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보다 먼 곳 - 김시종
- 김수열
오사카 영사관으로부터 귀국 권유받은 적 있었습니다 광주 항쟁 시집 준비하는 걸 알고, 방일 준비하던 전두환 쪽에서 체면이 안 섰는지, 서울에서 출판하라 압박했습니다 ‘제주 4.3’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김영삼 때, 서울문학인대회 초청받았는데, 영사관에서 ‘다음 방한에는 한국 국적으로 바꾼다’는 서약서 강요했습니다 조선적(朝鮮籍)이던 나는 거절했습니다 주최측 노력으로 어찌어찌 참가는 했지만, 행선지는 서울로 한정되었습니다
4.3 진상규명에 나선 김대중 대통령 때에야 조선국적 임시여권으로, 1949년 도일(渡日)하고 처음으로, 처음으로 제주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항쟁 당시 희생된 동지들 뵐 낯이 없어 마음 무거웠는데, “어서 오세요” 조카딸이 울먹이며 나를 안아준 게 구원이었습니다
무성한 가시덩굴 안쪽 무덤 두 개 나란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40년 된 양친입니다 처음 뵈었습니다 무릎 꿇고 송아지처럼 울었습니다 남은 인생, 해마다 성묘하고 싶어 2003년 한국 국적 취득했습니다 그 해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 제주 4.3을 ‘국가권력의 잘못’이라 인정하고 공식 사죄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반세기, 제주는 참 멀었습니다
달보다 먼 곳이었습니다
- 시집 <호모마스크스>(아시아, 2020)
* 감상 : 김수열 시인.
1959년 제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84년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1989년 중등학교 교사를 시작하였고 2015년 2월 퇴직하였습니다.
1982년 <실천문학>에 ‘어머니’외 3 편의 시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1997),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실천문학사, 2001), <바람의 목례>(애지, 2006), <생각을 훔치다>(삶창, 2009), <빙의>(실천문학사, 2015), <물에서 온 편지>(삶창, 2017), <호모마스크스>(아시아, 2020)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김수열의 책읽기>(각, 2002),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2005), <달보다 먼 곳>(삶창, 2021) 등이 있습니다. 시집 <생각을 훔치다>로 제4회 오장환 문학상을 수상(2011)하였고, 시집 <빙의>로 제3회 신석정 문학상을 수상(2016)하였습니다.
마당극 놀이패 <한라산> 대표, 제주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제주도 지회장, 제주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제주 문학의집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지난 8월 16일 임기 2년의 제11대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시인이 제주 4.3 사건을 제주도 출신 재일(在日) ‘김시종’이라는 시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대로 소개하면서 긴 시로 그려낸, 참으로 슬픈 노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를 이해하고 잘 감상하기 위해선 김시종 시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선행 학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년 전,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총 15회의 연재기획 씨리즈로 김시종 시인의 삶을 다룬 기사를 인터넷 판으로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토대로 <중앙일보>가 ‘구순(九旬) 재일 시인 김시종의 삶’이라는 기사로 다시 소개한 기사가 있어 이곳에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시종은 어머니 고향인 제주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원산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중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혁명에 심취해 만주에서 방랑 생활을 한 끝에 ‘지적(知的) 노동으로 식민지 지배에 기여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자발적으로 항만 건설 노동자로 일할 정도로 의식이 투철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비국민’을 선택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김시종은 일본의 ‘황국신민화 교육’을 받으며 ‘황국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철저한 일본어 교육을 받은 그는 일본의 승전을 축하하며 광복을 맞았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사범학교를 다니다가 여름방학을 맞아 제주도로 돌아가 있을 때, 식민 통치의 가혹함을 알게 되면서 학생운동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그의 가족들이 부친의 고향이자 조부가 있는 원산으로 향했지만, 이미 38선이 가로막혀 되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이산가족이 된 그의 가족들은, 그해 가을 조부가 사망했다는 소식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시종 가족은 다시 제주도에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4.3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49년, 계속되는 혼란 속에서 일본 밀항선을 타게 됩니다. ‘만일 죽더라도 내 눈 앞에서 죽어선 안된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뒤로하고 작은 배에 탄 그는 그것이 가족과의 생이별이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스무 살의 젊은 청년 김시종은 오사카 재일 조선인 집단 거주지인 이카이노(猪飼野)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제주도의 4.3 사건을 피해 온 