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 박준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 감상 : 박준 시인은
1983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성장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4학년 재학 중이었던 2008년, <실천문학>신인상에 당선,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 <계절 산문>(달, 2021) 등이 있습니다. 첫 번째 시집으로 2013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7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부문), 2019년에는 두 번째 시집으로 편운문학상(시부문)과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 2020년 3월부터 CBS 음악 FM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 DJ를 맡아오고 있습니다. 출판사 <창비>에서 전문위원으로 편집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서성시의 계보를 잇는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박준 시인. 문학적인 평가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도 함께 거머쥔 드문 시인입니다. 첫 시집은 50쇄를 넘게 찍어 판매 부수 16만부가 넘었고, 산문집은 19만부가 팔렸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도 이미 8쇄를 내서 7만부를 거뜬히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학계의 아이돌 시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시적 은유’로 사용하고 있는 ‘미인’의 존재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아픈 나의 이마를 짚어주고 웃으면서 외출했다가 다시 나에게로 다가오는 ‘미인’, 그리고 그가 아픈 것이 진짜 병이 아니라 ‘꾀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출에서 돌아와 그의 옆에서 무장 해제한 채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미인’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또 새벽 즈음에는 ‘피곤에 반쯤 묻힌’ 얼굴로 햇빛을 받아내고 있다고 노래하는데 과연 이 ‘미인’은 누구를 지칭할까요.
이 시 뿐만이 아니라 그의 많은 시에서 이 ‘미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꾀병’)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호우주의보’) ‘오랫동안 미인은 돌아오지 않고 종이학은 미인의 방으로 들어가 날개를 접었다’(‘학’)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마음 한철’)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인은 무엇을 뜻하며, 누구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시인이 “미인은 내 곁을 떠나 지금은 ‘관계가 죽은’ 사람들 중, 아름답고 애틋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시에 등장하는 미인 중 30% 정도는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난 친 누나예요. 그리고 10%, 5% 등의 지분으로 다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미인 중 한 사람이 아동문학가 권정생 시인이라고도 말했습니다. 20대 시절에 권정생 선생의 글을 많이 읽었다는 시인은 그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미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에 등장하는 미인이 바로 권정생 선생이라는 말도 덧붙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는 표현은 그 '권정생' 미인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장례를 치르면서 애타게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오롯이 표현한 시어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거기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그런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다가 간 선생처럼,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런 시인이길 갈망하며 이 시를 노래했던 것입니다.
CBS 음악 FM(93.9 Mhz) 방송. 제가 거의 하루 종일 듣는 방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십여 년 전 미술대학 교학과에 근무할 때 판화과에 출강하던 후배 겸임 교수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방송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후배는 그 후 불운한 사고로 이미 저 세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머리맡에서 아침 묵상 찬양을 시작으로, 2시간마다 음악의 장르를 달리하면서 하루 종일 음악을 들려 주는 방송입니다. 차 안에서, 또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언제나 은은하게 배경 음악 같이 들리는 방송, 그 방송의 하루 첫 심야 시간(자정에서부터 새벽 2시까지)을 시인이 담당하고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시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미인’을 시적 화자로 등장시켜 미인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 그의 시편들처럼, 그가 진행하는 방송에는 감성 넘치는 아름다운 언어가 풍성하게 흘러넘칩니다.
그가 말했듯이 미인은 시인의 또 다른 분신일 수도 있고, 또 자신의 멘토이며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미인’이 등장하는 같은 시집 안에 있는 또 다른 시 한 편을 감상하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음 한철
- 박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비록 ‘한철 머무는 마음’이지만 그 순수했던 사랑의 시절에는 ‘서로의 전부를 쥐어 줬’을 정도로 서로가 행복했습니다. 그 마음이 영원하면 좋으련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은 녹록치 않아, 그저 ‘한철’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끝내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 미인의 손을 꼭 잡’으면서 자신의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현실에 튼튼하게 뿌리 박은, 그러나 맑은 눈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시리도록 느낄 줄 아는 '미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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