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전화
- 나태주
지금 어디에 있어요?
누구하고 무엇하고 있나요?
예전엔 그렇게 물었는데
요즘은 다만
이렇게 묻고 말한다
별일 없지요?
네, 이쪽도 아직은
별일 없어요.
- 시집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열림원, 2022)
* 감상 : 나태주 시인.
1945년 3월 충남 서천군 시초면 초현리 111번지 그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1964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오랫동안 재직했습니다. 2007년 공주 장기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뒤, 공주문화원장을 거쳐 현재는 공주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71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서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등단 이후 끊임없는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쉽고 간결한 시어로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의 감성을 담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그의 시 ‘풀꽃’이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입니다. 흙의 문학상, 충남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향토문학상, 편운문학상,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김삿갓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첫 시집 <대숲 아래서>(한국문학도서관, 1973) 이후, 작년에 출간된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열림원, 2022)까지 무려 마흔 다섯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기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산문집 <시골 사람 시골 선생님>, <풀꽃과 놀다>,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꿈꾸는 시인>, <죽기 전에 시 한 편 쓰고 싶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정년퇴직 후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 지금은 주로 집에서 글을 쓰고 초청해 주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문학 강연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이 일상입니다. 청소년기의 꿈은 첫째가 시인이 되는 것, 둘째가 예쁜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것, 셋째가 공주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그 꿈을 모두 이루었다고 그는 행복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공주에서 살면서 공주 풀꽃문학관을 건립, 운영하고 있으며 풀꽃 문학상과 해외 풀꽃 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고 공주 문화원장과 충남문화원 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깝고 조그마한, 손 뻗으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게 시인의 작은 바람입니다.
며칠 전 지인 한 분이 서점에 갔다가 '나태주 시인의 시집에서 발견했는데 공감이 간다’면서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 준 시가 오늘 감상하는 시입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인 노시인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시라는 생각에 공감이 갔습니다. 예전 젊은 시절에는 상대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물을 때면, ‘지금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고 누구랑 있는지’ 궁금한 것도 참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한 몸 근사하는 것도 쉽지 않아, 그저 ‘별일 없지요? / 네, 이쪽도 아직은 / 별일 없어요.’라고 말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다만’이라는 시어속에는 많은 사연과 내용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뭔가 엄청난 큰 일을 이루었을 때라야 할 얘깃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이들어 보니 그저 하루 하루의 일상에서 조그만 ‘해냄’이 행복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미래의 꿈만 꿈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오늘 하루 좋았다 아름다웠다 / 우리는 얼마 동안 / 이런 날 이런 저녁을 함께할 것인가!’(‘오늘 하루’ 중)라며 사소한 일상의 귀중함을 깨닫는 것이 행복이며 ‘지금 이곳’에서 서로 안부를 묻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지난 3년 동안 멀쩡하던 사람이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 먼 길을 떠나기도 했고 서로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쪽도 아직은 / 별일 없어요’라는 안부 전화가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태주 시인의 이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에 실린 시편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새롭게 맞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노시인의 ‘위로의 시’라고나 할까요.
아래 소개하는 글은 일상에서 건네는 이런 인사 한마디, 안부를 묻는 작은 말 한마디가 생명을 살린 이야기입니다. 이 글도 역시 '아침에 읽는 한 편의 시'를 받아보는 또 다른 지인께서 그날 보내 주셨는데, 저는 이 글을 읽고는 그만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의 힘입니다.
[매일 짧은 인사 한마디의 기적]
냉동식품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한 여직원은, 어느 날 퇴근하기 전 늘 하던 대로 냉동 창고에 들어가 점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쾅!’ 하고 문이 저절로 닫혀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그녀는 목이 터지도록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문밖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무서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는‘내가 여기에서 얼어 죽고 마는 건가?’ 생각하며 절망감에 울기 시작했습니다. 5시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었습니다. 여직원의 몸은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냉동 창고 문틈으로 빛이 들어오면서 누군가 문을 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뜻밖에도 경비원 아저씨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구조되고 난 후, 그녀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어떻게 자기가 거기에 있는 줄 알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경비원 아저씨가 냉동 창고 문을 연 건 정말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경비원 아저씨는, 자기가 공장에 온 지 35년이 됐지만 그 여직원 말고는 누구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또 퇴근해서 집에 돌아갈 때는 “안녕히 계세요!”라며 매일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날 퇴근 시간이 됐는데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경비원 아저씨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공장 안을 여기저기 순찰하며 찾아다니다가 냉동 창고까지 확인해 봤던 것입니다. 경비원 아저씨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대했지만, 당신은 매일 나에게 인사를 해주니 늘 당신이 기다려지더군요. 내가 그래도 사람 대접을 받고 있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이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날마다 건넨 그 짧은 인사 한마디가 그 여직원의 생명을 구했던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한마디 인사가 기적을 낳은 "생명"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저 ‘별일 없지요? / 네, 이쪽도 아직은 / 별일 없어요.’라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이런 사소한 일상의 관심, 바로 그것이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긴 겨울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봄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모쪼록 '아직은 별일 없'다는 반가운 소식만 들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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