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신세계 / 독자에게 온 편지 - 아담 자가예프스키

석전碩田,제임스 2021. 7. 14. 06:49

신세계

- 아담 자가예프스키

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은 편지들은
저들끼리 서신 교환을 하고 있다
읽지 않은 책들은
일곱 개의 상처를 펼쳐 보인다

세상 한가운데 살려면
모든 것에 의지해야 하는 법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이 너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기를 그만두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정말로 모르겠다 시골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그의 셀 수 없는 희생자들이 살아 있는지
자기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병원으로 위문 간
토마스 만이 아직 살아 있는지
드로호비츠₁₎의 유대 성인이 오늘날 누구인지
너무나 사랑해서 결국은 결혼하지 못한
위대한 고행자들의 약혼녀들은 어디 있는지
하지만 너는
살아 있다
이 세상 한가운데에
네 오른쪽에는 죽은 사람들이 있고
산 사람들은 아직 없다

너는 그 모든 장소들을 기억한다
집 주인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던 커다란 방들을
가시 재킷을 입고, 첫 영성체로 향하던 예수의 초상을,
침대의 아프리카들과 호텔 바닥의 서늘한 사각형을 기억한다
허락되지 않은 그 모든 장소들과
사랑의 마지막 성체를 받기 위해
하얀 혀의 손가락을 내밀던 아픈 여인들이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을 잊기라도 한 듯이
길을 물어 보던 것을
벽 뒤의 숨소리와 황급한 출발들을 기억한다
입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얼굴을 겨우 살린 사람들을 강과 호수의 전투원들과
고귀한 피를 공공연하게 뱉어 내던 기사들과 또한
죽음의 붕대로 자신의 상처를 가린 사람들을 기억한다
결국은 너무나 명백해
웨이터들은 웃음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1차 대전 이후 태어난 자들은
당의 모임에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가락 사이에 진흙이 낀 손을 쫙 피고 투표했다
스카르가₂₎는 당원증을 반납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고
여우와 양이 창을 들고 그를 찾았지만
창에서 꽃이 피어나며 수색은 중단되었다
전쟁의 마지막 날들에 태어난 이들은
사람의 손바닥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마지막 날들에 태어난 이들은
아직 이중 연애의 기술을 몰랐다
너는 또 문 앞에서 수염을 잘린
시인들의 봄을 기억한다
젊은 시인들이 그렇게 늙어 보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수염은 젊은이의 얼굴을 망치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글쓰기를 그만뒀고 다른 이들은
물이 찬 유럽의 심장을 건너며 편지를 보내왔다
막사의 벽들과 신도시의 아파트들에
겨우살이가 장식되고 겨울이 가까워 온다
신세계가 시작된다

나는 고백한다 불을 본 적이 없고 벌레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을
기분 나쁜 눈먼 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도로 사고의 혈흔이 흰 모래로 가려지고
우리 모두는 서로 닮아 있다
저녁마다 똑같은 술 취한 중얼거림이
이 나라 모든 노동자들을 단합하는 것을
나는 고백한다 칼들은 칼집에서 자고 있고
너는 크라쿠프에 살며 시인이라는 것을
너는 슈체친 근처 토포르에 살고 있고
너는 세상의 중심에 사는 항만 노동자
네 오른쪽에는 죽은 사람들이 있고
산 사람들은 아직 없다

