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송윤옥 - 이은봉

석전碩田,제임스 2021. 7. 21. 08:20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 송윤옥

- 이은봉

두부두루치기 백반을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리어카에서 파는 헐값의 검정 비닐구두 잘도 어울리던,
반주로 마신 몇 잔의 소주에도 쉽게 취하던,
마침내

암소를 끌고 가 썩은 사과를 바꿔 와도 좋다던,
맨몸으로도 좋다던 여자가 있었다.
한때는 자랑스럽게 고문진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자,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장독대 같은 여자
두부두루치기 같은 여자
맵고 짠 여자

가 있었다 어쩌다 내 품에 안기면 푸드득 잠들던 여자가 있었다.
신살구를 잘도 먹어치우던, 지금은 된장찌개 곧잘 끓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

-시집 <알뿌리를 키우며>(북민, 2007)

* 감상 : 이은봉 시인.

1953년 5월, 충남 공주군 장기면 당암리(현, 세종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전 숭전대학교(현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1992)를 받았습니다. 1983년 <삶의문학> 제5호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며 평론가로, 1984년 <창작과비평>에서 발행했던 시 전문 무크지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 외 6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재학시절, 대학 학보사에서 주최하는 ‘제2회 다형문학상’에서 ‘귀 기울이고 들어 봐’라는 시로 수상하면서 당시 이 대학에서 시를 가르쳤던 김현승 시인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시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1970년 후반, 대전 역 앞에 있던 ‘대성다방’은 그가 시우(詩友)들을 만나 시와 삶, 철학을 논하며 삶의 방향을 치열하게 정하던 장소였으며, 그의 시 세계를 형성해 나가는 뿌리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공간이었습니다. <삶의문학>, <시와사회>, <문학과비평>, <문학마을>, <시와사람>, <시와상상>, <시와인식>, <불교문예>, <시와시>, <세종시마루> 등의 편집위원, 편집인, 주간등을 역임했으며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사)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및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시집으로 <좋은 세상>(실천문학, 1988), <봄 여름 가을 겨울>(창비, 1989),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신어림, 1993), <무엇이 너를 키우니>(실천문학사, 1996),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창작과비평, 2002), <알뿌리를 키우며>(북민, 2007), <길은 당나귀를 타고>(실천문학, 2009), <책바위>(천년의 시작, 2008), <첫눈 아침>(푸른사상, 2010), <걸레 옷을 입은 구름>(실천문학, 2013), <봄바람 은여우>(b출판, 2016), <생활>(실천문학, 2019), <걸어 다니는 별>(천년의 시작, 2021)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실사구시의 시학>(새미, 1994), <진실의 시학>(태학사, 1998), <시와 생태적 상상력>(소명, 2000), <풍경과 존재의 변증법>(b출판, 2017), <시와 깨달음의 형식>(서정시학, 2018), <시의 깊이, 정신의 깊이>(천년의시작, 2020) 등이 있습니다. 또한 연구서 및 시론집으로는 <한국현대시의 현실인식>, <화두 또는 호기심>(작가, 2015), 편저서로는 <시와 리얼리즘>(공동체, 1993), <시와 리얼리즘의 논쟁>(소명, 2001), <이성부 산시 연구>, 공저로 <송강문학연구>, <홍희표 시인 연구>(푸른사상, 2011)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성기 문학상>(2005), <유심 작품상>(2006), <한국가톨릭문학상>(2012), <질마재 문학상>(2014), <송수권 시문학상>(2016), <김달진문학상>(2021) 등을 수상했습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가 지난 2018년 8월 정년퇴임하였으며 2019년 4월 명예교수에 임명되었습니다. 현재 대전문학관 관장으로 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시인이 자신의 아내의 이름을 시 제목으로 할 정도로, 아내를 칭찬하는 시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이름으로 쓴 시이고 또 그녀를 위한 시라고는 하지만 언뜻 보면 칭찬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는, 아니 오히려 은근히 깎아내리는 듯한 표현만 있는 것 같습니다. 시를 일단 다 읽고 또 한번 곰곰이 읽어보면 그제서야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시라는 걸 알게 되는 그런 시입니다.

