌아오지 않는다 / 내 안의 또 다른 나였던 마음들’이 도무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캄캄한 한밤중인데, ‘나는 내가 그립다’고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되돌아와 그윽하게 고여 있는 ‘그 마중물 같은 마음’이 없어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오지(奧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성경의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하셨던 말씀이 뜬금없이 생각나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내 안에 또 다른 나였던 마음들’이 어쩌면 내가 잃어버렸던 ‘처음 사랑’은 아닐는지. '초심'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들리는 '탱탱한 종소리'임에 분명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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