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머무는 시간 - 정한용 / 자목련 꽃잎이 되어 - 이당

석전碩田,제임스 2021. 4. 20. 18:06

머무는 시간

 

- 정한용

 

눈 내렸다는 소식을 먼 환청처럼 듣습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소리가 있고,

그 소리에 예민해 진 귀를 갖은 자가 간혹 있습니다.

소리가 향기나 별빛처럼

시각과 후각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침묵이 더 좋습니다.

침묵 속에 베여있는 단단한 응집이 더 좋습니다.

이제 여행 막바지,

지금껏 어둠을 향했다면 오늘은 빛을 찾아갑니다.

곧 돌아갑니다.

 

- 시집 <천 년동안 내리는 비>(여우난골, 2021.2월)

 

* 감상 : 정한용 시인.

195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초극지의 구조적 현현’이 당선되었고 1985년 <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1990), <슬픈 산타페>(1994), <나나 이야기>(1999), <흰 꽃>(2006), <유령들>(2011), <거짓말의 탄생>(2015), 영문시집 (2015), <천년 동안 내리는 비>(여우난골, 2021.2) 등을 냈으며, 그 외 저서로 <민족문학 주체 논쟁>(1989 편저),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1995 평론집), <울림과 들림>(2006 평론집) 등이 있습니다. 인터넷 문학동인회 [빈터] 대표를 역임했고, <정신과 표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한용 시인은 절제된 문장과 서정성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사회의 모순 상황과 시대의 아픔, 고통을 풍자화 하는 시적 형상화와 상황 설정이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인일보 [풍경이 있는 에세이] 칼럼에 오랫동안 글을 게재해 오고 있기도 합니다.

 

한용 시인은 지난 해 9월, ‘좌우에 대한 숙고’를 함께 감상할 때 이미 소개한 바 있었는데, 그 사이, 올해 초 자신의 일곱 번째 시집을 또 냈더군요. 그리고 오늘 감상하는 이 시는 그 시집 속에 수록된 따끈따끈한 시입니다. 어느 일간 신문에 이 시가 소개 된 걸 읽으면서 갑자기 중환자실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촌 형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도 시 속에 사용된 ‘먼 환청처럼’이라는 표현과 ‘이제 여행 막바지’ 그리고 ‘곧 돌아갑니다’와 같은 시어들이 연결고리가 되어, 첨단 기계에 의존해서 삶의 마지막 구간을 힘겹게 달려가고 계신 형님이 갑자기 생각 난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은 모두 이렇게 이내 떠나야 할 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난 설날,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시행되고 있어 부득이 설날 당일에는 찾아뵙지 못하고 그 전 날 가족들의 대표로 형님께 세배를 갔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전한 모습으로 다정스럽게 맞아주시며 이런 저런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눈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폐렴 증상으로 갑자기 입원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보호자조차도 접근이 제한될 정도로 기약 없는 긴 잠(혼수)에 빠져 있으니 참으로 황당할 뿐입니다. 오로지 청각만 열려 있는 형님은 아마도 지금쯤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먼 환청’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눈 내렸다는 소식’도 그 중의 하나일까요. 아마도 벚꽃이 피고 목련이 졌다는 소식도 있겠지요.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소리가 있고/ 그 소리에 예민해 진 귀를 갖은 자가 간혹 있습니다’라고 시인은 노래했지만, 바로 형님이 머무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런 상황이 아닐까. 그리고 그 ‘소리가 향기나 별빛처럼/시각과 후각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침묵이 좋습니다/ 침묵 속에 베여있는 단단한 응집이 더 좋습니다’는 표현은 결국, 신 앞에 단독자로서 서야 하는 우리네 인생의 궁극적 운명을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디에 머물든, 또 그 시간이 언제이건 머무는 그 시간, 주위에 가득한 소리들에 예민해 질 이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간혹 그것들에 예민해져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저 침묵으로, 내 속에 쌓여 진 단단한 내공으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머물러 있는 이 순간은 곧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그네 길의 마지막 귀한 시간이니까요.

 

님에 대한 추억을 떠 올릴 때마다 저는 어릴 적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준 생명의 은인으로 늘 기억합니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제가 5살이 되던 정월 대보름날이었다고 합니다. 점심을 먹은 후 청장년들이 모두 달불을 놓으러 할미산성에 올라가는데, 나도 아장아장 따라 부쳤답니다. 그런데 걸음도 느리고 높은 산에 오르기도 어려우니까, 큰 누님이 나를 산 중턱쯤에서 윽박질러 돌려보냈습니다. 꽃샘추위에 울면서 혼자 집에 돌아왔던 저는 그 날 밤,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는데 한 밤 중, 갑자기 맥박이 뛰지 않고 죽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출타 중이라 안 계시고 너무 놀란 어머니는 옆 집에 사시는 사촌 큰 형님을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불러 깨우고 사촌 형님은 나를 업고, 엄마는 그 뒤를 따라 가천 면사무소 의원을 찾아 길을 나섰답니다.

