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이 시대의 변죽 - 배한봉

석전碩田,제임스 2021. 7. 7. 06:54

이 시대의 변죽

                            - 배한봉

변죽을 아시는지요
그릇 따위의 가장자리, 사람으로 치면
저 변방의 농군이나 서생들
변죽 울리지 말라고 걸핏하면 무시하던
그 변죽을 이제 울려야겠군요
변죽 있으므로 복판도 있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줘야겠군요
그 중심도 실은 그릇의 일부
변죽 없는 그릇은 이미 그릇이 아니지요
당신, 아시는지요
당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변죽,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하는
변죽, 당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변죽, 삼거웃 없는 마음을
중심에 두고 싶은,
변죽을 쳐도 울지 않는 복판을 가진
이 시대의 슬프고 아픈 변죽들을

☞삼거웃 : 삼 껍질의 끝을 다듬을 때에 긁히어 떨어진 검불. 허물을 의미.

- 시집, <악기점>(세계사, 2004)

* 감상 : 배한봉 시인.

196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학생 잡지에서 공모하는 학생작품공모전에 소설과 시가 장원에 당선될 정도로 문학에 심취했던 문학 소년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살이가 시작될 무렵 시인 박재삼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의 관심이 소설에서 시로 바뀌었습니다. “니는 소설카마 시 쓰는 기 나을끼라.” 박재삼 시인의 이 말 한마디가 그로 하여금 시의 길에 접어들게 했다고 그는 어느 문학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후배가 운영하던 <경인문예>에 1984년 작품을 발표하면서 등단하는가 싶었지만 그 문예지는 이내 폐간되었고, 배한봉 시인은 일간신문 신춘문예 관문 최종심에서 늘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며 처절한 좌절감을 맛봐야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0여 년간은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시에 재능이 없다는 자책과 절망 때문에, 또 열심히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 우여곡절 끝에 <현대시> 신인상 공모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데뷔하였습니다.

후 <현대시>, <문학사상> 등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黑鳥>(한국문연, 1998 – 개정판 <천년의 시작, 2003>), <우포늪 왁새>(시와시학사, 2002), <악기점>(세계사, 2004),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문학의전당, 2006), <주남지의 새들>(천년의 시작, 2017)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우포늪, 생명과 희망과 미래>(문학의 전당, 2009), <당신과 나의 숨결>(문학사상, 2013) 등이 있습니다. 전업시인으로 활동하면서 과수원 농사를 지으며,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람사르 습지 우포늪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우포늪 시 생명제’를 주재 · 개최하는 등 생태문학 발전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김달진 창원문학상,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3년에는 시 ‘복숭아를 솎으며’가 농림부 주최 <詩사랑 農사랑 - 아름다운 농촌 시>로 선정되어 농림부장관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 ‘우포늪 왁새’는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수록되어 수능 고사에 출제되기도 하여 고등학생들의 필독 시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등에서 대학생들에게 문학과 글쓰기 등을 가르치면서 작가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리 말에 ‘변죽을 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콕 집어 얘기하지 않고 에둘러 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릇의 가장자리를 두들기면 가운데까지 울려서 알아차리게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활용되는 예로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된 사건을 파헤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수사를 시작했는데, 정작 나중에 발표하는 걸 보면 흐지부지 아무것도 아닌 경우, 신문 기사 제목은 ‘변죽만 울린 부실 수사’와 같이 표현하는 예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바로 이 ‘변죽’이 뭔지 아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변죽을 울린다’는 말이 뭔지 잘 모르는 것은 ‘변죽’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첫 문장에서 변죽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변죽이라는 말을 소재로 삼아 그 말에 내포되어 있는 ‘은유’로 현실의 세태를 재미나게 풍자한 시입니다. 배한봉 시인은 지난 봄 흐드러지게 피는 봄꽃을 적멸보궁에 비유하여 멋지게 형상화해 낸 시 ‘어린 봄’, 그리고 초등학생인 병채가 수업 시간에 숙제를 자신 있게 발표하는 장면을 역동적으로 그려내면서 우리네 인생을 익살스럽게 노래했던 시 ‘씨팔!’을 통해서 이미 소개했던 시인입니다.

인은 이 시에서 이제 제대로 변죽을 한번 울려보겠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그 변죽을 이제 울려야겠군요/ 변죽 있으므로 복판도 있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줘야겠군요/ 그 중심도 실은 그릇의 일부/ 변죽 없는 그릇은 이미 그릇이 아니지요/ 당신, 아시는지요’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시인은 변죽을 울린다는 말이 ‘변죽’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억울하기 짝이 없는 말인지 모를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시인이 억울해 하는 이유는, ‘변죽’을 지방에 사는 힘없는 노동자나 백이나 권력이 전혀 없는 일반 서민과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걸핏하면 무시하는 그 변죽들이 없으면 결국 복판도 없다는 걸 ‘당신은 아는지요’라고 그는 항변하고 있습니다.

인이 말하는 ‘당신’은 누굴까. 복판에 있는 사람? 아니면 변죽이면서도 스스로 ‘복판’이 된 것인 양 처신하는 사람? 시인은 마지막 두 문장을 통해서 실랄하게 현 세태를 고발합니다. 결국은 ‘당신’이라고 지칭된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변죽을 쳐도 울지 않는 복판을 가진/ 이 시대의 슬프고 아픈 변죽들을’ 몰라보는 시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라고 그는 노래합니다. 이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갑자기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 갈라 앉아 서로 소리 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마 11:16~17, 공동번역)라고 한탄했던, 그 시대의 철저한 변죽으로 살면서 변죽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예수의 하소연입니다.

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앞에 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복판’, 즉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거창한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어수선한 때입니다. 바라기는 차기 대통령은 시인이 노래했듯이 ‘당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변죽,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하는/ 변죽, 당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변죽, 삼거웃 없는 마음을’ 보듬을 줄 알고, 챙길 줄 아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당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변죽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면,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변죽을 쳐도 전혀 울지 않는’ 자기들만의 ‘복판’일 뿐이니까요.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