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울음통 - 최서림 / 허향숙

석전碩田,제임스 2021. 8. 11. 06:17

울음통

- 최서림

울룩불룩 균형이 안 잡힌 내 몸통에는
아담 이래 온갖 울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술 취한 노아의 붉은 울음이 유전자로 내려오고 있다.
북방 초원의 밤바람소리 같은 울음이 알을 까고 있다.
황소같이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울음이 소리 죽이고 있다.
메마른 하천 밑을 흐르는 개울물 같은 어머니의 울음이
대를 이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노란 리본이 별처럼 매달려 있는 부두에서
캄캄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보면서도
울음이 터져 나오지 못해 숨이 턱, 턱, 막혀오는데,
가슴을 쥐어뜯으며 쏟아내어야만 살 것 같은데,
그 많던 눈물이 어디로 다 숨어버렸는지
꼬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몸 안에서는
모래바람만 닳고 닳은 바위를 사납게 때린다.

새벽 비에 씻긴 쑥부쟁이, 구절초같이
내 영혼 드높게 씻겨줄 눈물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밤새 머리가 빠개지도록 써낸 내 시에
아내 가슴 속 불덩이를 식혀줄 눈물이 들어있기나 한지.
하늘과 땅 사이를 헤매는 울음들이 눈물로 떨어져
제 갈 길 찾아갈 지도가 희미하게나마 들어있는지.

천 년을 두고 떨어진 눈물을 받아먹고 피어난,
쓸쓸해서 해맑은 가을 야생화 같은 시가 보고 싶다.

- 시집, <시인의 재산>(지혜, 2018)

* 감상 : 최서림 시인(본명 최승호).

1956년 경북 청도에서 9남매 중 막내로 출생했습니다. 부모님의 생활 터전이었던 풍각면 시장 주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화가와 시인을 꿈꾸며 대구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습니다. 1993년 <현대시>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이서국으로 들어가다>(문학동네, 1995), <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세계사, 1997),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문학동네, 2000), <구멍>(세계사, 2006), <물금>(세계사, 2010), <버들치>(문학동네, 2014), <시인의 재산>(지혜, 2018) 등이 있으며, 시론집으로 <말의 혀>가 있습니다. 클릭학술문화상, 애지문학상, 동천문학상(2018) 등을 수상하였으며,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2015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론가들은 최서림 시인을 ‘이상낙원을 꿈꾸는 순수의 시인이며, 너무 순수해서 불온하고, 불온해서 순수한 서정시인’이라고 평을 합니다. 그는 ‘성난 파도처럼 끊임없이 덮쳐오는 근대의 어두운 힘, 즉 자본의 논리와 인간의 이기심과 죄성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맞서려면 진짜 서정시의 세계로 귀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라는 빙벽에다가 서정시라는 말 폭탄을 던지는 레지스탕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를 읽으면 바로 시인이 서성시를 통해서 말 폭탄을 던지는 것을 ‘실컷 울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했고, 그 울음통의 울음을 다 쏟아내지 못해서 뭔가 답답함이 꽉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내 몸통에는 아담 이래 온갖 울음들이 꽉 들어차 있다’고, 또 ‘술 취한 노아의 붉은 울음이 유전자로 내려오고 있다’고까지 호들갑을 떨면서 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가 속 시원하게 울어 젖히지 못하고 있는 울음통 안의 울음들이 어떤 게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저, 시인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시장 통에서 리어카를 끌어야했던 아버지, 그리고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살림을 꾸려가면서 흘려야 했던, 유년 시절에 들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억눌린 울음을 소환해냅니다. ‘황소같이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울음이 소리 죽이고 있다./ 메마른 하천 밑을 흐르는 개울물 같은 어머니의 울음이/ 대를 이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은 그저 그 추억에만 머물지 않고, 시인이 발붙이고 있는 이 땅에서 아직도 같은 아비와 어미가 되어 울어야 하는 이들의 울음으로 옮겨갑니다. 세월호에 무참히 스러져 간 아들딸을 위해서 부두에 앉아 노란 리본 걸어놓고 캄캄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보면서, ‘노란 리본이 별처럼 매달려 있는 부두에서/ 캄캄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보면서도 / 울음이 터져 나오지 못해 숨이 턱, 턱, 막혀오는데,/ 가슴을 쥐어뜯으며 쏟아내어야만 살 것 같은데,/ 그 많던 눈물이 어디로 다 숨어버렸는지’ 시인 자신이 대신 울어주지 못하는 답답함에 또 괴로워합니다.

