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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90이 넘은 내 선생님은 내가 환갑을 맞았다니까 ‘늙은 젊은이’라고 해야 하나 ‘젊은 늙은이’라고 해야 하나 망설여 진다고 하셨다. 늙었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60에 비해선 70이 70에 비해선 80이 더 늙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단순 연령은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피아니스트 Rubinstein은 95세에 타계했다. Time 에 난 그를 애도하는 글의 끝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다.” 였다. 앞서 말한 존경하는 나의 스승은 이제 90을 넘기셨다. 그런데도 그의 인품은 더욱 고매해져가고 그의 사상은 점점 더 위대해져 간다. 또 그의 총명성이나 기억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번은 제자 3회가 선생님을 모시고 얘기를 나누었다. 자연히 옛 얘길 하게 되었고 옛 동창들 얘기가 나왔..

광고

광고란 문자 그대로 넓게 알리는 일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사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리는 일인데 요즈음 보면 대체로 지나친 과장 허위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샴푸 광고에서 나오는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은 실제로 샴푸로 감은 머리가 아니고 며칠 머리를 감지 않아 머릿기름이 흐르는 머리카락임을 누구나 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허위인데 생각보단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혹하니 기이하다. 가령 환자들은 약광고에, 여인들은 미용품에, 노인들은 젊음을 찾을 수 있다는 광고에 혹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보면 약한 자들을 파고드는 게 광고다. 그래서 혹하는 약자들이 그래도 나보다는 강한 이들이다. 나는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가 짧아졌다. 그때 그 지역에 유명한 기독교 부흥사가 있어 모든 병을 고친다며 TV 에..

기적

일본에서 수십년 일하다가 은퇴하는 한 기관사의 고백을 기억한다. 그는 그의 삶을 기적이라고 하였다. 오랜 기관사 생활에서 한번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출발 전에 안전을 위해 기도하였고 도착하면 감사의 기도를 빼지 않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아니냐고 하였다. 사실 산다는 것은 곧 기적이다. 나는 5남매 중 하나였는데 전쟁통에 다 죽고 나만 남았다. 그야말로 기적인데 그 기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고 있다. 고교시절의 폐결핵은 나의 삶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이 병으로 고생하며 보냈는데 결국 치료 되었다. 이 기적의 의미는 무엇인가. 12살에 아버지가, 스무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남은 돈 (물려 받은 유산이랄..

입장 차이

요즈음에는 공공건물 공공시설이 많아서 혹 길 가다가 급히 용변이 보고 싶어도 문제가 없다. 가까운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에는,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참으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어디 식당이라도 눈에 띄면 화장실 사용허가를 부탁하게 되는데 . 그땐 참 미안스러운 마음으로 묻게된다. 미국 유학시절에 피자집에서 주말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곧 잘 지나가던 이들이 차를 세우고 들어와 화장실을 묻곤 했다. 그리고는 사용 후 고맙다며 나가곤 한다. 시간제로, 주문 받고, 설거지, 청소를 하는 나로서는 피자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 중에 이 화장실만 사용하고 가는 이들이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게 아무 부담도 안 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쪽을 가리켜 주는 것으로 끝이..

내가 만난 미국사람들

세상 어디엘 가나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또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나는 내가 만난 미국인들 중에 그들의 친절이나 사는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1972년 처음 유학을 간 seattle의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지도교수로 만난 분은 50대 초반의 Dr.Jack Kittel 이었다. 처음 만나 나의 엉터리 영어에서 내가 겪을 모든 어려움을 다 예견하시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의사를 확인해 가며 나의 학업 계획을 적절히 짜 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문제가 있으면 들리라고 하셨다. 실제로 그렇게 하며 학교생활을 하였다. 독신자의 유학생활 중 불편한 것은 긴 휴가철이다. 추수 감사절, 성탄절, 부활절 둥의 기간에는 학교의 급식..

등산

가까운 선배의 조언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그것도 무슨 명산을 일부러 찾아다닌 것이 아니고 집에서 가기 편한 북한산엘 주로 다녔다. 한 주에 두 번 혹은 세 번씩은 꼭 다녔으니 북한산만 해도 적어도 천 번은 넘게 다닌 셈이다. 주위에서는 한 곳만 다니면 지루하고 싫증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드문 드문 다니면 같아 보일지 몰르지만 아주 자주 다녀 보면 갈 때마다 달리 보이는 게 산이다. 어떤 때 연 이틀을 가 봐도 다른 것을 본다. 작은 꽃 봉오리가 커졌다든가, 혹은 어제까지 매달려 있던 잎이 떨어졌다든가 등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갈수록 새롭고 볼수록 아름답고 좋은 게 산이라 마치 고전음악과도 같다. 늘 같은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기는 이유는 또 있다. 늘 다니는 ..

기도

우리 부모님과 누나와 나는 1947년 여름에 월남하였다. 우리는 서울 친척집에서 임시로 기거하였다. 일곱 살이던 나는 어느 날 그 집 어디였던가, 화경(돋보기)을 하나 주웠다. 그것으로 무언가를 태우며 노는 것이 신기하여 큰 즐거움이었다. 한데 어느 날 엿 장수가 지나가며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엿이 너무도 먹고 싶어졌다. 생각하다가 가지고 놀던 화경을 들고 가서 엿과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행복하게도 화경과 엿을 바꾸어 갖고 누가 볼까봐 혼자 숨어서 다 먹었다. 그리고는 내가 남의 화경을 가지고 엿을 바꾸어 먹은 것을 깨닫고 불안에 떨기 시작하였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자랐다. 그래 기도하는 것을 알았고 죄를 지으면 지옥간다는 것도 알았고 죄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