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 이성임
나도 알아,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속수무책이라는 걸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자신을 그렇게 향기로 달래고 있다는 걸
그러니, 너도 너무 애쓰지 마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너를 맡겨봐
오늘 하루가 무너져 내리는 건 내일이 차오르기 위해서라고
애써 그렇게 생각해 봐
너도 알잖니, 네가 좌측으로 기우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기울어간다는 것을
우리 모두 농담처럼 조금씩 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너도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
-시집, <나무가 몸을 열다>(현대시학사, 2022.2)
* 감상 : 이성임 시인.
1961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2009년 <시안>에 ‘단청하늘’외 4편의 시로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경희 사이버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봄이 되어 나무에 새순이 나고 꽃이 피면서 신록이 무성해져가는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시상(詩想)이 떠올랐나 봅니다. 그 시상이란, 어떤 가지는 저 쪽으로 기울고 어떤 가지는 이쪽으로 기울어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있는데, 서로 다른 쪽으로 자라는 나뭇가지의 운명은 그저 ‘속수무책’이라는 것, 즉 자신이 애썼기 때문에 어느 한 편으로 기운 게 아니라 그것은 ‘결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평범한 자연의 순리를 따랐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여당과 야당의 극심한 대립, 그리고 아주 근소한 차이의 결과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아마도 새 봄에 돋아나는 새 가지의 순들을 바라보면서 언뜻 사람들이 좌측, 우측 기울어져서 서로를 향해서 핏대를 올리는 바로 이런 상황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라는 걸’이라는 표현으로 끝나는 첫 세 행의 싯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도 알아,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속수무책이라는 걸 / 하지만 견딜 수 없어 매번 봄이 오고,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있다는 걸 / 자신을 그렇게 향기로 달래고 있다는 걸’
내가 스스로 애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시인이 제안하는 방법입니다. 나뭇가지들이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자신을 맡겨 향기를 날리며 자신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좀 보라는 것입니다. ‘잠자리 날개처럼’과 ‘농담처럼’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이 시에서 반복되는 시적 이미지라고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잠자리 날개’가 바람에 나는 가벼운 물체이듯이, 삶에서 만나는 여러가지 답답한 일들도 가끔은 ‘농담’처럼 좀 물이 새듯이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서로가 기울어져 가는 방향이 다르다고, 또 오늘 무너져 내리는 것이 곧 지구의 종말인 마냥 ‘너무 가슴 아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네가 좌측으로 기우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기울어 간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농담’이라는 시어를 읽는데 갑자기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생각이 난건 왜일까요. 이 소설에선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여학생이 아무 뜻 없이 던진 가벼운 농담 한 마디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두 남학생이 그 ‘아주 오래된 농담’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 말을 했던 당사자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은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너무 무겁지 않게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한 바람에게’ 맡기면서 ‘오늘 하루가 무너져 내리는 건 내일이 차오르기 위해서라고 / 애써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농담처럼 새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바람이 새듯이, 또 물이 새듯이 그렇게 조금은 헐렁하게 살아가는 것도 때론 필요한 일입니다.
한 가지는 저 쪽으로, 또 다른 가지는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결국 같은 나무의 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무너져 내린 것 같아도 그 나무에서는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이 나고 꽃이 피어, 새로운 내일의 향기가 온 사방에 날린 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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