홉 번을 꺾여도 기어이 꽃을 피워내고야 만다는 구절초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넷 째 연은 이 시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정시를 쓰면서 그 시를 통해서 뱉어 내는 글들이 시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다 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깊이 반성하며 되돌아보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 드높게 씻겨줄 눈물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밤새 머리가 빠개지도록 써낸 내 시에 / 아내 가슴 속 불덩이를 식혀줄 눈물이 들어있기나 한지./ 하늘과 땅 사이를 헤매는 울음들이 눈물로 떨어져 / 제 갈 길 찾아갈 지도가 희미하게나마 들어있는지.’ 그리고 시인은 가을 초입에 피는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등장시켜, 꽉 막혀 있는 울음통이 터지도록 울어 젖히는 시를 맘껏 써보고 싶다고 간절한 열망을 노래하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쯤 되면, ‘울음통’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노래한 허향숙 시인의 시는 어쩌면 후련한 슬픔이 느껴질 정도로 다행스런 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에선 울다 울다 지쳐 이제는 하얀 빈 통이 될 정도로 맘껏 울 수는 있었으니 말입니다. 여름 한 철 맹렬하게 울음을 쏟아 내는 매미를 보고 시인은 울다가 결국 빈껍데기만 남는 매미의 일생을 소환해냈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 떠난 친구 때문에 밤을 새워 울었던 자기 자신의 그 때 그 일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오래전 떠난 그녀 때문에 밤을 도와 울었어요 우는 일이 / 천직인 양 소낙비처럼 퍼붓다가 가랑비처럼 가랑대다가 / 폭풍우처럼 몰아치다가 매미의 최후처럼 텅 빈 몸이 되었지요’

추가 지나고 또 말복을 넘기고 나니 8월의 바람은 여전히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느껴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맹렬하게 울어대던 매미들의 울음소리도 이제는 울음통에서 울음이 다 빠져 나갔는지 빈 통이 되어 산책길 이 곳 저 곳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하얗게 자신의 전부를 태워낸’ 장렬한 모습에서 시인이 아쉬움보다는 최후의 텅 빈 꽉 찬 종말을 목격했듯이, 최서림 시인의 ‘울음통’이 허향숙 시인의 ‘울음통’과 살짝 만나, 꽉 막혔던 울음들을 맘껏 쏟아 내고 무사히 ‘이 여름을 건너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는 두 시인이 뱉어내는 말들이 쑥부쟁이와 구절초의 쓸쓸하고 해맑은 미소처럼 가을 야생화 같은 시가되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석전(碩田)

울음통

- 허향숙

매미의 몸은 죄다 울음통이에요 울음을 쏟아 내지 않고는
이 여름을 건너갈 수 없어요 울고 또 울다 보면 빈 껍데기만 남겠죠

오래전 떠난 그녀 때문에 밤을 도와 울었어요 우는 일이
천직인 양 소낙비처럼 퍼붓다가 가랑비처럼 가랑대다가
폭풍우처럼 몰아치다가 매미의 최후처럼 텅 빈 몸이 되었지요

8월의 바람은 뜨겁다 못해 하얘요 울음이 다 빠져나간 매
미의 사체를 하얗게 태우고 있어요

- 시집 <그리움의 총량>(천년의 시작, 2021)

* 허향숙 시인. 충남 당진 출생. 2018년 <시작>으로 작품 활동 시작.
現 백강문학회 회장. 시집으로 <그리움의 총량>(천년의 시작, 2021)이 있음.

2020년 4월, 인사동에서 ,열린 최서림 시인이 그린 파스텔화 그림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