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437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 신경림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 신경림 질척이는 골목의 비린내만이 아니다 너절한 욕지거리와 싸움질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깊은 가난만이 아니다 좀체 걷히지 않는 어둠만이 아니다 팔월이 오면 우리는 들떠오지만 삐꺽이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아니면 소줏집 통걸상에서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외국의 어느 김빠진 야구 경기에 주먹을 부르쥐고 미치광이 선교사를 따라 핏대를 올리고 후진국 경제학자의 허풍에 덩달아 흥분하지만 이것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쓸개 빠진 헛웃음만이 아니다 겁에 질려 야윈 두 주먹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서로 속이고 속는 난장만이 아니다 하늘까지 덮은 저 어둠만이 아니다 - 시집, (창작과 비평사, 1973) * 감상 : 신경림 시인. 19..

울음통 - 최서림 / 허향숙

울음통 - 최서림 울룩불룩 균형이 안 잡힌 내 몸통에는 아담 이래 온갖 울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술 취한 노아의 붉은 울음이 유전자로 내려오고 있다. 북방 초원의 밤바람소리 같은 울음이 알을 까고 있다. 황소같이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울음이 소리 죽이고 있다. 메마른 하천 밑을 흐르는 개울물 같은 어머니의 울음이 대를 이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노란 리본이 별처럼 매달려 있는 부두에서 캄캄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보면서도 울음이 터져 나오지 못해 숨이 턱, 턱, 막혀오는데, 가슴을 쥐어뜯으며 쏟아내어야만 살 것 같은데, 그 많던 눈물이 어디로 다 숨어버렸는지 꼬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몸 안에서는 모래바람만 닳고 닳은 바위를 사납게 때린다. 새벽 비에 씻긴 쑥부쟁이, 구절초같이 내 영..

그렇게 하겠습니다 / 작은 이름 하나라도 - 이기철

그렇게 하겠습니다 - 이기철 내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내 밟고 온 길 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 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이 내 길 건너며 무표정했던 이웃들에 사죄합니다 내 작은 앎 크게 전하지 못한 교실에 내 짧은 지식 신념 없는 말로 강요했던 학생들에 사죄합니다 또 내일을 맞기 위해선 초원의 소와 순한 닭을 먹어야 하고 들판의 배추와 상추를 먹어야 합니다 내 한 포기 꽃나무도 심지 않고 풀꽃의 향기로움만 탐한 일 사죄합니다 저 많은 햇빛 공으로 쏘이면서도 그 햇빛에 고마워하지 않은 일 사죄합니다 살면서 사죄하면서 사랑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 시집, (민음사, 2005) * 감상 : 이기철 시인. 1943년 1월, 경남 거창군 가조면 석..

감자를 먹습니다 / 선물 - 윤이산

감자를 먹습니다 - 윤이산 또록또록 야무지게도 영근 것을 삶아놓으니 해토解土처럼 팍신해, 촉감으로 먹습니다 서로 관련 있는 것끼리 선으로 연결하듯 내 몸과 맞대어 보고 비교 분석하며 먹습니다 감자는 배꼽이 여럿이구나, 관찰하며 먹습니다 그 배꼽이 눈이기도 하구나, 신기해하며 먹습니다 호미에 쪼일 때마다 눈이 더 많아야겠다고 땅 속에서 캄캄하게 울었을, 길을 찾느라 여럿으로 발달한 눈들을 짚어가며 먹습니다 용불용설도 감자가 낳은 학설일 거라, 억측하며 먹습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니 다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옹심이 속에 깡다구가 들었다는 건 반죽해 본 손들은 다 알겠지요 오직 당신을 따르겠다₁₎는 그 일념만으로 안데스 산맥에서 이 식탁까지 달려왔을 감자의 줄기를 당기고 당기고 끝까지 당겨보면 열세 남매의 골..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송윤옥 - 이은봉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 송윤옥 - 이은봉 두부두루치기 백반을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리어카에서 파는 헐값의 검정 비닐구두 잘도 어울리던, 반주로 마신 몇 잔의 소주에도 쉽게 취하던, 마침내 암소를 끌고 가 썩은 사과를 바꿔 와도 좋다던, 맨몸으로도 좋다던 여자가 있었다. 한때는 자랑스럽게 고문진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자,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장독대 같은 여자 두부두루치기 같은 여자 맵고 짠 여자 가 있었다 어쩌다 내 품에 안기면 푸드득 잠들던 여자가 있었다. 신살구를 잘도 먹어치우던, 지금은 된장찌개 곧잘 끓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 -시집 (북민, 2007) * 감상 : 이은봉 시인. 1953년 5월, 충남 공주군 장기면 당암리(현, 세종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전 숭전..