축구 리그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옛날엔 너도 축구를 했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늙은 짐승인 너는 공의 움직임을 좇고
양복 상의에서 비듬을 털어 낸다
긴 여름밤의 부드러운 풍미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여인들이 김 나는 몸으로 집을 나설 때
차가운 목욕물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바로 옆에는 원시림이 있고 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위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긴다
나무에서 지느러미가 자랄 수 도 있다
새를 길들이는 일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만약 다시 시작된다면 새 한 마리 한 마리에서 폭탄이 떨어져 내리고
비둘기들은 매수할 수 없으니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늙은 지도자들의 피로와 초상화들의 먼지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늙은 지도자들 하나하나에서 제복에 맞춰진 젊은 처형자가 나올 테니까
겨우 통과한 그의 학위증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요즘은 어느 때라도 착각할 수 있다 잔디는 화산으로 변하고
자동차 하나하나에서 탱크가 솟아 나온다
런던에서 프로이트의 느린 처형과 긴 연설의 지루함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졸지 않기를
너의 이웃은 전혀 졸고 있지 않다 그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의 잘못된 발음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그가 매일매일 힘들게 너에게 설명하는 것들은
이미 옛날에 말해진 것이니
나는 전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가장 똑똑한
청년들이 죽으면 네가 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회고담을 쓰겠지 나는 전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집집마다
다른 집들이 숨어 있다 너의 모든 몸짓은
다른 못짓일 수도 있었다 네가 말하는 모든 것을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을
바로 그 여자를 전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전혀 다른
여자를 만났을 수도 날개처럼 얼굴에 고정된 그녀의 미소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네 모든 생각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생각일 수 있었다 너는 그런 생각을
접하지도 못했을 수 있었다 지금과는 전혀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하련다 너는 더욱더
너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네 이마의 주름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이 모든 것이 단지 빌려 온 것이니까
너의 새 아파트가
닮지도 않게 나온 신문의 사진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이 모든 것은 이중으로 빌린 것이니까
너는 긴장하여 준비하고 서 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발가벗어서 꿈마다
진짜 너인 노인이 돌아온다
시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아예 읽지 말기를, 너는 시간도 없다
시간도 네가 없으며 너의 손목을 붙들고
네가 새라면 발톱을 잡고 너를 틀어막는다
너는 너무 천천히 생각한다 천식일 뿐이라고
의사들의 혁명가₃₎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정상적인 것들은 가장 짧게 지속되고
비정상적인 것들을 이해하기는 너무 쉽고
순응하기는 더욱더 쉽다
그 쉬움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나는 고백한다 날씨가 좋다는 것을
과수원 같은 호텔에는 출장 도장을 찾고 있는
붉은 뺨의 유쾌한 남자들로 가득 차
행복으로 초라해진 여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어려운 수술에 들어간다
그러다 그들 중 누군가는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수색이 시작된다
스탠리는 다시 한 번 아프리카로 떠나고
노빌레₄₎는 극지로 떠나고
인공위성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가가린은 어머니와 작별하고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서고
콜럼버스는 한밤중에 침대에서 소환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미 나는 그중 누가 살아 있는지
그리고 누가 방금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₁₎ 드로호비츠 : 시인이 태어난, 르부프에서 60Km 떨어진 산악 도시.
₂₎ 스카르가 : 피오트르 스카르가(Piotr Skarga, 1536~1612)는 폴란드의 예수회 신학자이자 지그문트 3세 왕의 고문관이며 빌뉴스 대학교의 초대 총장임.
₃₎ 원래 원어에는 the international로 되어 있음
₄₎ 움베르토 노빌레(Umberto Nobile, 1885~1978)는 극지 탐험가 아문센과 함께 직접 만든 비행선을 타고 북극 정복에 나섰던 탐험가임.

- 시집, <정육점>(1975)
- 한국어 번역시선집,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문학의숲, 2012)

* 감상 : 아담 자가예프스키 시인. 

1945년 6월,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던 해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된 폴란드 르부프(비리우)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쟁 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폴란드 국토의 1/4을 소련에 넘겨주었고,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시켰는데, 이 때 자가예프스키 시인의 가족도 탄광 도시인 실롱스크 지방으로 이주, 그곳에서 시인은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자가예프스키는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옐론스키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는데 학창 시절 폴란드의 권위 있는 문예지였던 <오드라Odra>의 편집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문학에 인연을 맺었고 결국 그는 1967년 문예지 <문학생활>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인이 된 후, 동료 시인들과 ‘68세대’로 불리는 ‘노바 팔라(새로운 물결)’ 그룹을 결성 사회주의 획일성을 거부하며 청년 운동을 주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집으로는 첫 시집인 <공보>(1972)를 시작으로 <정육점>(1975), <편지>(1978) 등을 잇달아 출간하였으나 1975년 반체제 저항 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시인들의 시집 출판이 금지되자 1981년 배우이자 번역가로 활동했던 부인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정착, 해외에서 망명 작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나온 시집은 <다수에 대한 찬가>(1982), <르부프로 간다>(1985) 등이 있습니다.

회주의가 붕괴되고 풀란드의 민주화가 달성된 1989년 이후 나온 시집으로는 <캔버스>(1990), <불타는 대지>(1994), <갈망>(1999), <귀향>(2003), <안테나>(2005), <보이지 않는 손>(2009) 등이 있습니다. 이 기간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면서 미국 휴스턴대학교의 영문학과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문예창작 강좌를 맡았습니다. 2002년 고국으로 돌아가 모교인 야기옐론스키 대학교에서 시 창작 워크숍을 주관하였고 문예지 <문학 노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세계의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는데 오늘 감상하는 이 시는, 지난 2012년 한국외국어 대학교 폴란드어 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최성은 교수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은 박사가 심혈을 기울여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한 시선집에 실려 있습니다.

실, 폴란드의 시인을 일부러 접하기도 쉽지 않은데 지난주일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이 시인의 시 한 부분을 언급할 때 마치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딱 한번 들었는데도 계속해서 여운으로 남아 하루 종일 그 나머지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당장 교보문고로 달려가서 시집을 구입해서 만났던 시입니다. 그리고 무척 긴 시이지만 전문을 소개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언급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정상적인 것들은 가장 짧게 지속되고 / 비정상적인 것들을 이해하기는 너무 쉽고/ 순응하기는 더욱더 쉽다 / 그 쉬움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로 신세였던 느헤미야가 어느 날 고국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참담한 심경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위해서 왕의 특별한 배려를 얻어 귀국했을 때, 주변의 상황은 암담하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지도자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그저 탁상 위에서 서류와 사람들을 만나서 의미 없는 말과 혀로만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찾아 나서서 관련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설교를 하는 중에 뜬금없이 목사님이 읊었던 이 시는 마치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듯, 수행자에게 내려쳐지는 죽비가 되어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것입니다. 현실에 순응하면서, 비정상이 정상이라고 알고 살아왔던 나에게 폴란드의 이름 없는 한 시인의 시어는 예리한 찔림으로 다가왔다는 말입니다.

