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 조기영

석전碩田,제임스 2022. 5. 25. 06:01

시를 쓰며 산다는 것은

- 조기영

시를 쓰던 어느 날 거짓말 한번 있었습니다. 밥을 먹어야 하겠기에 돈을 벌러 나갔다가 주머니에 돈이 없어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 급히 나오느라 지갑을 놓고 나왔으니 이천 원만 빌려 달라 했습니다. 그 돈 빌려 집에 오는 길에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날따라 비조차 내렸습니다. 우산 없이 집으로 오는 길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그러나

- 내안에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하지만 마음이 비어 시를 쓸 수 없게 된다면 더욱 슬픈 일이 될 거야 -

이 말 한마디 하고 내게 웃었습니다.

- 시집 <사람은 가고 사랑은 남는다>(살림터, 2000)

* 감상 : 조기영 시인. 주부(主夫), 정치를 하는 한 여자의 남편.

1968년 6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시집으로 <사랑은 가고 사랑은 남는다>(살림터, 2000)가 있고, 장편 소설 <달의 뒤편>(마음의 숲, 2013)이 있습니다. 또 부부가 공동으로 펴낸 산문집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 – 고민정 아나운서와 조기영 시인의 시처럼 아름다운 삶의 순간들>(북하우스, 2017)이 있습니다.

를 쓰는 전업 작가 시인으로 사는 건 가능할까. 답은 ‘불가능하다’ 일 것입니다. 물론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같이 SNS가 발달한 시대에 시집 한 권을 내고 1천 권 안팎의 초판이 다 팔리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출판업계 종사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러니 시집의 인세나 또는 시인으로서의 유명세로 밥벌이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난 2005년 10월, 잘 나가는 KBS의 여자 아나운서가 11년이나 연상인 가난하고 육체에 병까지 있는 시인과 결혼을 했다고 해서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혼처가 있었지만 그것들을 마다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또 가난하기까지 한 시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한 그녀의 결단은 당시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후, 아내 고민정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7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부대변인을 거쳐 대변인을 역임했고, 지난 2020년에는 21대 총선에 나서 서울 광진(을)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감상하는 시는 시인의 아내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쓰여 진 시입니다. 그녀가 전혀 예상치 않게, 정치 쪽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시인은 전적으로 내조를 하는 주부(主夫)가 되었고, 그 이후에는 현실 정치에 찌든 생활에 집중하다 보니 ‘가난하지만 시의 힘으로 살아내는 풋풋한 에너지’가 전달되어지는 시와 글들을 그로부터 전해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와 시를 쓰는 시인의 삶이 반드시 일치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는 그것이 서로 일치되는 정도가 높을 때인 듯합니다. 1연에서는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하얀 거짓말 하나를 하고 불편해 하는 시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단돈 이 천원이 없어 마음에도 없는 돈을 빌려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시인은 못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비조차 내렸습니다.’ 그리고 ‘우산 없이 집으로 오는 길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2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시인의 독백입니다. ‘- 내안에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하지만 마음이 비어 시를 쓸 수 없게 된다면 더욱 슬픈 일이 될 거야 -’

문장을 읽으면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했던 말이 오버랩 됩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인거야"

습니다. 삶의 목적은 곁으로 비켜두고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방편에만 완전히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시인은 반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한 삶의 목적도 매일 매일 깨어 있는 자세로 다그쳐 날카롭게 벼르지 못하고 또 그 풍족하지 않은 방편마저도 시인 정신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게 무슨 시인일 수 있느냐는 자성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 하고 내게 웃었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의 겸손함이 서늘한 청량감을 줍니다.

방선거 유세 기간 막바지인 요즘, 야당으로 변한 당의 대변인이 된 아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정치판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시인 남편의 마음은 어떨까. 이 시를 쓸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지금도, ‘그저 내게 웃었다‘고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돈이 없어 마음이 빈 게 아니라, 세상살이에 몰두하다 보니 새로운 시집 한 권 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은 비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