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1994)
* 감상 :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연무대에서 태어났습니다. 연세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였습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창비, 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1994),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 <어두워진다는 것>(창비, 2001),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야생사과>(창비, 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그녀에게>(예경, 2015), <파일명 서정시>(창비, 2018)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반 통의 물>(창비, 1999),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 <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희덕 산문집>(마음의 숲, 2020), 시론집으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창비, 2003), <한 접시의 시>(창비, 2012) 등이 있습니다. 김수영문학상(1998), 김달진 문학상(2001), 현대문학상(2003), 이산문학상(2005), 소월시문학상(2007), 지훈상(2010), 임화문학예술상(2014), 미당문학상(2014), 백석문학상(2019)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01년~2019.2월)를 거쳐 2019년 3월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산속에서 시적 화자가 겪은 시련과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대수롭지 않았던 존재들의 소중함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소중하다고 느끼게 된 존재는 다양합니다.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 누군가 맞잡을 손’,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길을 잃어보지 않’았을 때에는 전혀 몰랐던 존재라고 시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막무가내의 어둠’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산속에서 길을 잃은 상황을 시인은 ‘막무가내의 어둠’이라고 불렀습니다.
살아가면서 상상치도 않았던, 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길이 그저 평범한 길이라면 웬만큼 견딜 수 있겠지만, 시인이 말한 것처럼 ‘산속에서’ 만난 ‘막무가내의 어둠’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느닷없이 듣게 된 의사의 무서운 진단 결과가 그렇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곁을 떠나는 이혼과 이별, 또는 사고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날벼락처럼 찾아 와 솟아날 구멍조차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갑작스런 실직이나 이직, 또 예기치 않았던 불길한 사고는 또 어떤가요. 애매한 오해로 나 홀로 진실을 위해서 발버둥을 쳐 보지만 결국은 더 깊은 오해의 수렁으로 빠져버리는 ‘산속에서 만난 밤’ 같은 인간관계의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산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비록 거대한 산등성이가 이어지는 산맥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이 있는 보잘것 없은 허름한 집의 존재가 너무도 따뜻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다는 고백입니다.
2013년 7월 13일.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학생들 20명과 함께 성하(盛夏)의 나라 필리핀으로 하계 해외 봉사 활동을 갔다가 왼쪽 귀 안에 엄청난 대상포진이 발진하면서 안면 마비 증상이 왔던 사건은 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오랜 치료 과정, 그렇지만 아직도 완쾌되지 않아 왼쪽 눈에는 인공 눈물을 계속 넣어야 하고, 또 왼쪽 안면 근육이 여전히 마비되어 있어 맘껏 웃지도 못합니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우울증’을 직접 경험할 정도로 절망했고 또 혼자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시인이 표현한 ‘막무가내의 어둠’이라는 시어가 온 몸으로 공감이 가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 ‘일대 사건’이 있기 전까지 살았던 55년의 인생보다, 지난 9년간의 삶이 더 의미 있었고, 또 따뜻한 손을 맞잡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먼 곳의 불빛’이 나그네로 하여금 계속해서 더 걸어갈 수 있게 했다고 노래한 시인의 노래처럼,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 ‘작은 지붕’의 존재를 알게 된 시간이었으니 말입니다. 같은 병을 앓기 전에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그저 표면적으로 밖에 알지 못했지만 내가 똑같이 아파본 후에야 그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보이고 그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시인이 첫 행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고 단정하는 것도 아마도, 시인은 이런 아픔을 이미 경험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시는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에 방점을 찍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무리 캄캄한 어둠이 내린 산속이라 할지라도 ‘맞잡을 손’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있음을 발견해 나가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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