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늦가을 문답 / 그네 - 임영조

석전碩田,제임스 2022. 10. 19. 07:56

늦가을 문답

- 임영조

그동안 참 열심히들 살았다
나무들은 마지막 패를 던지듯
벌겋게 상기된 이파리를 떨군다
한평생 머리채를 휘둘리던 풀잎도
가을볕에 색 바랜 몸을 뉘고 편하다
억척스레 살아온 저마다의 무게를
땅 위에 반납하는 가벼움이다
가벼워진 자만이 업을 완성하리라
허나, 깨끗하게 늙기가 말처럼 쉬운가
아하! 무릎 칠 때는 이미 늦가을
억새꽃이 절레절레 제 생을 부정하듯
서릿발 쓴 체머리로 돌아갈 때다
잎 다 진 청미래 덤불 가시에 찢긴
저녁 해가 선혈이 낭자하게 저문다
잡목숲 질러 식은 조각달 물고 가는
저 부리 길고 뾰족한 홀아비 새는
거느리는 식솔이 몇이나 될까
내 빈 속이 문득 궤양처럼 쓰리다
어서 그만 내려가자, 더 늦기 전에
가랑잎같이 따뜻하게 잘 마른
어느 老시인의 손이라도 잡아볼까나
나는 아직 선뜻 내놓을 게 없어서
죄송죄송 서둘러 하산하는데 어!
싸리나무 회초리가 어깨를 후려친다
짐스런 생각마저 털고 가라고?
산에 와 깨치는 늦가을 문답.

- 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 2000)

* 감상 : 임영조 시인.

1943년 충남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 104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정부 관료였던 외숙 때문에 서울에서 공부를 했던 문학도였습니다. 1951년 주산국민학교에 입학했고, 1964년 서울 대동상업고등학교와 1967년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 ‘출항’이 당선되었으며,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목수의 노래’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등단 이전 그의 이름은 임세순. 그러나 이름이 여자 이름 같아 등단하면서 이름을 ‘영조’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까 ‘임영조’는 그의 필명인 셈입니다.

1969년 육군본부 통신대대에서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후 동아일보 출판부에 일자리를 얻었으나 곧 사직하고, 1974년 (주)태평양화학 홍보실에 입사했으며, 1989년 출판부장이 되었습니다. 1994년 생업과 시업 중 시업(詩業)을 택하기로 하고 (주)태평양을 사직했습니다.

작구 사당동에 방 한 칸을 마련한 다음 ‘이소당(耳笑堂)’이란 택호를 걸고 시작(詩作)과 독서를 매진하다가 같은 해 한국 시인협회 제29회 정기총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199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시작으로, 1996년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 1998년 서울시립대 시민대학 문예창작과, 2001년 고려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등에서 시 창작 강사로 출강했습니다. 2003년 한국 시인협회 상임위원장에 취임했으나, 같은 해 5월 28일 췌장암으로 과천 자택에서 영면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신동엽이 주산농고 교사로 근무할 때, 임영조가 다니는 중학교의 지리 교사로 가르친 이력이 있는데 이 때 둘은 사제 지간의 연을 맺었습니다.

번째 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세계사, 1992)로 제38회 현대문학상(1993년), 시 '고도(孤島)를 위하여' 외 10편으로 제9회 소월시문학상(1994년), 타계 후 문학사상사 제정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7년 7월 보령댐 물빛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습니다.

가 남보다 유난히 커서 어릴 적에는 ‘당나귀’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기도 했던 그의 네 번째 시집 제목이 <귀로 웃는 집>이었고, 그가 타계하고 난 후 문학 지인들이 추모 문집을 내면서 책의 제목을 <귀로 웃은 시인 임영조>로 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듯 "편지 같은 시"를 썼던 임영조 시인은 1985년 첫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고려원, 1985)를 발표한데 이어 <그림자를 지우며>(현대문학사, 1988), <갈대는 배후가 없다>(세계사, 1992), <고도를 위하여>(문학사상사, 1994, 소월시문학상 수상시집), <귀로 웃는 집>(창작과비평사, 1997),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 2000), <시인의 모자>(창작과비평사, 2003) 등 총 여섯 권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시인은 3년 전 이맘때 ‘시학 강의’ ‘물’ 등 두 편의 시를 감상하면서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주말, 유년 시절 함께 공부했던 고향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족두리봉을 올랐습니다. 가을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북한산을 오르내리면서 이런 때 딱 맞는 시가 없을까 찾고 있었는데, 마침 지인 한 분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이 시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읽는 순간, ‘어쩌면 이리도 잘 표현했을까’ 심하게 공감이 가는 시였습니다.

