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 이성임

석전碩田,제임스 2022. 5. 4. 06:27

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 이성임

나도 알아,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속수무책이라는 걸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자신을 그렇게 향기로 달래고 있다는 걸
그러니, 너도 너무 애쓰지 마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너를 맡겨봐
오늘 하루가 무너져 내리는 건 내일이 차오르기 위해서라고
애써 그렇게 생각해 봐
너도 알잖니, 네가 좌측으로 기우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기울어간다는 것을
우리 모두 농담처럼 조금씩 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너도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

-시집, <나무가 몸을 열다>(현대시학사, 2022.2)

* 감상 : 이성임 시인.

1961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2009년 <시안>에 ‘단청하늘’외 4편의 시로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경희 사이버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에서 수학하였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봄이 되어 나무에 새순이 나고 꽃이 피면서 신록이 무성해져가는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시상(詩想)이 떠올랐나 봅니다. 그 시상이란, 어떤 가지는 저 쪽으로 기울고 어떤 가지는 이쪽으로 기울어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있는데, 서로 다른 쪽으로 자라는 나뭇가지의 운명은 그저 ‘속수무책’이라는 것, 즉 자신이 애썼기 때문에 어느 한 편으로 기운 게 아니라 그것은 ‘결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평범한 자연의 순리를 따랐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여당과 야당의 극심한 대립, 그리고 아주 근소한 차이의 결과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아마도 새 봄에 돋아나는 새 가지의 순들을 바라보면서 언뜻 사람들이 좌측, 우측 기울어져서 서로를 향해서 핏대를 올리는 바로 이런 상황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라는 걸’이라는 표현으로 끝나는 첫 세 행의 싯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도 알아,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속수무책이라는 걸 /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 자신을 그렇게 향기로 달래고 있다는 걸’

가 스스로 애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시인이 제안하는 방법입니다. 나뭇가지들이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자신을 맡겨 향기를 날리며 자신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좀 보라는 것입니다. ‘잠자리 날개처럼’과 ‘농담처럼’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이 시에서 반복되는 시적 이미지라고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잠자리 날개’가 바람에 나는 가벼운 물체이듯이, 삶에서 만나는 여러가지 답답한 일들도 가끔은 ‘농담’처럼 좀 물이 새듯이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서로가 기울어져 가는 방향이 다르다고, 또 오늘 무너져 내리는 것이 곧 지구의 종말인 마냥 ‘너무 가슴 아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네가 좌측으로 기우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기울어 간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시를 읽으면서 ‘농담’이라는 시어를 읽는데 갑자기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생각이 난건 왜일까요. 이 소설에선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여학생이 아무 뜻 없이 던진 가벼운 농담 한 마디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두 남학생이 그 ‘아주 오래된 농담’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 말을 했던 당사자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쩌면, 우리가 사는 삶은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너무 무겁지 않게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맡기면서 ‘오늘 하루가 무너져 내리는 건 내일이 차오르기 위해서라고 / 애써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람이 새듯이, 또 물이 새듯이 그렇게 조금은 헐렁하게 살아가는 것도 때론 필요한 일입니다.

가지는 저 쪽으로, 또 다른 가지는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결국 같은 나무의 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무너져 내린 것 같아도 그 나무에서는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이 나고 꽃이 피어, 새로운 내일의 향기가 온 사방에 날린 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