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눈사람 자살사건 - 최승호

석전碩田,제임스 2023. 10. 4. 06:06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듯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 시집 <눈사람 자살 사건>(달아실, 2019)

* 감상 : 최승호 시인. 1954년 8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중, 춘천고를 거쳐 춘천 교육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강원 영서 지역에서 7년간 가르쳤으며, 그 후 출판사 등에서 편집자로 있다가 2009년,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며, 그곳에서 시창작을 가르치다가 지난 2019년 8월 정년 퇴임했습니다.

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를 쓰다가 1977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 ‘비발디’가 추천되면서 시단에 명함을 내밀었으며, 민음사에서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1982)을 수상하면서 이름이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그는 얼마 후, 서울로 옮겨 출판사의 편집자로 전업하였습니다. 민음사의 주간, 고려원과 세계사 등 그가 편집자로 거쳐 간 출판사들이 여러 곳이었고, 가는 곳마다 문학 전문 계간지를 새로 발간하는 등 중요한 일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당시 시인의 고등학교 선배였던 최열을 도와 환경운동연합 월간지인 <함께 사는 길>을 맡아 환경운동을 한 이력도 있습니다. 김수영문학상(1986), 이산문학상(1990), 대산문학상(2000), 현대문학상(2001), 미당문학상(2003)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집으로는 <대설주의보>(민음사, 1983), <고슴도치의 마을>(문학과지성사, 1985), <진흙소를 타고>(민음사, 1987), <세속도시의 즐거움>(세계사, 1990), <회저의 밤>(세계사, 1993), <반딧불 보호구역>(세계사, 1995), <눈사람>(세계사, 1996), <황금털 사자>(해냄, 1997), <그로테스크>(민음사, 1999), <모래인간>(세계사, 2000),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열림원, 2003), <고비>(현대문학, 2007), <북극 얼굴이 녹을 때>(문학에디션 뿔, 2010), <아메바>(문학동네, 2011),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난다, 2013), <눈사람 자살사건>(달아실, 2019) 등이 있으며, 동요집 <말놀이 동시집 1~5>(비룡소, 2005), <최승호 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비룡소, 2011), 산문집 <달마의 침묵>, <시인의 사랑>, 우화집 <마지막 눈사람>(상상, 2023) 등이 있습니다.

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는 ‘우리말에서 말과 말의 우연한 결합에서 오는 엉뚱한 결말과 기발한 발상력을 통해 언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열어 주는 작품으로 어린이 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그 후, 이 동시집에 나오는 25편의 작품을 BTS 연출자인 방시혁과 협업을 통해 <말놀이 동요집> 1집과 2집을 발간하면서 시의 경계를 한껏 확장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칠 전 우연히 방시혁이 작곡한 <말놀이 동요집>에 수록된 동요를 유투브를 통해서 접했는데, 그 기발한 상상력과 중독성 있는 곡조에 매료되어 최승호 시인의 시를 다시 꺼내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이런 동요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답해야 하겠지만 이번 추석 때 들은 기쁜 소식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그의 시집,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우화집 <눈사람 자살 사건>에 수록된 표제작입니다. 이 시집은 1997년에 낸 시집 <황금털 사자>를 제목도 새로 정하고 수록된 작품 내용도 부분적으로 수정, 보충하여 새롭게 발간한 책입니다. 시 같은 우화, 우화 같은 시들 속에는 이야기가 있고, 여운이 남는 철학과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 시집이 나온지가 벌써 30년이 지나가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거대한 자연 생태계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그 힌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늘날 ‘자살’이라는 말은 마치 금기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마치 그것이 따스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시가 자살을 부추기는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살을 생각해 본 사람들을 공감하면서 위로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사람이 녹는 것을 '자살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이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따듯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는 문장을 읽으면,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쌓여왔던 설움을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 마지막 위로가 되는 공감을 받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물'은 역설적으로 더 빨리 눈사람을 녹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동안 차가운 삶을 버텨왔으니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온수를 틀어 따뜻함에 닿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와 닿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납니다. 누군가 눈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 따뜻한 공감의 손길은 삶의 마지막 ‘생명줄(Life Line)’이라고 외치는 소리 같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외치는 절규 말입니다.

인이 자신의 딸 여래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쓰기 시작했던 <말놀이 동시집>, 그리고 그 책에 수록된 동시들에 곡을 붙이고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그래픽 작업을 곁들여 만든 <말놀이 동요집>의 곡들은 어른이 들어도 경쾌하고 흥미롭습니다. 어린아이를 키울 땐 반드시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니까요.

떤 동요인지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 석전(碩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R39PZqNd9GUY-3Ob6pfUk_L5BX2rl8jL&si=FJDnhnQzJ4nS_ekr 

 

말놀이동요 최승호 방시혁(1집,2집)

말놀이가 있는 말놀이동요 재미있게 불러보세요~

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