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지붕 위로
- 폴 베를렌(Paul Marie Verlaine)
하늘은, 저기, 지붕 위에서,
너무도 푸르고 참으로 조용하구나!
종려나무는, 지붕 위에서,
잎사귀 일렁이고.
하늘 가운데 보이는 종
부드럽게 우는데,
나무 위에 슬피 우짖는
새 한 마리.
아하, 삶은 저기 저렇게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을,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저 평화로운 웅성거림.
-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 봐, 너는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 시집 <예지(Sagesse)>(1881)
* 감상 : 폴 베를렌 (Paul-Marie Verlaine, 1844 ~ 1896).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공병장교의 아들로 로렌주 메스에서 태어났습니다. 파리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였으나 중퇴하였고, 20세에 보험회사 일을 시작하였다가, 파리 시청의 서기로 근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5세에는 18세기 프랑스의 우아하고 향락적인 꿈, 우수에 찬 풍속과 정경을 노래한 시집 <사랑의축제>를, 다음 해에는 <고운 노래들>을 내면서 자유롭고 율동적인 대담한 시형, 환상적이고 암시적인 그의 독특한 시 세계를 확립했습니다.
1870년 베를렌은 마틸드와 결혼하였으나, 1871년 아르튀르 랭보가 보낸 편지를 받고 동성애 연인이 되면서, 아내와 아들을 방치하였습니다. 시인 랭보(1854 ~ 1891)와 폭풍과 같은 동성연애를 하면서 브뤼셀에서 술에 취해 질투 끝에 권총으로 그를 쏘았고, 그중 한 발이 랭보의 왼쪽 손목에 상처를 입혀 체포된 그는 2년간 옥중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시인이었지만, 그의 말년은 약물 중독, 알콜 중독, 빈곤 등으로 몰락하였으며 슬럼가와 공공 병원을 전전하다가 1896년 1월 8일, 파리에서 51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주요 시집으로 <사트르누스의 시>(Poemes saturniens, 1866), <사랑의 축제>(Les Fetes galantes, 1869), <고운 노래들>(La Bonne Chanson, 1870), <말 없는 연가>(Romances sans paroles, 1874), <예지>(Sagesse, 1881), <사랑>(Amour, 1888), <평행으로>(Parallelement, 1889) 등이 있습니다.
이 시는 최근 제가 읽었던 <세이노의 가르침 –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세이노 지음, 데이윈 刊, 2023)이라는 책에서 알게 된 시입니다.
이 시를 감상하기 전에 먼저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의 책부터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난 초봄, 강화에서 교회 담임 목사로 있는 작은 매형을 만났을 때 ‘나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 되고 있는 책’이라면서 한 권을 주셔서 건네받았던 책이었습니다. 700페이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정가가 6천 원밖에 되지 않는 책, 또 필자의 이름도 없이 그저 필명인 ‘세이노(Say No!)’라고만 표기된 책입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길래’하는 궁금증 때문에 그 날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세이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머리말부터 읽기 시작한 후 단숨에 다 읽어버렸던, 말하자면 참으로 ‘희한한 책’이었습니다.
책의 필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은 ‘1955년생으로, 의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전 재산을 사기를 당해 모두 날리고 사망하면서 고등학생 시절부터 생활고에 시달렸으나 현재는 2023년 기준 순자산 천억 원대 자산가’라는 게 전부입니다.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출판되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가 일간신문이나 잡지 등에 공개적으로 쓴 글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급기야는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엄하게 돈을 버는 못된(?) 사람까지 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필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되, 책을 팔아서 돈을 벌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데이윈’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책을 펴낼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아울러 인터넷을 통해서 PDF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올해 초 시중 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된 책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젊을수록 돈을 아껴라’는 소제목으로 쓴 글에서 그가 소개한 시입니다. 그가 직접 쓴 글을 그대로 한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난, 술, 여자, 동성애, 질병, 교도소 등의 단어로 얼룩진 지저분한 삶을 살다가 동거하던 창녀 앞에서 죽었던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 곽광수 교수님이 번역한 그의 시 ’하늘은 지붕 위로‘ 중 일부를 인용했다. 원래 이 시는 그의 시집 <예지 Sagesse>에 수록된 것으로, 국내외에는 시의 첫 구절이 제목으로 알려졌다. 폴 베를렌이 감옥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회하면서 이 시를 썼다고 알려져 있음을 염두에 두고, 감옥에서 창살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그를 상상하며 직접 번역한 시 전문을 다음 쪽에 실었다.’(세이노의 가르침, 321쪽)
위대한 문학(예술) 작품을 남긴 작가가 반드시 위대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베를렌은 감옥 안에서 자신을 되돌아 보며, 젊음을 낭비했던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통회하며 울고 있는 모습을 솔직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광기에 가득해서 자기 속에 있는 본능과 욕망이 이끄는 대로 혼돈 속을 달려왔지만, 사실 그가 깨달은 삶의 본질이란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을, /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 저 평화로운 웅성거림.’과 같이, 작은 감옥의 창문을 통해서 올려다 보이는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조용한 하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계속해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젊은 시절에 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개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특별한 재능도 없는 보통 사람이라면 당신 호주머니에 돈이 쌓이는 법칙은 단 하나라는 사실이다. “먼저 몸값을 올려 나가면서 최대한 절약하고 최대한 먼저 모아라. 그러면 쌓일 것이다.” 그 쌓인 돈이 부자가 될 종잣돈이 된다. 젊었을 때 놀 것 다 찾아다니고 즐길 것 다 찾아다니며 카드를 긋고, 쉴 것 다 찾아 먹는 사람들이여. 당신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았던 덕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당신들과 별다를 바 없이 젊음을 보냈던 사람들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라. 명심해라. 당신이 생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음 시 구절이 당신의 마음을 송곳처럼 찌르게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젊은 날 온몸으로 광기어린 혼돈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보지 못한 사람이, 오늘 시에서 시인이 깨달은 것처럼 삶은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 평화로운 웅성거림’임을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시에서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라고 묻는 싯귀를 읽으면서, 온갖 부귀, 영화를 다 누려보았던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의 말년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노래했던 성경의 구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또 안도현 시인이 ‘너에게 묻는다’는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으냐?’ 묻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도 합니다.
차제에, <세이노의 가르침> 일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필자의 자신감 넘치는 특유의 어투로 그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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