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목련이 진들 / 정님이 - 박용주

석전碩田,제임스 2021. 4. 14. 06:43

목련이 진들

                                   - 박용주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 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 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 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빛 꽃잎이 되어
우리네 가슴 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픔 함성으로
한 닢 한 닢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
순결한 꽃인 것을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피어
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
우리들 오월의 꽃이
아직도 애처로운 눈빛을 하는데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 1988년 전남대학교 주최 5월 문학상, 시집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장백, 1990)

* 감상 : 박용주 시인.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80년 광주 서석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86년 졸업했습니다. 그 해 광주 금남 중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고흥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그만 두고, 이듬해 1987년 풍양중학교에 다시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천 효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중국사를 전공하였습니다.

4.7 지방 선거(서울시장 재보선)가 끝난 후 야당 후보에게 완패를 당한 박영선 여당 후보가 박용주 시인의 이 시를 언급하며 선거에 패배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SNS 글이 알려지면서 갑자기 이 시가 세간에 회자되었던 지난 한 주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 어느 봄 날 다시 화려하게 피어나겠다는 다짐으로 이 시를 인용한 듯 한데, 80년 암울했던 시절을 노래한 시인의 노래와는 핀트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용주의 이 시는 1988년 4월에 쓴 시로 그 해 전남대학교가 주최한 <5월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 그는 중학교 2학년 나이인 만 열 다섯 살이었고 전남 고흥 풍양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기보다 그 나이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놀라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문학상 심사 위원이었던 김준태 시인은 ‘작품의 내용, 작품의 형식은 가히 놀라웠으며, 만약 이 작품들이 진정 중학생의 작품이라면 우리는 해방 후 비로소 천재 시인을 만났음을 말할 수 있으리라. 자아, 보라. 5월을 얼마나 절실하게 읊고 있는가를!’하고 격한 평을 했습니다.

의 첫 시집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장백, 1990)는 그 다음 해 풍양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낸 시집이었습니다. ‘목련이 진들’을 비롯하여 ‘하늘’, ‘정님이’처럼 주옥같은 시들을 이 시집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시집 발문에서 평론가 임헌영은 ‘박용주의 조숙성은 그 개인의 몫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시대가 강제로 만든 것이라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고 평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민족의 앞날과 민주주의와 통일을 노래하는 시들을 노래할 정도로 조숙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용주는 시집 앞에 제법 긴 머리말('글을 내면서')을 이렇게 썼습니다. 어린 중학생이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성숙한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문(全文)을 게재합니다.

[가위 눌린 듯 가슴이 답답하고 끝없는 좌절만이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슬프고 외롭고, 이런 조금은 달콤한 감정을 느끼기 앞서 힘겨운 생존이 먼저였을 때의 막막함과 칙칙한 절망감은 꿈에라도 다시 생각날까 두렵습니다. 갑작스런 환경의 뒤바뀜은 그런대로 참아낼 수 있었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었습니다. 날짜 지난 신문 한 장이라도 눈이 띄면 음미하듯 아껴 읽었고 백지에 글자가 인쇄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읽었던 때, 나는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가끔 혼자 울었습니다.

그 무렵, 86, 88의 희망찬 청사진을 담은 정부의 홍보물은 한없이 나를 기죽게 하였습니다. 선진 조국의 끝없이 찬란한 미래상이 펼쳐진 홍보물이 외진 시골까지 홍수처럼 쏟아져 오는데 86, 88이 끝나면 모두 잘 살고 세련 되어질 사회에 도저히 나같은 건 동참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그 소외감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학교마저 쉬어야 하는 절박한 생활 속에서 86, 88의 신화는 또 하나의 아픔이었습니다.

