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시집가는 누이에게 - 김용덕

석전碩田,제임스 2022. 10. 12. 09:49

시집가는 누이에게

- 김용덕

잘 살아라 누이야
가난한 집안의 셋째로 태어나
어릿광대 막내에게 밥 한술까지 빼앗기던
착하게만 살아 온 스물넷 누이야
잘 살아라 잘 살아라
원수처럼 가난하던 그해 겨울로 가면
정말로 중학교는 가고 싶어요 어머니
하얀 옷의 간호원이 되겠다던
열네 살 소녀의 은빛 꿈이
기름과자처럼 부서지고
송화 날리는 봄이 오기도 전에 너는
마을 앞 싸구려 과자 공장
저녁이면 기름 범벅 몸빼로 돌아왔지
군것질할 돈이 없었으므로
네가 집어 오는 기름과자가 기다려져
코흘리개 나는 학교가 끝나면
일찍이도 집으로 내 달렸다
남들 다 가던 중학교도 못 나와 공장으로 십년
기름때로 거칠어진 네 손을
누이야 부끄러워 말아라
돈 많아 대학 나온 귀한 집 딸내미들
메니큐어로 고운 손톱은
노동으로 굵어 온 네 손마디보다
아름답지 못하고
거리에 나서면 눈 아프게 화려한 옷들은
십 년간 기름때로 절은 네 몸빼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누이야
니 비록 구석진 산골 탄 촌으로 가지만
우리가 놀던 고향 산마루 칡꽃을 기억하지
칡꽃으로 그렇게 성기게 감고 뿌리 박혀
억세게 살아라
누이야
착하게만 살아온 스물넷 칡꽃 같은 누이야

- 1992년 외대학보 <외대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 199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교양과 건물 앞 명수당(호수) 풀밭에 세워진 시비

* 감상 : 김용덕. 1970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89년 속초고를 졸업하고(재학 중 학생회장 역임) 그해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여 시 동아리인 ‘사월문학회’에 가입하였으며 1991년에는 동아리 회장이 되었습니다. 1992년 외대학보가 주관하는 <외대문학상> 시 부문에서 ‘시집가는 누이에게’가 당선되었습니다. 1993년 9월, 동아리 대표자들의 수련회 중 낙산해수욕장에서 스물셋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집가는 누이를 보내면서 남동생이 부르는 애절한 노래가 마치 가난한 한 가족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 드라마 같이 다가오는 시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른 아이들은 모두 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계속하는데, 가난했던 시인의 누이는 중학교에 가는 대신에 마을 앞에 들어선 과자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공부하고 싶어 간절히 부모님께 소원을 말하던 그해 겨울을 시인은 ‘원수처럼 가난’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수처럼 가난하던 그해 겨울로 가면 / 정말로 중학교는 가고 싶어요 어머니 / 하얀 옷의 간호원이 되겠다던 / 열네 살 소녀의 은빛 꿈이 / 기름과자처럼 부서’졌다고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했던 누이는 매일 저녁 파김치가 되어 몸빼 바지에 기름때 묻힌 채 돌아왔고, 그 손에 들고 온 몇 개의 기름과자는 시인의 최애 군것질이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먹으려고 혹시 남이 먼저 먹을까 봐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내달렸던, 슬픈 아름다운 기억을 소환해내고 있습니다.

누이가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구석진 산골’ 탄광촌으로 시집가는 날, 새삼 남동생으로서 북받쳐 오르는 서러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어릿광대 막내’ ‘코흘리개’라고 부르면서 마치 고해 성사 하듯, 시집가는 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노래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우리가 놀던 고향 산마루 칡꽃을 기억하지 / 칡꽃으로 그렇게 성기게 감고 뿌리 박혀 / 억세게 살아라’고 당부하는 것밖에는 달리 없다는 것이 서러울 뿐입니다.

시는 며칠 전, 점심 식사를 위해 용인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고향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한국외국어대학교 캠퍼스에서 마주쳤던 시입니다. 친구는 평소 식사 후에는 종종 잘 꾸며진 캠퍼스 정원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활기가 넘치는 대학의 젊은 기운을 받곤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친구가 이끄는 대로 외국어대학교 용인 캠퍼스를 방문했고, 마침 그 대학에 근무하는 저의 동료 지인을 일부러 연락하여 그림 같은 호숫가에서 함께 망중한 대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감상하는 이 시에 대한 자세한 사연도 듣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런 애틋한 노래를 불렀던 남동생이, 누이가 시집가는 바로 그 나이인 스물셋에 불의의 사고로 바로 요절하였다는 슬픈 사연을 미리 들었기 때문인지, 이 시비 앞에 섰을 때 그 서러운 느낌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칡꽃 같이 성기게 감으면서 억세게 살자고 서럽게 다짐하며 응원을 보냈던 그 당사자가, 이렇게 허망하게 먼저 먼 길을 떠났다는 사실에, 이 시가 마치 ‘예언적인 슬픈 메시지’를 담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잘 살아라 누이야’로 시작된 시가 ‘억세게 살아라 누이야’로 끝나고 있지만, 그 사이에는 눈물 없이는 읽지 못하는 슬픈 삶의 이야기가 있는 찡한 노래입니다. 그 슬픈 삶의 이야기들에는 빈부의 격차, 노동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의 현실 등 우리 현대사에서 겪어야 했던 사회적인 문제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하지 않게 스치듯이 다루기 때문에 시를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게 하는 것이, 이 시가 시로서 작동하는 비밀일 것입니다. 그저 불행한 한가족의 가난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은연중에 그 현실의 문제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런 공감을 끌어내는 시인의 탁월한 '시적 능력' 말입니다.

인 외국어대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캠퍼스 중앙 위 쪽에 위치하고 있는 ‘명수당’ 호숫가의 이 시비를 꼭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간 시우(詩友)를 위해서 선배, 친구, 후배들이 힘을 합쳐 근사한 시비를 건립하여, 그 애틋한 뜻을 기리며 ‘우정과 사랑’을 확인하는 현장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