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시(詩) 1
- 정진규
이런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
그 밥, 우리나란 아직도 밥이다 밥을 먹는 게 살아가는 일의 모두, 조금 슬프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길 떠난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한 그릇 나의 밥을 나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계셨다 기다리셨다
저승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
나도 이젠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올린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으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분들은 자주 밥알을 흘리실 것 같다 숟가락질이 젓가락질이 서투르실 것 같다
다 내어주시고 그분들의 쌀독은 늘 비어 있었을 터이니까 늘 시장하셨을 터이니까
밥을 드신 지가 한참 되었을 터이니까
- 한국시인협회 사화집(詞華集)(1986), 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문학세계사, 1990), 시선집 <말씀의 춤을 위하여>(미래사, 1991)
* 감상 : 정진규 시인. 호는 장산(長山).
1939년 경기도 안성군 미양면 보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팔서정(抒情)'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1963년부터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시집과 詩選集으로는 <마른 수수깡의 평화>(모음사, 1965), <유한의 빗장>(예술세계, 1971),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교학사, 1977), <매달려 있음의 세상>(문학예술사, 1979), <비어있음의 충만을 위하여>(민족문화사, 1983), <연필로 쓰기>(영언문화사, 1984), <뼈에 대하여>(정음사, 1986), <옹이에 대하여>(문학사상사, 1989), <꿈을 낳는 사람>(한겨레, 1989),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문학세계사, 1990), <말씀의 춤을 위하여>(미래사, 1991), <몸詩>(세계사, 1994), <알詩>(세계사, 1997), <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 2000), <本色>(천년의시작, 2004), <껍질>(세계사, 2007), <사물들의 큰언니>(책 만드는집, 2011), <청렬집>(지식을 만드는지식, 2012), <무작정>(시로 여는 세상, 2014), <우주 한 분이 하얗게 걸리셨어요>(문예중앙, 2015), <모르는 귀>(세상의 모든 시집, 2017) 등이 있습니다.
1977년에 펴낸 그의 세 번째 시집인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를 기점으로 산문시를 본격적으로 선 보이며 관념에서 벗어나 일상성을 회복하려는 시작(詩作)에 몰두하였으며 90년대 들어서는 <몸詩>, <알詩>, <밥詩> 등을 통해서 신체와 생명, 삶의 일상성에 대하여 깊이 탐색하였습니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여대 교수 등을 거쳐 1988년부터 시 전문 월간지인 <現代詩學> 주간을 역임하면서 20년 넘게 후배 시인들을 배출하는데 진력하였습니다. 고려대학교 제1회문화상(1963), 한국시인협회상(1980), 월탄문학상(1985), 현대시학작품상(1987), 공초문학상(2001) 보관문화훈장(2006), 이상시문학상(2009), 만해대상(2010), 혜산 박두진문학상(2014)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7년 9월 향년 78세의 일기로 별세, 고향인 경기도 안성 선영에 안장되었습니다.
지난 주 예배 시간 설교에서 목사님은 설교를 마무리하며 정진규 시인의 ‘밥시’ 한 편을 소개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스승인 엘리야가 떠날 때 ‘갑절의 은사를 달라’고 소원하였던, 스승으로부터 배운 신앙을 ‘관찰자’가 아닌, 삶 속에서 살아내면서 실천함으로써 실제로 갑절의 능력 있는 선지자가 되었던, 제자 엘리사 이야기를 하면서 느닷없이 소개한 시였는데 그 여운이 얼마나 길었던지요. 그래서 오늘은 ‘정진규’라는 시인과 그의 시를 읽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이 시를 읽으면 쌀밥 한 그릇을 놓고 참으로 많은 생각에 잠기는 한 사람 시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시작하여 다른 나라의 경우도 그러할까, 밥과 관련된 사람들의 안부 인사,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얽힌 추억에 이르기까지. 급기야는 불교와 기독교로 대변될 수 있는 종교의 영역에까지 그 생각이 확장되기에 이릅니다. ‘다 내어주시고 그분들의 쌀독은 늘 비어 있었을 터이니까 늘 시장하셨을 터이니까 / 밥을 드신 지가 한참 되었을 터이니까’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시인의 현실 종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종교를 믿는다면 서로 겸상을 하면서 서툴게 젓가락질 하면서 밥 먹는 부처님과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의 말이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다가옵니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 ‘파친코’가 생각이 났습니다. 선자의 어머니가 주인공인 선자를 시집보내기 전, 쌀밥 한 그릇을 먹여 보내기 위해서 쌀을 구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화 연출자는 이 장면을 거의 2분이 넘는 롱 테이크로 시간을 할애하였고 또 그 이후 영화의 중요한 장면 장면에서 은유와 복선(伏線)으로 ‘쌀밥’을 등장시키며 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선자에게 이 흰 쌀밥 한 그릇은 어머니의 사랑, 조국(祖國), 어린 시절의 친구, 집 등, 그녀가 잃어야만 했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쌀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자의 어린 시절 역(役)을 연기했던 배우 김민아가 최근 어느 미국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한국인에게 있어 ‘쌀밥’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할 때, 금발의 미녀가 울컥하면서 감동을 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 미국 여 앵커가 정진규 시인의 이 시를 읽는다면, 이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쯤에서 '밥시(詩)'라는 제목으로 숫자가 붙은 정진규 시인의 시 두 편을 더 감상해보겠습니다. 산문으로 된 시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건져올린, 그야말로 '밥'같은 풋풋한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시들입니다.
밥시(詩) 7
- 정진규
한 삼십여 년 전 이야기이지요 지금도 연애라는 걸 더는 못 벗어나고 철없이 살고 있는 저희 내외가 그 연애라는 걸 처음 시작했을 때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어떤 절을 찾아간 적이 있었지요 우리 사랑 한 채의 집으로 지어내자면서 한 채의 절이 될 때까지 그렇게 가자면서 어떤 절을 찾아간 적이 있었지요 거기서 저희는 절밥을 얻어먹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정갈하게 비워낸 절밥 한 상 세상에서 가장 넘치게 고봉으로 담겨진 절밥 한 상 차려주셨어요 공양(供養)이라 했어요 그날 이후 저희 내외도 그런 절밥 한 상 세상에 차려내자면서 예까지 오기는 왔지요 부끄럽게 예까지 오기는 왔지요
- 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문학세계, 1990)
밥시(詩) 8
- 정진규
처음엔 사자(死者)밥인 줄 알았습니다 저승길도 시장하셔서는 가시지 못합니다 이승에서 받으시는 마지막 밥 한 상 어머님께 차려 올리는 눈물의 밥 그런 걸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자(使者)밥, 저승길 잘 모시고 가달라고 제 어머님 잘 모시고 가 달라고 밥 한 상 잘 차려올렸사오나 노자도 두둑히 드리긴 드렸사오나 어머니, 평생을 나의 밥이셨던 당신, 마지막 밥 한상마저 당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 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문학세계, 1990)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 오늘 아침 간절한 나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의 마음으로 내 앞에 놓여 있는 삶의 길을 달려가고 싶습니다. 관찰자나 구경꾼의 자세가 아니라,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며 예수님과 함께 겸상을 하면서 말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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