신세계 / 독자에게 온 편지 - 아담 자가예프스키

신세계 - 아담 자가예프스키 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은 편지들은 저들끼리 서신 교환을 하고 있다 읽지 않은 책들은 일곱 개의 상처를 펼쳐 보인다 세상 한가운데 살려면 모든 것에 의지해야 하는 법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이 너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기를 그만두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정말로 모르겠다 시골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그의 셀 수 없는 희생자들이 살아 있는지 자기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병원으로 위문 간 토마스 만이 아직 살아 있는지 드로호비츠₁₎의 유대 성인이 오늘날 누구인지 너무나 사랑해서 결국은 결혼하지 못한 위대한 고행자들의 약혼녀들은 어디 있는지 하지만 너는 살아 있다 이 세상 한가운데에 네 오른쪽에는 죽은 사람들이 있고 산 사람들은 아직 없다..

이 시대의 변죽 - 배한봉

이 시대의 변죽 - 배한봉 변죽을 아시는지요 그릇 따위의 가장자리, 사람으로 치면 저 변방의 농군이나 서생들 변죽 울리지 말라고 걸핏하면 무시하던 그 변죽을 이제 울려야겠군요 변죽 있으므로 복판도 있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줘야겠군요 그 중심도 실은 그릇의 일부 변죽 없는 그릇은 이미 그릇이 아니지요 당신, 아시는지요 당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변죽,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하는 변죽, 당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변죽, 삼거웃 없는 마음을 중심에 두고 싶은, 변죽을 쳐도 울지 않는 복판을 가진 이 시대의 슬프고 아픈 변죽들을 ☞삼거웃 : 삼 껍질의 끝을 다듬을 때에 긁히어 떨어진 검불. 허물을 의미. - 시집, (세계사, 2004) * 감상 : 배한봉 시인. 196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경희대학교 ..

아카이브 - 황인찬

아카이브 - 황인찬 이 계단을 오르면 집에 이른다 제비들이 창턱에 앉아 뭐라 떠들고 있다 그것이 여름이다 장미가 피는 것을 보며 여름을 알고 무궁화가 피는 것을 보며 여름인 줄을 알고 벌써 여름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지난여름에도 똑같은 말과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이 알아차림을 평생 반복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마다 여름은 창턱을 떠나 날아갈 준비를 한다 이 계단은 집을 벗어난다 여름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고 여름이 이리저리 피어 있는 풍경이다 낮은 풀들이 한쪽으로 밟혀 누워 있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이 누적 없는 반복을 삶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이 시의 서정적 일면이다 - 시집, (창비, 2019) * 감상 : 황인찬 시인. 1988년 경기도 안양에..

덤 - 김광림

덤 - 김광림 나이 예순이면 살 만큼은 살았다 아니다 살아야 할 만큼은 살았다 이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더 살면 덤이 된다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宗三은 덤을 좀만 누리다 떠나갔지만 피카소가 가로챈 많은 덤 때문에 仲燮은 진작 가버렸다 가래 끓는 소리로 버티던 芝薰도 쉰의 고개턱에 걸려 그만 주저앉았다 덤을 逆算한 천재들의 밥상에는 빵 부스러기 생선 찌꺼기 초친 것 등 지친 것이 많다 그들은 일찌감치 숟갈을 놓았다 素月의 죽사발이나 李箱의 심줄구이 앞에는 늘 아류들이 득실거린다 누군가 들이켜다 만 하다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 宗三: 시인 김종삼, 仲燮: 화가 이중섭 - 시집 (문학아카데미.1989) - 한국대표시인 100인 시선집 44, (미래사, 1991) 김종삼(192..

소나무를 만나 / 화천리 무지개 - 박곤걸

소나무를 만나 - 박곤걸 바람을 다스리지 못하겠거든 산으로 가서 소나무를 만나 말 대신 눈으로 귀를 열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절제하고, 절단하고 바람이 부는 날 하늘에다 온몸으로 수화하는 나무의 설법에 큰절하고 잘 늙은 소나무가 손짓해 주는 그 곁에 가서 뿌리를 내려라 어느덧 산을 닮아 푸른 자태가 제격이면 바람도 솔잎에 찔려 피를 흘린다 - 시집 (문예운동, 2002) * 감상 : 박곤걸 시인. 1935년 11월 경주 건천읍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 등을 겪으면서 대구 사범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1957년 졸업 후 경주 입실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한 후 40여년 교단에서 시인으로 후학들을 가르치다 영남공고를 마지막으로 교직에서 퇴임하였습니다. 1964년 매일신문 ..

