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냇물의 목소리 / 호미 - 황규관

석전碩田,제임스 2022. 12. 14. 06:15

냇물의 목소리
- 김종철 선생님 영전에

- 황규관

1
함께 아픈 강에 가시자 했더니
밥과 술을 먹자 했습니다
대도시의 골목에서, 무슨 말을 나눴는지 기억은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면서 제게 주시던
웃음만 기억납니다
내 못남이 조금 맘에 들으셨구나 하는 불빛이
너무 높지 않은 전압으로 제 몸에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너무 아둔했습니다
일자무식, 어둑한 자아였습니다
제 입에서 강이 나오고
선생님이 밥과 술을 흘려주신 순간이
제게는 역사(役事)같습니다
아니 지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글로 불세례를 주시고
말과 웃음으로 침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냥 콸콸 솟는 지하수였습니다
마른 논에 천천히 들어오는 물줄기였습니다
어린모가
조금 환해졌습니다

2
아버지 없던 시간에
아버지를 할 수 있는 한 멀리 내쫓으려 했던 기억에
니는 해외여행 가봤나?
여권도 없는데요
아이고, 촌놈 같으니라고
똑똑 문을 두드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동무 하자 하셨습니다
어제는 왜 빨리 갔나?
속상했나?
아뇨, 다른 일정이 있었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니네 걱정까지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꼭 살아 남으래이
물이 끊긴 어린모가 무엇으로 자랄지
이제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억지로라도 불러 앉히던 목소리가 사라졌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오늘 검은 옷을 입다 던졌습니다
괜히 어려운 소리 하지 말고
니 어머니가 알아듣게 써라
저는 이 말씀으로 계속 자학하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다 떠나야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앓고, 사랑하고, 그리워하자 하셨으나’*
오늘 쓰는 이 시는 조시가 아닙니다
생전에 보여드리지 못한
돌아갈 고향 없는 가난의
어둑한 내면입니다
자꾸 귀에서 비행기 소리가 난다고 하시니
그냥 한번 읽어드리는 읊조림입니다
비행기 소리는 이제 그만 벗으시고
다시, 냇물 소리로 오시리라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아직 아둔하기는 합니다만
남은 우리가 말라가는 냇물에 한 모금씩 보태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3
호들갑 떨지 마라
사람이 나이 들면 다 아픈 것이고
그러다 죽는 것이다

* 註 : 「장마」라는 에세이를 보여드렸더니 답을 주셨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고마워. 앞으로 이런 글 많이 써라고 권하고 싶네. 괜히 어려운 소리 하지 말고 고향을 잃고, 일어가는 슬픔과 고통을 솔직히 나누는 게 문학의 본질이 아닌가 싶어. 때가 되면 다 떠나야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앓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말이야.” 2020년 6월 24일 20시 47분이 발신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 계곡에서 운명하셨다. 평생 소음을 싫어해서 소음에게 보복당하는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셨지만, 정말 세상의 소음에게 죽임 당하신 것만 같다.

- 시집 <호랑나비>(아시아, 2021)

* 감상 : 황규관 시인.

1968년 전북 전주시 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철소 노동자로 일하며 쓴 시로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철산동 우체국>(내일을 여는책, 1998), <물은 제 길을 간다>(갈무리, 2000), <패배는 나의 힘>(창비, 2007),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실천문학사, 2011), <삼례 배차장>(지식을 만드는 지식, 육필시집, 2013), <정오가 온다>(삶이보이는 창, 2015),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문학동네, 2019), <호랑나비>(주)아시아, 2021)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 <리얼리스트 김수영>, <문학이 필요한 시절>(교유서가, 2021) 등이 있습니다. 2020년에 백석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지난 2020년, 황규관 시인의 시집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가 오장환 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에서 최종심까지 오르다가 그해 11월 마침내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그의 시가 새삼스럽게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평생 <녹색평론>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살다가 지난 2020년 6월 작고한 故 김종철 문학평론가를 생각하면서 쓴 조시(弔詩)입니다. 물론 시인은 ‘오늘 쓰는 이 시는 조시가 아닙니다’고 말했지만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승을 먼저 떠난 ‘김종철(金鍾哲)’이라는 한 사람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합니다. 황 시인이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김밥 모임(김종철 선생님과 밥을 먹는 모임)의 멤버로서 그는 故 김종철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의 1연은 시인이 자신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이실직고 고백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의분에 차서 ‘아픈 강에 가시자했던 아둔했던 시인에게 그가 보여 준 것은 그저 ‘밥과 술을 먹자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저 조용한 ‘웃음’으로 ‘끊임없이 앓고, 사랑하고, 그리워하자 하셨을 뿐입니다. 그를 먼저 보내고 황망히, 아직도 아둔한 자신을 바라보니, 이제야 그와의 만남이 역사(役事)였고 지진이었으며, 불세례침례였음을 깨닫습니다. 그가 자신에게는 콸콸 솟는 지하수였고, 마른 논에 천천히 들어오는 물줄기였음을 뒤늦게 깨닫는 아둔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마르지 않는 냇물이 되어 시인의 귓전에 들리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김종철(金鍾哲, 1947년 1월 10일 ~ 2020년 6월 25일) 교수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일찌감치 대학을 그만두고, 1991년 10월부터 <녹색평론>을 창간하여 죽을 때까지 발행인과 편집인을 맡았습니다.