왓장 같고 장독대 같은 여자는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요. 두부두루치기 같고 맵고 짠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충청도 사나이답게 시인은 아내 송윤옥을 처음 만나 지금까지 30여년 함께 살아오면서 못난 남편 때문에 고생만 했던 것에 고마와 하는 마음을 이 시 한 편 속에 그저 덤덤하게 내비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은 석사 학위를 마치고 산업체(동방산업) 부설 혜천여고(야간)에 국어교사로 부임했지만 이내 해직을 당하고 맙니다. <삶의문학>이 태동했던 대전 역 앞 ‘대성다방’ 멤버들과 도모했던 군부 탄압에 항거하는 외침들이 밉보였던 것입니다. 시인이 아내를 처음 만난 건 바로 이즈음이었습니다. 통제가 심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고전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충청남도 유림회에서 주관하는 고전 강습이 대전시 대흥동 어느 지하 강의실에서 있었는데, 그 강좌를 두 사람은 열심히 들었다고 합니다. 시에서 ‘한 때는 자랑스럽게 <고문진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자, 그 여자’라는 표현이 바로 결혼하기 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때까지 시인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은, 당시 아내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과 아내는 <소학>, <고문진보>, <논어>, <맹자>, <중용> 등의 강좌를 함께 들으면서 스승 송각헌 선생을 만났고, 스승은 고전 공부에 열심이었던 두 젊은 남여를 아꼈습니다. 그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시인이 어느 문학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좋은 스승과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한 고전공부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장찌개 곧잘 끓이고, 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는, 두부두루치기 백반을 좋아하던 그 여자는 어떤 여자로 생각이 되는지요? 그러니까 처음 시를 읽을 때는 ‘기왓장 같은 여자’란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자로 생각이 되었지만, 이제는 비가 오면 비가 새지 않도록 가장 최전선에서 막아주는 억척같은 기왓장의 역할이 떠오르게 되지 않았나요? ‘장독대 같은 여자’란 표현에선 말없이 다소곳하게 모든 걸 담아내고 있는 복스런 이미지가 떠오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두부두루치기 같은 여자‘라는 표현에서는 그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두부두루치기 같은 여자가 되었으니 약간은 짠하고 또 미안한 시인의 마음이 스며있는 듯한 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서민들이 가장 값싼 재료로 뚝딱 술안주나 밥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던 요리가 바로 두부두루치기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아내 송윤옥에게 모든 찬사와 감사의 마음을 다 포함한 표현으로, 마지막 표현 - ‘맵고 짠 여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혼이혼’ ‘졸혼’ 등 결혼과 관련된 신종 개념의 말들이 등장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부부가 함께 자녀를 키우면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물며 시인과 같이 아내의 실명을 시 제목으로 하여 ‘칭송시’까지 쓸 수 있다면, 이건 최고의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같은 남자 입장에서 하는 말일수도 있으니 조심스럽습니다.

마전 정년을 6개월 남겨 둔 지인 한 분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입니다. 어느 날 자신의 아내가 지자체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농촌 전원주택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에 당첨되어 전원 주택 하나를 마련한 후 한적한 시골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평소 자신이 꿈꿔 온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연습을 남편이 퇴직하기 전에 감행을 한 것이랍니다. 그 바람에 지금은 주말 부부가 되었는데 아내가 너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그만 덜컥 겁이 났다는 것입니다. 퇴직 후 친한 친구들과 오피스텔 하나 마련해서 매일 노는 것만 궁리했던 철없는 자기가 혹시 뒤통수를 맞은 건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하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이 분도 이 즈음에서 이은봉 시인처럼 ‘칭송시’ 하나를 멋지게 지어 아내에게 바쳐야 할 듯 합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