축구 / 굿모닝 - 문인수

축구 - 문인수 파죽지세의 응원이 계속 끓어오르고 있다. 옆의 사람을 와락, 와락, 껴안고 폭발적으로 낳는 열광이 '붉은 악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지금∼ 오 천 년 만에 처음 그늘진 데가 없다. 가을날의 내장산이나 설악의 바람같이 번지는 춤, 우는 이도 많다. 저런 표정에도 곧 바로 마음이 건들리는, 불의 뿌리가 널리 동색이다. 다스리지 않았으나 눈물이 기름이어서 잘 타오르는 것이다. 그 힘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저 흰 출구. 전국의 인구가 모처럼 다 몰려나와 있다. 뜨겁게 펼쳐지는 씻김굿 한 판이, 해방이 참 광활한 대륙이다. - 시선집, (한국시인협회, 2002) * 감상 : 어제 들려 온 슬픈 부음 소식이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2년 전 그의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소개했던 저의 고향인 ..

목욕탕에서 / 문학시간 - 김은숙

목욕탕에서 - 김은숙 목욕탕에서 옛 친구 정화를 만났네 몇 년 전 유방암 수술을 했다며 검정 비닐로 왼쪽 가슴을 애써 감추고 있는 정화 가슴을 싸안고 있는 오른팔의 거리만큼 가까이 다가서면 안될 것 같아 나 또한 제대로 눈길을 줄 수 없었네 정화야 착하고 따뜻한 내 친구야 네 몸에 깊게 패인 상처가 네 마음의 그늘까지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누구에게도 완전히 열리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빗장까지 만든 건 아닌지 네 그 넉넉한 마음까지 움츠려들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착한 친구 정화야 네가 내 친구로 다가올 때 그러했듯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도 너의 그 깊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소중한 사랑이 되었음을 기억해 네가 빛나는 건 그 크고 깊은 눈에 담긴 넉넉하고 깊은 사랑임을 생각해 깊고 고운 마음..

끝내 하지 못한 질문 / 통사론 / 마트에서 길을 잃다 - 박상천

끝내 하지 못한 질문 - 봄날의 목월 생각 - 박상천 지금은 윤사월도 아니고, 문설주에 기대어 있는 외딴 집 눈먼 처녀도 보이지 않지만 매년 이 맘 때쯤이면 날리는 당신의 송홧가루. 오늘은 비가 내려 고인 빗물 위에 띠를 이룬 노란 송홧가루가 곱습니다. 송홧가루를 볼 때마다 이제 막 문학개론 수업이 끝난, 70년대 어느 봄날의 행당 언덕이 떠오릅니다. 그 풍경 속에는 맑은 햇살 속에 언덕에 오르는 당신의 구부정한 어깨가 보이고 수업시간에 끝내 하지 못한 질문을 가슴에 품고 당신을 부를까 말까 망설이며, 발자국 소리를 내는 것조차 죄스러운 듯 조심스레 당신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 대학 신입생의 모습도 보입니다. 고인 빗물 위에 띠를 이루어 몰려 있는 송홧가루 위로 또 비가 내립니다. 저는 오늘, 내리는 빗..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 - 권경업

이슬을 낚는 거미는 배가 고프다 - 권경업 아침 산책길 숲 속 거미줄에 이슬이 걸려 있다 다들 눈부셔라, 눈부셔라 하지만 이슬이 마를 동안 눈먼 먹잇감도 걸리지 않을 다 드러나 버린 거미줄 안개 낀 삶의 막막함에, 때로는 밥보다 시가 더 필요한 날도 있겠지만 허공의 어둠을 훑어 이슬을 낚으면 틀림없이 배가 고프다 - 계간 2005년 봄호 * 감상 : 권경업 산악시인, 사회사업가, 산악인. 1952년에 태어나 경남공업전문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시인을 소개해 온 방식으로 그를 소개한다면 앞에 쓴 것과 같이 딱 한 줄 밖에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산과 관련하여 그를 소개하면 몇 페이지를 할애해도 부족할 정도로 이야기할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이 땅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한, 1970년대 부산 지역을..