교는 이렇게 계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알고 삽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러면 안됩니다. 새로운 세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때가 이르렀다는 판단이 들자 느헤미야는 관리들을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폐허가 된 성, 불타버린 성문, 무너진 성벽...누구나 다 아는 현실입니다. 누구나 다 알기에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않던 자신들의 현실입니다. 바로 그 때 느헤미야의 말은 자기들이 안주하고 있던 비루한 현실이 비정상임을 일깨웠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다시는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하자면서 무너진 성벽을 일으켜 세우자고 말했습니다. 성벽 재건이라는 가시적인 과업은 사실은 무너진 신앙적 정체성을 다시 세우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담 자가예프스키는 이 시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사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국 폴란드에서 ‘신세계’를 건설하자며 장밋빛 구호와 획일화된 이데올로기로 개인의 자유를 앗아 간 사회주의 모순된 주장을 절묘하게 교차시키면서 대 서사시를 써내려갔습니다. 어찌 보면, 참담한 심정으로 예루살렘 성을 재건축하는 느헤미야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창작의 자유를 억압받은 문인들은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고 또 해외로 망명을 떠나야 했습니다. 평등을 내세운 획일화 정책은 사람들의 개성을 말살시켰으며 사건과 사고는 그럴듯하게 은폐되거나 조작되었습니다.

‘나는 고백한다 불을 본 적이 없고 벌레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을/ 기분 나쁜 눈먼 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도로 사고의 혈흔이 흰 모래로 가려지고/ 우리 모두는 서로 닮아 있다/ 저녁마다 똑같은 술 취한 중얼거림이/ 이 나라 모든 노동자들을 단합하는 것을’

람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야구 리그나 축구 리그를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이 딴 곳으로 쏠리도록 하고 개인의 진실 따위는 얼마든지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었던 70년대의 폴란드 사회의 슬픈 모습이, 마치 우리가 겪었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가슴 먹먹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가 염려하여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시적인 표현,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목록들은 아담 자가예프스키가 노래하고 있지만 마치 느헤미야의 음성이 재연되어 우리 모두를 조목조목 정면으로 고발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축구 리그가 너를 안심키지 말기를’ ‘긴 여름밤의 부드러운 풍미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차가운 목욕물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새를 길들이는 일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늙은 지도자들의 피로와 초상화들의 먼지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겨우 통과한 그의 학위증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의 잘못된 발음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날개처럼 얼굴에 고정된 그녀의 미소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너는 더욱더/ 너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네 이마의 주름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닮지도 않게 나온 신문의 사진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시가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아예 읽지 말기를’ ‘비정상적인 것들을 이해하기는 너무 쉽고/ 순응하기는 더욱더 쉽다/ 그 쉬움이 너를 안심시키지 말기를’ ......

소한, 그리고 번역시여서 시인이 선택한 시어의 진정한 느낌과 어감까지는 정확하게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한 낯선 이방 시인이 시를 통해서 ‘진실’을 건져 올리며 치열하게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그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을 마무리하기 전, 그의 시 한 편을 더 읽고 싶습니다. 시인으로서 그가 어떤 시로 자신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그동안 드러내며 달려왔고 또 앞으로 달려갈 것인지를, 그가 그동안 독자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멋지게 풀어낸 재미난 시입니다.

독자에게 온 편지

- 아담 자가예프스키

죽음에 대한,
그림자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아요.
삶에 대해,
평범한 날들에 대해,
정돈된 일상을 향한 바람에 대해 써 보세요.

학교 종이
절제의 귀감이 될 수도 있고,
나아가 학식의 귀감이 될 수도 있잖아요.

죽음에 대한 내용이
어둠에 대한 집착이 너무 많아요.

보세요, 비좁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군중이
저마다 증오의 찬가를 부르는 모습을.

음악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고,
조화와 안정,
이성(理性)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네요.

우정의 다리가
절망보다 더 견고하다고 느껴지던
그 순간에 관해 써 보세요.

사랑에 대해 써 보세요.
기나긴 저녁에 대해,
새벽에 대해,
나무들에 대해,
빛의
무한한 끈기에 대해.

- 시집, <정육점>(1975)
- 한국어 번역시선집,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문학의숲, 2012)

달 전만 해도 2학기는 당연히 '정상 개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어야 하는데 이미 비정상에 익숙해 진 내 마음은 '모종의 음험한 불편함'으로 답답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내게 시인은 죽비를 내리치며 '비정상적인 것에 순응하지 말기를, 그리고 그 쉬움에 안주하지 말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 석전(碩田)

한국의 고은, 폴란드의 아담 자가예프스키, 시리아의 아도니스 시인(오른쪽부터)이 ‘노르웨이 문학 페스티벌’에서 시를 낭독한 후에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출처: 중앙일보] 고은이 ‘그 꽃’을 낭독하자 … 아하, 감탄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