 

런데, 가다가 생각하니 이런 증상은 한의원이 좋겠다 싶어,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의원을 포기하고 고개 정상에서 되돌아서 아랫 마을(청룡) 한의원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뒤에 따라가면서 보니 두 발은 덜렁덜렁 완전히 죽은 시체 그 자체였다고. 한의원에 도착하니 자다가 부시시 일어나신 의원이 나를 진맥하는데 맥박도 없고 호흡도 없는 상태로 완전 죽어 있었습니다. 침을 가지고 온 데를 다 찔러도 미동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마지막 비상 수단으로 큰 침을 정수리 한 가운데를 푹 찔렀더니 움찔하면서 그제야 울었다고 하더군요.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 난 거였지요.

 

운 날, 찬 오곡 찰밥을 먹고 누나 형들을 따라 급하게 산을 올라가다가 급체를 했던 겁니다. 저를 살렸던 그 한의사는 그 다음부터 저만 보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 크게 될 거라고 늘 격려해주시곤 했지요. 제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가는 건 그 한의사 어른과 어머니, 그리고 바로 지금 사경을 헤매고 계신 형님의 격려와 수고 덕분입니다.

 

형님은 제 기억에 유머를 좋아하시는 수줍은 멋쟁이였을 뿐 아니라 우리 마을에서는 가장 힘이 센 ‘장사’였습니다. 동네 어귀에 있었던 물레방앗간에 원동기가 처음 설치되었을 때, 그 육중하고 큰 바퀴를 힘으로 돌려 시동을 걸어야 했는데 유일하게 힘으로 그것을 해 낼 수 있었던 사람이 제 기억으로는 형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강인했던 분이 오늘은 ‘가지 끝에서 떨어질까 말까/ 아래를 내려다보며 / 아슬아슬한 저울질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픕니다.

 

버지의 투병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스스로 한탄하며 아픈 마음을 시로 써 내려간 사부곡(思父曲)입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스러져가는 자목련(紫木蓮) 꽃잎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노래가 절절하게 들려옵니다.

 

자목련 꽃잎이 되어

 

 - 이당 배한조

 

거리에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겨울 산을 벗어나

정원의 꽃 분홍 진달래꽃으로 피더니

오늘은 벚꽃이 되었다.

어느새

마지막 남은 자목련 꽃잎 하나가

가지 끝에서 떨어질까 말까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슬아슬한 저울질을 하고 있다.

 

매화꽃이 스러져 가는 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세상사 겉치레는 다 벗어버리고

온몸에 주렁주렁 새 장식을 달고

명줄을 잡을까 놓을까

흐릿한 안개속의 나락으로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자목련 꽃잎이 되었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수액은

가는 비닐 관을 타고 저승사자처럼

소리 없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며

허물어져 가는 토담집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황태처럼 건조해지는 혀, 말라가는 의식,

애타게 그리는, 하소연 들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꿈결같이 지나치는 사람들은

물 한 방울의 자비도 바랄 수 없는

로봇처럼 딱딱하고 차디찬 피부를 가졌다

 

황태 입속에도

순한 바람과 속살처럼 따스한 봄비라도

내려준다면

그 비에 토담집은 허물어져도

촉촉이 젖은 채 미소 띤 자목련 꽃비로 내려

고개돌려 뒤돌아보지도 않고

저 대지 어느 곳에 고요히 스며들 텐데. (2021.4.18.)

 

가 머물렀던 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의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긴 삶의 여정에서 당연히 그런 순간이 올 것은 예상했지만 막상 현실을 직면하는 건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이제 여행 막바지, / 지금껏 어둠을 향했다면 오늘은 빛을 찾아 갑니다 / 곧 돌아갑니다’ 시인은 ‘빛을 찾아서, 본향으로 돌아가는’ 자세로 오늘 이 순간, 여기에서의 삶에 충실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삶의 방향도 지금까지는 어둠을 향했다면, 오늘부터는 빛을 향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시인의 그 다짐이 곧 나의 다짐이 됩니다.

 

이 땅에서 함께 머무는 이 시간이 소중함을 알기에, 오늘 하루도 무사하길 기도합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