부패의 힘 - 나희덕

부패의 힘 -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 시집 (민음사,1997) * 감상 :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연무대에서 태어났습니다. 연세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였습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창비, 1991), (창비, 1994), (문학..

냉이 꽃 / 냉이 꽃 한 송이 때문에 - 손택수

냉이 꽃 - 손택수냉이 꽃 뒤엔 냉이 열매가 보인다작은 하트 모양이다 이걸 쉰 해 만에 알다니봄날 냉이무침이나 냉잇국만 먹을 줄 알던 나,잘 익은 열매 속 씨앗은 흔들면 간지러운 옹알이가 들려온다어딜 그렇게 쏘다니다 이 제사 돌아왔니아기와 어머니가 눈을 맞추듯이서로 보는 일 하나로 가지 못할 곳이 없는 봄날쉰내 나는 쉰에도 여지는 있다나는 훗날 냉이보다 더 낮아져서,냉이뿌리 아래로 내려가서키 작은 냉이를 무등이라도 태우듯들어 올릴 수 있을까그때, 봄은 오고 또 와도 새봄이겠다- 시집, (창비, 2020)* 감상 :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 강쟁리에서 출생하였고 어린 시절 부산으로 건너와 부산에서 초.중.고교, 그리고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부산대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1998년 한국일보 ..

시인들을 위한 동화 - 한명희

시인들을 위한 동화 - 한명희 아주아주 옛날에는 사람들이 몸으로 글을 썼어요 고호가 귀를 잘라 그림을 그린 것처럼요 사마천이란 사람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잘라 글을 썼답니다 세월이 흘러흘러 사람들은 도구를 이용하게 되었어요 예세닌은 손목의 동맥을 절단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나온 피를 펜에 찍었답니다 그가 쓴 시들은 비린내가 났지요 또 시간이 흘러 글쟁이들은 작업실을 갖게 되었답니다 보들레르는 창녀이자 애인의 방에서 트라클은 여동생이자 애인의 방에서 포는 사촌 여동생이자 아내의 방에서 작업을 했어요 아주 격정적인 작업이었지요 그리고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쟁과 내전, 불신과 검문, 폭력과 폭식, 기상이변에 광주민중항쟁 힌두쿠시 산맥 남쪽에서는 테러가 일어났고 애플은 아이패드를 내놓았지요 두바이유..

머무는 시간 - 정한용 / 자목련 꽃잎이 되어 - 이당

머무는 시간 - 정한용 눈 내렸다는 소식을 먼 환청처럼 듣습니다.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소리가 있고,그 소리에 예민해 진 귀를 갖은 자가 간혹 있습니다.소리가 향기나 별빛처럼시각과 후각을 두드리기도 합니다.하지만 나는 침묵이 더 좋습니다.침묵 속에 베여있는 단단한 응집이 더 좋습니다.이제 여행 막바지, 지금껏 어둠을 향했다면 오늘은 빛을 찾아갑니다.곧 돌아갑니다. - 시집 (여우난골, 2021.2월) * 감상 : 정한용 시인.195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0년 신춘문예에 평론 ‘초극지의 구조적 현현’이 당선되었고 1985년 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집으로 (1990), (1994), (1999), (2006), (2011..

목련이 진들 / 정님이 - 박용주

목련이 진들 - 박용주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 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 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 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빛 꽃잎이 되어 우리네 가슴 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픔 함성으로 한 닢 한 닢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 순결한 꽃인 것을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피어 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 우리들 오월의 꽃이 아직도 애처로운 눈빛을 하는데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 1988..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 박형권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 박형권 달이 뜨지 않는 그믐밤이면 바다는 스스로 밝다 파도에 뛰어든 뿌연 인광이 항구의 앙가슴처럼 스스스 무너진다 아직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순결한 밤일수록 더욱 빛난다 빛도 바다의 일부분인 것을 어부들은 안다 가덕도 사람들은 어두운 밤바다의 인광을 ‘시거리’라고 부른다 인도에서 흑조(黑潮)를 타고 온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다의 인광은 바다의 말일 것이다 사실은 야광충이 내는 빛이지만 나는 여전히 말이 빛을 내는 거라고 믿는다 누구나 한번은 어휘가 많은 인생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말의 고향인 인도로 한번 놀러가고 싶었다 그 그믐밤 아버지는 나를 저어 탕수구미로 낚시를 갔다 칠흑 같은 바다가 노의 궤적을 그렸다 몰고씨이를 꿰고 바다에 넣자 바다가 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