어렵게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에서 나는 언제나 모범생이어야 했습니다. 편모슬하, 결손가정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어 조금의 잘못도 내게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저 앤 결손 가정이라서....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건 질색입니다. 어렸을 때, 골목에서 동네 아이들과 싸웠습니다. 똑같이 치고받는 고만고만한 싸움이었는데 상대 아이의 엄마가 나와서 눈을 흘겼습니다. 흥, 애비없는 자식은 어쩔 수 없다니까. 그 한마디가 내겐 곧장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혔습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똑같이 잘못해도 네가 더 나쁜 놈이 되는 걸 왜 모르니? 그 날 엄마의 눈에는 파란 불이 일었습니다. 언제나 일등을 해야하고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스스로를 속박하는 굴레가 싫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학교에서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편견을 가지고 보는 한, 나는 어쩔 수 없는 모범생이어야 합니다. 까닭 없는 동정은 싫지만 백안시당하는 건 견딜 수 없습니다.

힘든 생활에서 오는 고단함, 선진국으로 발돋음 하는 나라에서 꼴찌로 사는 소외감, 까닭없이 슬픈 가을바람, 그리고 여러 이웃 중에 더러는 가슴 아픈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문득 우울해질 때 나는 글을 써 보았습니다. 그저 눈물로 맺혀오는 이야기를,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무엇엔가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문학'이라는 어려운 이야기는 꿈도 못 꿨고 알지도 못할뿐더러 시인이 되고 싶다는 기대도 바람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나처럼 어려운 사람들, 허기로 쓰러져 본 적도 있는 가슴 추운 사람들, 정님이 같고 김 노인 같은 쓸쓸한 사람들에게 한 번쯤 읽혀질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끝으로 책으로 꾸며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989.10. 박용주 씀]

의 두 번째 시집 <우리 다시 만날 날>(아침, 1990)이 나온 건 첫 시집이 발행되고 그로부터 넉 달 뒤, 순천 효천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박용주는 이 시집을 끝으로 세상과는 단절되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공식적으로 그의 시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해 목련 꽃은 유난히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피었다가 이내 져버렸습니다. 무성한 잎을 내기 전, 겨울을 견뎌낸 앙상한 가지 위에 하얀 꽃만 커다랗게 피었다가 말도 없이 지는 꽃이 목련입니다.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피어/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우리들 오월의 꽃이/아직도 애처로운 눈빛을 하는데/한낱 목련이 진들/무에 그리 슬프랴’는 마지막 연의 표현이 더욱 더 애절하게 들립니다. 제 2의 랭보에 비견될 만큼 천재성을 보여 주었던 박용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일찍 세상의 아픔에 눈을 떠 채 잎이 나기도 전에 꽃부터 먼저 피워 올리고 스러져가는 목련의 운명과 어찌도 그리 닮았는지요.

은 시집에 실린 시 중, ‘정님이’라는 한 편의 시를 더 감상해 보겠습니다. 머리에 꽃을 꽂고 시골 장터를 배회하는 ‘미친 여자 정님이’를 어린 시인은 보이는 겉모습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길지 않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이면까지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노래한 절창의 시입니다. 이 시가 16세 중학생이 쓴 시라는 게 어찌 이해가 될까요. 결국 시인은 그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스스로 정님이가 되어 시의 화자로서 ‘돌 던지는 성한 사람이 불쌍해서/ 오늘도 나는 웃는답니다.’라고 시를 맺고 있습니다.

정님이

                                  - 박용주

내게 죄가 있다면
세상을 버린 죄밖에 더 있나요
날더러 미쳤다고 침 뱉고
돌 던지는 사람도 성한 사람들은 아니지요

지금 세상도 정신없이 어지럽다는데
성하다고 자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내게 돌 던지세요

침 뱉고
돌 던져도
퍼런 멍이 잠시 아플 뿐
나야 웃을 수 있지요

내 이름은 정님이
나이는 몰라요
저기 산 너머 언덕아래
조그만 초가삼간에 살었었지요

농사꾼 딸이었지만
그래도 무남독녀 외딸이라고
고임도 받았답니다

부처님이 점지하신 정님이는
인물 잘나고 총명하여
햇님처럼 눈부셨지요

개울 너머 국민학교도 다니고
읍내 여학교도 마쳤는데
인물이 아깝고 재주가 아깝다고는 하지만
논 닷마지기 살림으로야
대학공부는 꿈도 못 꿀 일이어서
혼자 힘으로 대학 가겠다고
서울로 떠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다음은 아무리 애써도
생각나지 않아요

