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구부러진 못 / 나는 궁금하다 - 전남진

석전碩田,제임스 2022. 4. 27. 06:18

구부러진 못

- 전남진

정신 바짝 차리며 살라고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지면서
못은 그만 수직의 힘을 버린다
왜 딴생각하며 살았냐고
원망하듯 못이 구부러진다
나는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
살아보자고 세상에 박히다
다들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
망치를 돌려 구부러진 못을 편다
여기서 그만두고 싶다고
일어서지 않으려 고개를 들지 않는 못
아니다, 아니다, 그래도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정신을 놓을 때도 있지 않겠냐고
겨우 일으켜 세운 못를 다시 내려친다
그래, 삶은 잘못 때린 불꽃처럼
짧구나, 너무 짧구나
가까스로 세상을 붙들고
잘못 때리면 아직도 불꽃을 토해낼 것 같은
구부러져 녹슬어가는 못

- 시집 <월요일은 슬프다>(문학동네, 2021.6)

* 감상 : 전남진 시인.

1966년 경북 칠곡군 기산면 가시막골에서 태어났습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한일건설 홍보팀에 재직하던 1999년 <문학동네> 신인 문학상에 ‘나는 궁금하다’는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습니다. 그 후 12 년간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골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강원도 강릉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현재는 강릉의 막다른 골목길 안에 있는 북 카페 <모모>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업을 위해 바리스타로서 <모모의 외출>이라는 작은 카페도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나는 궁금하다>(문학동네, 2002), <월요일은 슬프다>(문학동네, 2021) 등이 있고, 산문집 <어느 시인의 흙집일기>(랜덤하우스코리아, 2003), <아빠랑 시골 가서 살래>(좋은생각, 2005)가 있습니다.

남진 시인은 지난 해 그의 시집 개정판이 출판되면서 ‘역주행 시인’으로 세간에 알려진 시인입니다. 2002년 10월, <문학동네>에서 낸 첫 시집 <나는 궁금하다>에서 시 몇 편을 덜어내고 첫 시집 이후의 미 발표작을 더해 <월요일은 슬프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내놓았습니다. 첫 시집과는 달리 개정판 시집이 발간되자마자 1쇄가 다 팔리고 2쇄를 두 달 만에 찍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그의 시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그제야 그의 진가를 알아봤다고나 할까요.

늘 감상하는 시는 못을 박다가 잘못 내리쳐 그만 구부러져버린 못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내비치는 시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만 구부러져버린 못을 보면서 ‘나는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라고 반문하는 표현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그 뿐 아니라 한 손에 망치를 들고 서 있는 시적 화자에게 구부러진 못이 항의하듯 반문하는 질문이 매섭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왜 딴 생각하며 살았냐고 / 원망하듯 못이 구부러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호된 질문은 기실 망치를 들고 서 있는 지금의 시인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닙니다. 저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보자고 세상에 박히’며 발버둥 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들 어디쯤에서 구부러졌을까’ 시인은 심각한 화두를 던집니다.

번이고 ‘여기서 그만 두고 싶다고 / 일어서지 않으려 고개를 들지 않는 못’처럼 수직의 힘을 잃어버린 자신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니다, 아니다, 그래도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 살다 보면 / 한 번쯤은 정신을 놓을 때도 있지 않겠냐고 / 겨우 일으켜 세운 못를 다시 내려친’적이 여러 번. 마음 같아선 ‘아직도 불꽃을 토해낼 것 같은’ 심정이지만 내 앞에 놓여 있는 삶은 ‘잘못 때린 불꽃처럼 / 짧구나, 너무 짧구나’ 한탄이 나옵니다. ‘가까스로 세상을 붙들고’ 일어서보지만 마음만 앞서는 그저 ‘구부러져 녹슬어가는 못’일 뿐입니다.

론가들은 시인을 ‘시선을 끄는 경쾌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자신만의 개성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는 시인’으로 평하고 있습니다. 첫 시집을 내고, 19년이 지난 후 그 시집의 개정판 하나만 달랑 낸 시인으로서 세상을 항해서 할 말도 참 많을 듯한데, 그는 한적한 시골 도시에서 커피를 볶으며 사람들과 소통하며 구부러져 녹슬어가는 못처럼 여전히 ‘잘못 때리면 아직도 불꽃을 토해낼 것 같은’ 마음으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 젊은 시절, 서울 강남의 뱅뱅 사거리에 있는 건설회사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홍보실 직원으로 근무할 때 썼던 그의 시 하나를 더 감상하면서 오늘 시 감상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매일 오가는 출근길과 퇴근길에 맞닥뜨리는 풍경 속에서 당시 시인에게는 궁금한 게 참 많았던 듯합니다. 그리고 그런 궁금증들이 결국, 그를 지금 어느 도시의 막다른 골목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모’가 되어 세상과 소통하는 ‘삶의 시인’이 되게 한 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 석전(碩田)

나는 궁금하다

- 전남진

아크릴 상자 칸칸 애벌레처럼 채워진 넥타이를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는 아주머니가 하루에 몇 개를 파는지. 안흥 찐빵 수레를 덜덜 밀고 출근길 찾아다니는 어머니 나이쯤 아주머니의 찐빵을 가족들이 저녁 대신 먹는 것은 아닌지. 옷에 묻은 얼룩을 지우는 약 파는 전철 아저씨 하루 종일 묻은 때도 그 약으로 지워지는지. 자리싸움 밀려 아파트 뒷길로 등불 내다 건 구이 아저씨의 꼬치가 식기 전에 팔리는지. 둥글게 떼어낸 호떡 반죽을 꾹꾹 누르는 기름종이 같은 손이 겨울날 장갑 없이도 왜 트지 않는지. 뒤집히고 구르고 또 뒤집히며 사각상자 안에서 몸부림 치는 장난감 자동차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저씨가 자기 삶이 저렇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넥타이와 찐빵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를 듯한 빈 지갑 같은 오후가 어제도, 오늘도......왜 한 번도 바뀌는 일이 없는지. 장사를 마치고 떠난 빈자리로 날아드는 도시의 희미한 별들이 내일 팔릴 장난감이고 호떡이고 얼룩 지우는 약은 아닌지.

- 시집 <나는 궁금하다>(문학동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