제주도민들이 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기업의 ‘전쟁 특수’를 거드는 역할을 했는데, 당시 지식인이었던 김시종과 그가 속한 조직에서는 ‘동포를 죽이는 무기 제조에 손을 빌려줘선 안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몸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운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혼란스런 상황을 경험하던 나라 잃은 딱한 젊은이에게 당시 일본의 무정부주의 시인 오노 도사부로가 쓴 ‘시론’이라는 문장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시작(詩作)을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학생, 노동자가 참여한 동인지 ‘진달래’를 통해 문학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55년 시집 <지평선>으로 등단하였습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일본 내에서 ‘조총련’과 ‘민단’이 서로 대치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많은 동료들이 니가타 항에서 북송선을 타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그는 시작(詩作)을 전혀 하지 못하다가 70년 조총련과 결별하면서 낸 시집이 <니가타>였습니다. 73년부터 효고현의 한 일본 고등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시작했고 무려 18년간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국적은 해방 이전의 식민지 ‘조선’을 뜻하는 ‘조선적’을 유지했습니다. 남한에서는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고 광주민주항쟁 등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고, 북한에서는 김일성 부자 세습 독재 정권이 압박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는 ‘무국적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1998년에서야 비로소 임시여권을 발급받아 ‘처음으로’ 고향인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야 한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시인 김시종의 삶을 다룬 연재물의 내용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김수열 시인의 시를 읽으면 바로 이 내용을 ‘그대로’ 다시 한번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처음으로’ 제주도에 올 수 있었던 대목에서, 반복해서 ‘처음으로 처음으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 시인은 제주의 아픔을 이토록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지 반세기, 제주는 참 멀었습니다 / 달보다 먼 곳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비행기로 2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이지만, 제주가 달보다 더 먼 곳이라는 시인의 표현은 여러 의미가 내재 되어 있는 ‘시적 은유’입니다. 우선, 한국에서는 정부는 물론 여러 명의 대통령이 바뀌어야 했고, 또 이승에서 살아있으면서 헤어졌던 부모님은 쌍무덤이 된 채로 만날 정도로 멀리 있었다는 말입니다. 40년 만에 모든 게 ‘처음’이었습니다. 김수열 시인은 마치 본인이 김시종이 된 듯, ‘김시종’의 마음으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무성한 가시덩굴 안쪽 무덤 두 개 나란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40년 된 양친입니다 처음 뵈었습니다 무릎 꿇고 송아지처럼 울었습니다’
글이 꽤 길어졌지만, 시인이 쉰이 되는 해인 2009년에 발간한 그의 시집 <생각을 훔치다>에 실린 시 한 편을 더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지 만 25년이 된 때 쓴 시입니다. 그가 교직을 그만둔 해가 2015년이니 아마도 이때부터 생업으로서 가르치는 교사직과 시인으로서의 전업 사이에서 중대한 결심을 하기 시작한 즈음이 아닐까 추측되는 시입니다.
시를 쓴다는 일
- 김수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선배(아니, 선생뻘 되는) 시인과
우연히 통화하다 한 말씀 듣는다
많이 써
되든 안 되든 많이 써
요즘 시인들 너무 안 써
쥐어짠다고 시가 되나
쓰다가 안 되면
그것도 시야
‘그것도 시야’라는 말 다음에
물음표가 온 것도 같고
느낌표가 온 것도 같고
술은 아직 깨지 않고
모의고사 감독을 하는데
미끄러지듯 답안을 써나가는 아이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문제지 여백에 되든 안 되든 써볼까 하는데
내가 참 안쓰럽기도 하고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 시집 <생각을 훔치다>(삶창, 2009)
고향 제주에서 마당극을 통해서 문화운동을 하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중학교 교사 시인에게 새롭게 다가온 ‘제주 4.3’과 ‘시인 김시종’이라는 인물은 어쩌면 삶의 이정표를 바꾸게 했던 듯합니다. 자신의 삶의 ‘문제지 여백에 되든 안 되든 써 볼까’ 결심하게 된 것이, 바로 치열하게 그 길을 달려온, ‘이름만 대면 다 아는 / 선배(아니, 선생뻘 되는) 시인과’의 조우(遭遇)였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학생들이 시험 보는 바로 전날에도, ‘술에 취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참 안쓰럽’다고 표현한 시어가 ‘시적 은유’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그런 면에서 올해 그가 새롭게 맡은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직은 앞으로 제주가 모든 이들에게 더 이상 ‘달보다 먼 곳’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들을 ‘되든 안 되든 많이’ 추진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다른 어느 사람보다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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