어느 해 봄
헝클어진 머리에 진달래 꽂고
흘러 흘러 고향에 가니
아버지는 술병으로 어머니는 홧병으로
돌아가셨다고도 하고
멀리멀리 떠났다고도 하는데
우리 집 초가삼간은
반쯤 불탔더래요

정님이는
옛날의 꽃같은 정님이는
너무 공부만 하다가
못 먹고 공부에만 머리 써서
돌았다고 하고
서울 부자집 아들하고 연애하다 버림받아
돌았다고도 하는데
전에 일은 쬐끔도 기억나지 않아
알 수 없어요

그래도 가끔은 맘이 씌여
고향집 근처까지 가보기도 하는데
정님아 정님아 울면서
손 붙잡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
가끔은
그리운 생각에 고향근처도 가는데
눈 부릅뜬 아버지의 호령이 무서워서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지요

너는 내 딸 아니다 하고
박정하게 내칠것만 같아서
그러면 어쩐지 슬플것도 같아서
근처만 맴돌다 그냥 오지요

오늘은 이 장터
내일은 저 장터 돌아다니다
맹물에 찬 반 한술 얻어먹을 뿐인데
사람들은 욕하고 돌 던지지요

길가에 핀 꽃을 따서 머리에 꽂고
아이들을 보며는 웃어도 주고
걸어서 걸어서 장터로 가는데
아무에게도 나쁜 짓 하지 않는데
내게 굳이 침 뱉는 것은 무엇이지요

성한 사람 위세하느라
내게 돌 던진다해도
나야 웃으면 그뿐
살갗에 퍼런 멍이 들어도 웃을 수 있지만
돌 던진 성한 사람은
스스로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푸른 멍울을 만드는 것이지요

돌 던지는 성한 사람이 불쌍해서
오늘도 나는 웃는답니다.

- 시집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장백, 1990)

미 꽤 긴 글이 되었지만 마무리하기 전,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라는 노래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해마다 목련이 필 때면 방송에서 가장 많은 방송 횟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 있는 노래이지만 이 노래가 만들어 진 뒷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노래에 얽힌 사연은 애틋하고 비장합니다. ‘아침이슬’을 비롯해서 자신이 부른 상당수의 노래가 금지곡이 되어 버린 1980년, 양희은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럽과 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1982년 여름에 귀국했고 여행을 통해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았건만 또 다른 시련이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암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건강은 망가지고 경제적으로도 힘겨웠던 서른 즈음의 양희은은 선후배들이 수술비를 모금했을 정도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난소에 까지 퍼진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그녀는 당시 생(生)과 사(死)를 넘나드는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매일같이 기도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른한 봄기운이 화창했던 1983년 어느 봄 날. 기도를 마치고 무심코 창밖을 본 양희은의 시선은 눈부시게 피어있는 하얀 목련에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자신의 처지와 정반대로 너무도 아름다운 하얀 목련을 보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허무하게 끝나버릴지 모를 화려했던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정리하는 시상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병실 창문 밖에 만개한 하얀 목련을 보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는 유언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녀는 한 편의 짧은 시를 썼습니다. 그 후 기적적으로 소생한 양희은은 절대 절명의 순간을 담아낸 자신의 자작시를 작곡가 김희갑의 곡에 얹어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불후의 명곡 '하얀 목련'이 탄생된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련의 꽃말은 ‘고귀함’과 ‘부활’입니다. 올 해 목련은 이미 졌지만 고고한 자태로 다시 화려하게 필 내년 봄의 목련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만날 수 없었던 박용주 시인도, 내년 봄에는 화려하게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 석전(碩田)

 

* 양희은의 노래 듣기

https://youtu.be/7220Gk_Q1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