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계면조 무게 – 김현에게
- 김영태
[객석]지 10월호에
우리 나라에서 散文을 제일 잘 쓰는
어떤 평론가의 푹 늙은
얼굴을 본다
살오른 피부 듬성 수염
술꾼답던 지난날 총총하던 눈빛도
많이 간 것 같아 보이고
새치가 섞인 푸석푸석한 머리
손질 안 한 그의
꾸밈새는 그대로지만
눈이 부신 듯 세상을 계면조로 가늘게
잘게 그가 사물을 分析하며
아름다운 筆致로 뽐내던
한데 사진기 앞에서는 좀 떨떠름한
모차르트가 調和라면 바하는 평화라고
말하는 그의 人字 두 개
엎은 듯한 입가의 미소가
그나 나나
늙어가고 있는 지금
가을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기는
- 시집 <가을, 계면조 무게>(미래사, 1991)
* 감상 : 김영태 시인. 아호는 초개(草芥). 무용평론가, 음악평론가, 연극평론가. 화가.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매동초와 경복중고등학교,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1959년 <사상계>에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하였습니다. 당시 <사상계>에는 박남수 시인이 상임 편집위원으로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 동지로 만나 서로 알고 지냈고 또 <평균율> 동인이었던 마종기, 황동규 시인과는 막역한 문학 동창들이었습니다.
첫 시집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중앙문화사, 1965) 이후, <바람이 센 날의 印象(인상)>(현대시학사, 1970), <草芥手帖(초개수첩)>(현대문학사, 1975), <客草(객초)>(1978), <여울목 비오리>(1981), <결혼식과 장례식>(문학과 지성사, 1986),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우울하게>(민음사, 1988), <매혹>(청하, 1989), <가을, 계면조 무게>(미래사, 1991), <고래는 명상가>(민음사, 1993), <남몰래 흐르는 눈물>(문학과지성사, 1995), <그늘 반근>(문학과지성사, 2000), <누군가 다녀갔듯이>(문학과지성사, 2005)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北 호텔>(민음사, 1979), <어름사니의 步行(보행)>(지식산업사, 1984), 소묘집 <잠시 머물렀던 환영들>(열화당, 1980), <섬 사이에 섬>(한국시인협회상 수상 및 소묘집, 현암사, 1982), <왕래>(디자인사, 1989), 시평집 <변주와 상상력>(고려원, 1984), 무용 평론집 <저녁의 코페리아>, <연두색 신의 가구들> 등이 있습니다.
현대문학상(1972), 시인협회상(1982), 서울문화예술평론상(서울신문사, 1989), 허행초상(무용평론상, 2004), 댄스 하트 어워드(현대무용진흥회)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시인으로서의 활동 이외에 소묘집을 그려내는 화가로, 월간 <객석>의 무용자문위원으로서 음악과 연극을 평론했고, 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무용원 강사로, 또 수많은 무용 평론을 쓰는 평론가로 활동했으며, 무용평론가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김영태 시인이 무용평론가로서는 거의 ‘독보적’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는 <金榮泰 舞踊手帖(김영태 무용수첩)>이란 이름으로 무용 평론집을 무려 열 권을 냈고, 당시만 해도 그의 얼굴이 안 보이는 무용공연은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가 쓴 무용 대본도 ‘덫’, ‘결혼식과 장례식’ 등 80여 편이나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그 자신이 스스로를 예술의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넘나드는 ‘문화의 불침번’이라고 자처했던 것처럼,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을 불살랐던 사람입니다. 그의 詩를 들여다보면 시인이 관심을 가졌던 예술 세계가 곳곳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는 말로 된 그림’이라는 그만의 시론을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하여 영감과 상상력, 혹은 언어를 전개하는 방법론이 그림을 그리듯 ‘회화적’이라고나 할까요.
생업을 위해서 김영태 시인은 1968년 <월간중앙> 기자로 입사했지만 곧 퇴사하였고 한국외환은행으로 옮겨 1992년 퇴사할 때까지 은행 조사부에서 은행 잡지, 단행본, 각종 통계자료 등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김영태 시인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1999년 정월, 홍익대학교 교정에서였습니다. “졸업 후 거의 모교에는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오고 싶어서 왔다”면서 홍대 캠퍼스를 찾은 김영태 시인을 만나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이런저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했지만, 당시 교수 인사업무를 하던 때라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후배는 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 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저 ‘이해하는 척’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인이 했던 많은 이야기 중 그 당시 제게는 아주 생소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발레’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당시 저는 발레할 때 신는 버선이 ‘토슈즈‘라는 사실도 모르는 문외한이었으니 김 시인은 후배와의 대화가 그리 신명 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고(2007) 어렴풋이 그가 왜 그때 오랜만에 모교 교정을 불쑥 찾아왔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김영태 시인과는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당시 평론으로, 그리고 문학으로 서로 가깝게 교류했던 경복고 후배 김현(1942~1990) 교수의 갑작스러운 부음 소식을 듣고(1990년 6월 27일) 그의 생전에 그에 대해 썼던 시를 이듬해에 발간된 자신의 시집 가장 뒤에 실었던 시입니다. 그리고 시집의 제목을 아예 이 시의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최근 마종기 시인을 비롯, 장경린 시인 등을 소개하면서 김영태 시인의 흔적이 자꾸 언급되어 당시 직접 선물 받았던 김영태 시인의 이 시집을 책장에서 꺼내 다시 읽게 되었고, 이맘때쯤 읽기에 안성맞춤인 이 시를 골라본 것입니다.