년 김종철은, 4·19와 5·16이라는 격변기 속에서 기성세대의 허위 의식과 권위주의를 목격하면서도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섬기는’ 시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1965년,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김종철 문학’의 나침반을 하나 마련하게 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읽은 것입니다. 새장 속에 갇힌 새 한 마리, 주인집 문 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개 한 마리가 제국의 멸망을 예고한다는 블레이크의 시를 접하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후 블레이크의 ‘벌거벗은 정직성’, 민중에 대한 친화력, 그리고 예언자 정신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김종철 교수의 첫 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1978)에서 그는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는 것에서 예언이 나오며 시인의 ‘정직함이 바로 위대함’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스스로는 시인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삶 속에서 ‘시인의 마음’을 갖는 것을 역설하며 후배 시인들과 동무가 되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녹색 운동에 매진하였습니다.

시는, 이렇듯 시인으로 살아가는 길에서 냇물과도 같고 또 아버지 같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을 잃고 그 슬픔을 승화시키며, 그의 영전 앞에서 시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다짐하고 결심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 자신을 ‘어린모’라고 지칭하여 마른 논에 냇물이 서서히 들어와 자신에게 물을 공급하는 듯 영향을 미쳤음을 노래하면서 ‘남은 우리가 말라가는 냇물에 한 모금씩 보태겠습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이 결연하기까지 합니다.

김종철 선생의 영향을 받아 쓴 최초의 그의 시라고 알려진 ‘호미’라는 제목의 시를 읽으면, <녹색평론>을 통해서 故 김종철 교수가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대할 때 어떤 태도와 윤리의식을 가지고 문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후배 문학인들에게 누누히 말했는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호미

- 황규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풀을 매고 흙덩이를 부수고 뿌리에
바람의 길을 내주는 호미다
어머니의 무릎이 점점 닳아갈수록
뾰족한 삼각형은 동그라미가 되어가지만
호미는 곳간에 쌓아둘 무거운 가마니들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한 끼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몸을 부린다
인간은 모두 호미의 자식들이다
호미는 무기도 못 되고 핏대를 세우는
고함도 만들지 않는다 오직
오늘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을 가꾼다
들깨며 상추며 얼갈이배추 같은 것
또는 긴 겨울밤을 설레게 하는
감자며 고구마며 옥수수 같은 것들을 위해
호미는 흙을 모으고
덮고 골라내며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 혼자돼 밭고랑에서 뒹굴기도 한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호미야말로
인간의 위대한 이성을 증명하지만,
산 귀퉁이 하나 허물지 않은 그 호미가
낡아가는 흙벽에
말없이 걸려 있다

- 시집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문학동네, 2019. 10)

아가면서 ‘어둑한 내면’을 이토록 밝혀주는 ‘삶의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일 것입니다. 아니, 그런 ‘냇물’ 같은 스승을 만나려고만 할 일이 아니라 이제는 그 ‘냇물’에 한 모금이라도 보태는 ‘낡아가는 흙벽에 / 말없이 걸려 있’는, ‘산 귀퉁이 하나 허물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위대한 이성을 증명하는 ‘그 호미’ 같은 존재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