히 나이를 계절에 비유하곤 합니다.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시절이 여름이라면, 낙엽지는 가을은 모든 욕심 내려놓고 하나둘 반납하며 가벼워져야 하는 노년의 나이입니다. 시인은 ‘가벼워진 자만이 업을 완성하리라 / 허나, 깨끗하게 늙기가 말처럼 쉬운가 / 아하! 무릎 칠 때는 이미 늦가을’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시를 발표한 해가 2000년이니, 2003년에 갑자기 작고한 시인에게는 당시 본인은 몰랐겠지만 분명 ‘늦가을’ 아니 '추운 겨울의 초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이 ‘가을의 나이’에 바라본 가을의 풍경이기에 이 시가 더욱 공감이 가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인은 가을 산을 오르내리면서 그동안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물론 시인만 그리 열심히 산 게 아니라 시인의 눈에는 모든 만물이 다 ‘열심히들’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묘미는 바로 그 '열심히들' 살았던 순간을 표현하는 시어들과 이제 가벼워지는 때인 늦가을을 맞는 순간을 표현한 시어들을 대비시켜 읽는 것입니다.

무는 ‘벌겋게 상기된 이파리’를 '떨구고', 풀잎은 ‘한평생 머리채 휘둘리던 몸’을 가을볕에 색 바랜 몸으로 '눕습니다'. 성하(盛夏)의 여름을 호령했던 태양은 이제 저녁 해가 되어 ‘청미래 덤불 가시에 찢겨 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저뭅니다'. 잡목 속을 누비며 식은 조각달을 물고 가는 홀아비 새는 ‘거느리는 식솔’이 많아서 한 시도 쉴 수 없었던 시인 자신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위 ‘궤양’을 앓듯 속이 쓰리다고 슬프게 노래합니다. 가을의 나이에 바라보는 가을의 모습이 참으로 애틋합니다. 내가 ‘가을’을 살고 있으니 보고 싶지 않아도 가을의 민낯을 보고 말았다는 말이 적합한듯합니다. 지는 때이고 내려놓는 때이며 반납하는 때이고 가벼워져야 하는 때입니다. 마지막 패를 던지듯 떨구어야 하고, 제 생을 부정하듯 절레절레 체머리 흔들 듯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산을 내려 가서 가랑잎처럼 ‘따뜻하게 잘 마른’ 시를 짓는 일에 매진해보자 다짐하며 하산을 재촉하는데, ‘싸리나무 회초리가’ 시인의 어깨를 후려치면서 아직까지도 ‘선뜻 내놓을 게 없’는 시인을 꾸짖습니다. 뭔가를 이뤄보자고 애쓰는 그 ‘짐스런 생각마저 털고 가라‘고 말입니다. 산 위에서 스스로 선문답을 통해 깨달은 '삶의 정답'으로 인해 하산하는 시인의 발걸음은 가벼웠을 것입니다.

을 마무리하기 전, 시인의 시 하나를 더 감상하고 싶습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이 시인이 자신이 이렇게 급하게 삶을 마감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쓴 시들이었을텐데, 마치 자신의 삶을 예지라도 한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은퇴를 한 입장이어서 그런지, 명퇴라든지 정년이라는 시어가 있어 눈에 들어 온 시입니다. 평생을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네‘를 탔지만, 이제는 놀이터에서 그 ’그네‘를 손주에게 내어주고 줄을 쥐어주며 꽉 잡고 ’놓치지 마라!‘고 외치며 밀어주어야 하는 덧없는 인생입니다.

나브로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 석전(碩田)

그네

- 임영조

어디서 명퇴한 중년일까
아파트단지 어린이 놀이터에서
반백의 사내가 아침을 민다
서너 살 손주 놈을 그네 위에 앉히고

줄을 꼭 잡아라! 놓치지 마라!
거듭 당부하면서 힘껏 밀어올린다
와와, 둥근 해가 솟는다 아이가 뜬다
허공 가득 퍼지는 해맑은 웃음소리
나뭇잎들 팔랑팔랑 손뼉을 친다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올라라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라
검버섯 핀 손등으로 그네를 미는
저 반백의 사내는 지금, 놓쳐버린 꿈
흘리고 온 세월을 미는 것일까

남은 생을 밀어내는 것일까
생이란 무릇 그네 타기 같은 것
아무리 밀어도 밀어 올려도 그네는
다시 제자리로 내려올 것이다

- 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 2000)

북한산 족두리봉을 산행하고 내려오는 길...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찍은 사진(2022.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