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힘
-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 시집 <그곳이 멀지않다>(민음사,1997)
* 감상 :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연무대에서 태어났습니다. 연세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였습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창비, 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1994),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 <어두워진다는 것>(창비, 2001), <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 2004), <야생사과>(창비, 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그녀에게>(예경, 2015), <파일명 서정시>(창비, 2018)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반 통의 물>(창비, 1999),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 <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희덕 산문집>(마음의 숲, 2020), 시론집으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창비, 2003), <한 접시의 시>(창비, 2012) 등이 있습니다. 김수영문학상(1998), 김달진 문학상(2001), 현대문학상(2003), 이산문학상(2005), 소월시문학상(2007), 지훈상(2010), 임화문학예술상(2014), 미당문학상(2014), 백석문학상(2019) 등을 수상하였으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01년~2019.2월)를 거쳐 2019년 3월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우리 인간사 모든 문제가 내가 썩어 없어질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는데서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인이 오늘 감상하는 시에서 얘기하고 싶은 게 바로 그 점입니다.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라는 넷째 연을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라고 그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 비판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고백에 100% 공감이 가는 이유입니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발견한 시인은 일종의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나 할까요.
이제 시인은 그런 깨달음을 얻었으니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봐도, 또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을 보더라도 안심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녹슬거나,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될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자기 한계를 진솔하게 고백하는 자연스런 모습이니 오히려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심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의 계시를 받아 이 땅에서 천년 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달콤한 속임수로 사람들을 모아, 자신들만의 종교 집단을 이룬 후 계속해서 ‘방부제’를 삼키게 하며 자기 최면을 강화시켜 나가는 집단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그럴 듯한 성경의 용어를 끌어다 쓰면서, 자신들은 절대로 썩지 않는 ‘불멸’의 약속을 받은 자의 계시만 따라가면 천년을 살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썩어 문드러져 있는 기존의 집단을 비난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세를 불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단에 일단 들어온 어리석은 사람들이 탈퇴하거나 흩어지지 못하도록 지금은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게 하면서’ 자기들만의 아성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꼭 종교만이 그런 게 아닙니다. 자기 한계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없다면 그곳이 어디든지 똑같은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평범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썩어 없어지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을 ‘영생’ ‘불멸’ ‘영원히 썩지 않는 존재’로 착각하여, 헛된 욕망의 낚시 바늘을 덥썩 문채 영락없이 꼭두각시가 되어 버리는 일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얼마나 비일비재 일어나는지요.
청년 시절부터 순수 신앙 공동체를 꿈꾸며 신앙심이 돈독했던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나희덕 시인은 그들이 일하는 보육원에서 ‘고아 아닌 고아’처럼 부모 없는 아이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10살이 될 때까지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장 환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녀였습니다. 그녀가 쓴 산문집에 실려 있는 ‘내 유년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라는 글을 보면, 탱자나무 가시가 한 때는 힘든 고통이긴 했지만 결국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성장할 수 있었음을 알 때 쯤 유년 시절을 벗어났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삶 속에서 만나는 가시가 꼭 탱자나무에만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녀에게는 아마도 유년 시절에 그 탱자나무 울타리 가시가 아프게 느껴졌나 봅니다. 마음속에서 뽑아내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돋아나는 삶의 가시는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가시가 삶을 겸손하게, 또 자기 한계의 고백을 하게 한다면 어쩌면 ’그 탱자나무 가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어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자연의 큰 스승‘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썩어 없어질 유한한 존재라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시인이 노래했듯이 그것은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며, 일종의 무릎 꿇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겸손 또한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불멸이라는 말만큼 오만하고 무서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썩지 않기 위해서 방부제를 들이키며 안간힘을 쓰기 보다, 오히려 썩을 수 있음에, 녹슬 수 있음에 안심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하며 겸손하게 무릎 꿇으며 오늘 하루도 시작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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