이 시를 썼을 때가 시인의 나이 쉰다섯, 인생의 황혼기라고 하면 조금 이른 나이였겠지만, 시인은 낙엽이 뒹구는 가을을 맞으면서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최고의 지성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평론가 김현 교수를 새삼 다시 바라보았던 듯합니다. 어느 날 문득 잡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면서 ‘지난날 총총하던 눈빛도 / 많이 간 것 같아 보이고 / 새치가 섞인 푸석푸석한 머리 / 손질 안 한 그의 / 꾸밈새는 그대로지만’ ‘그나 나나 / 늙어가고 있는 지금 / 가을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기는’ 하는데 그 무게가 ‘계면조 무게’라는 것입니다.
‘계면조(界面調)’는 한국 음악에 쓰이는 가락의 하나로 서양 음악에서 사용하는 단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정악과 판소리의 ‘계면 가락’은 대개 느낌은 부드러우면서 우울하고 슬픈 한(恨)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데,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가, 옥중가, 옥중상봉 등에, 심청가의 심청모 출상하는 대목, 흥보가의 가난타령, 박타령 등이 계면 가락입니다. ‘아름다운 筆致(필치)를 뽐내던’ 젊은 시절은 다 가고 이제는 ‘그나 나나 / 늙어가고 있는 지금’ 느껴지는 가을의 무게는 달아보나 마나 ‘계면조 무게(가락)’라고 읊은 시인의 노래가 우울하고 쓸쓸함을 더합니다. 두 사람 모두, 뜨겁게 문학에 정진하다가 아쉬운 나이에 서둘러 떠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2017년 6월,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영인문학관에서는 의미가 있는 전시 하나가 마련되었습니다. <짧은 글, 깊은 사연 – 문인 편지전>이 그것이었습니다. 이 전시회에 마침 故 김영태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그를 회고하는 전시 코너도 마련되었습니다. 시인이 생전에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하여, 그의 캐리컷처들, 그리고 미국에 있는 마종기 시인과 평생 주고받은 160여 통의 편지글들이 전시되었습니다. 그가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꼼꼼하게 정리하며 모든 자료를 영인문학관 관장에게 보내면서 쓴 그의 편지글 첫 문장입니다. “칠순 역을 지나면서 제가 했던 일을 정리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스터, 프로그램, 기타 모든 자료를 보냅니다. 영인문학관에서 잘 보관하셨다가 언젠가는 날 잡아 전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평생을 기관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을 해서인지, 자신에 대한 자료도 엄청나게 꼼꼼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시인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춤 구경꾼>이라고 비하했던 초개(草芥 ; 지푸라기처럼 한갓 먼지,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뜻) 김영태 시인은 ‘문예회관 대극장 가열 123번’이란 제목의 시에서 평생 변하지 않았던 그의 일상을 이렇게 소소하게 노래했습니다.
문예회관 대극장 가열 123번
- 김영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는 춤 보러 가서
극장 맨 왼쪽 통로에 있는 자리…
가열 123번에 앉아 있습니다
춤 공연이 있는 날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누구든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춤 보러 오는 늙은이가 결근했나보다고
보통 저녁나절
저를 만나시려면 그 자리에 오시면 됩니다
30년 넘게 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요
보는 것도 業이지요
제가 보이지 않는 날
나의 누이들 중 누구 하나가
꽃다발을 그 자리에
놓고 가는 게 보이는군요
말없이 그가
세상 뜬 저녁에
– 시집 <그늘 반 근>(문학과지성, 2000)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현재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 가열 123번은 그 후 극장 측 배려로 故 김영태 시인의 ‘지정석’이 되었습니다. 그가 시에서 예측했던 대로 ‘말없이 그가 / 세상 뜬’ 후 한때 그 자리는 ‘누구라도 그대가 된’ 그의 누이 중 하나가 놓고 간 시들지 않은 꽃다발이 늘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릴케가 ‘신이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가을을 노래했듯이, 또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노래했듯이, 가을은 어쩌면 참으로 뜨겁게 그 계절을 건너온 사람만이 제대로 맞을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젊은 나이에 훌쩍 이승을 떠나버린 평론가 김현,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을 불태웠지만 아쉬운 나이에 서둘러 떠나버린 김영태 시인. 그들이 서로를 향해서 헛헛하게 읊었던 노래가 이 가을의 초입에 읽으니 쓸쓸함이 더합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조화와 바하의 평화, 또 30여 년을 하루 같이 ‘늘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잔잔하게 일상을 지켜냈던 시인의 삶이, 이 가을 묵직한 무게로 다가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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