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말고 오!늘!
- 권용석
내일은
내 게으른 영혼의 도피처
내 비루한 마음의 가림막
오! 감탄하면서
깊이
기쁘게
오늘 숨쉰다
가벼워진 몸
날개 돋는 영혼
자유롭게
펄럭펄럭
오! 깊이…
늘! 기쁘게
- 에세이 시집, <꽃 지기 전에>(파람북, 2023)
* 감상 : 권용석 변호사.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천 신흥초등학교, 대건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검사로 10년을 근무하였고, 그 이후 변호사로 15년을 살았습니다. 2022년 5월 22일, 오랜 암 투병 끝에 향년 58세의 나이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지난주 예배 설교에서 목사님께서 잠시 언급했던 시입니다. 교회 절기로 ‘승천 대축일 또는 부활 제 7주간’이었던 그날, 목사님은 ‘승천 주일’이라는 절기를 교리적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완전히 비워내 가벼워짐으로써 승천할 수 있었던 예수’를 시적 은유로 설명하면서 바로 이 시를 소개했습니다.
이 시는 권용석, 노지향 부부가 쓴 유고 에세이 시집에 실려 있는 짤막한 시로, 저자가 암과 싸우며 짧은 생애를 굵게 살아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을 시로 표현한 것이라 그 울림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2009년 평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서 강원도 홍천에 전 재산을 털어 사단법인 [행복공장]이라는 수련원(성찰공간 빈숲)을 설립하여 삶의 길에서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행복공장] 수련원에는 비행을 저질러 9호 또는 10호 처분을 받은 학생들이 입소하는데, 연극을 전공한 그의 아내는 연극 공연을 통해서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여 상처를 치유하는 무료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일을 막 시작함과 동시에 찾아온 암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삶의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책 여러 군데서 그는 오늘 하지 않고 내일로 미룬다든지, 당장 실천하지 않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을 그는 ‘내 게으른 영혼의 도피처 / 내 비루한 마음의 가림막’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살았기에 ‘지금’이 영원과 맞닿아 있음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 감탄하면서 / 깊이 / 기쁘게 / 오늘 숨쉰다’ ‘오! 깊이… / 늘! 기쁘게’라고 말입니다.
‘가벼워진 몸 / 날개 돋는 영혼 / 자유롭게 / 펄럭펄럭’..이 부분을 소개하면서 목사님은 권 변호사의 삶은 ‘지금을 철저하게 살았기에 그는 가벼워졌고 그의 영혼에는 날개가 돋았다’고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승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삶으로 증언했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계속해서 ‘세상 현실이 아무리 비루하다 해도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벅찬 소명을 가슴에 품고 어둔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자’고 강조하며 설교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매일 아침 저의 묵상 글과 매주 수요일 함께 읽는 시 감상문을 받으면 제일 먼저 ‘아멘’으로 화답하던 후배가 먼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습니다. 3주 전부터 아무 응답이 없어 가까운 지인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지금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의 마지막 구간을 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지 하룻 만의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故) 권용석 변호사의 유고 시집 끝 부분에 실려 있는 또 다른 시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꽃 지기 전에
- 권용석
“곧 보자”했던 이의
‘부고’문자를 받아들고
하늘을 본다
보고 싶으면
정말 보고 싶으면
지금 보자.
꽃 지기 전에
- 에세이 시집, <꽃 지기 전에>(파람북, 2023)
오늘은 후배의 빈소에 들러 마지막 가는 그의 길에 한 송이 꽃이라도 올려야겠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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