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自恨 - 이매창

석전碩田,제임스 2023. 3. 29. 06:30

自恨 자한
스스로 한탄하다

- 이매창(李梅窓)

東風一夜雨(동풍일야우)
동풍에 밤새 비가 오더니
柳與梅爭春(유여맹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대차최난간)
이를 보며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樽前惜別人(준전석별인)
술잔 앞에 두고 애석하게 헤어진 님 생각이네.
含情還不語(함정환불어)
마음속에 품은 정 다시 말하지 못해
如夢復如癡(여몽복여치)
꿈을 꾸는 듯하다가 다시 바보가 된 듯하네.
綠綺江南曲(녹기강남곡)
거문고로 강남곡을 연주 하여도,
無人問所思(무인문소사)
이내 심사를 물어 볼 사람 없네.
翠暗籠烟柳(취암농연류)
안개낀 버들이 어스럼한 푸른빛이 쌓이고
紅迷霧壓花(홍미무염화)
붉고 희미한 안개가 꽃을 짓누르고,
山歌遙響處(산가요향처)
민요 부르는 노래 멀리서 들려오는데,
漁笛夕陽斜(어적석양사)
어부의 피리소리 석양에 기우네.

-* 含情(함정) : 마음속에) 정[사랑]을 품다. (표정과 태도에서) 정[애정]이 어리다[드러나다·흐르다].
-* 癡 어리석을 치 : 어리석다, 어리다, 미련하다
-* 江南曲(강남곡) : 강남의 풍속 또는 여인의 연정을 그린 악부. 양무제가 창시한 이래 역대 문인들이 애용한 주제이다.
-* 籠 농 : 버들이나 싸리채 따위로 함과 같이 만들어, 종이로 바른 그릇. 옷 같은 물건(物件)을 넣는 데 씀. 장롱(欌籠). 새장.
-* 響 울릴 향 : 울리다, 메아리치다, (소리가)마주치다, (소리가)진동하다(振動)
-* 山歌(산가) : (산과 들에서 일을 할 때 부르는) 민간 가곡.

* 감상 : 이매창(李梅窓). 조선 선조 때의 기생. 1573년 전북 부안(扶安) 현의 아전 이양종과 관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한테 글을 배워 한시(漢詩)에 뛰어났으며 가무도 잘했는데 특히 거문고를 잘 탔습니다. 본명은 향금(香今)이며, 자는 천향(天香), 호는 매창(梅窓)입니다. 계유년(癸酉年)에 태어났기 때문에 계생(癸生) 또는 계랑(癸娘) 등으로 불렸으나 본인 스스로 ‘매창’이라고(自號) 불렀습니다.

1592년, 스무 살이 될 무렵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평생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유희경은 매창보다 스물여덟 살이나 연상이었고 또 천민 출신이었는데, 당시 이미 더 잘 알려진 매창이 유희경에게 강하게 끌렸던 것은 둘 다 시를 통해서 대화가 가능했고 출신 때문에 겪는 아픔을 서로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희경은 서경덕의 문인인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중인 신분을 가진 시인들과 함께 ‘풍월향도(風月香徒)’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와 노래를 지었을 정도로, 요즘으로 치면 시동인 활동을 활발히 했습니다. 특히 천민 출신 시인 백대붕(白大鵬)도 그 모임에 있었는데, 부안에 유희경이 찾아와서 매창을 만났을 때, 서울에서 온 시객(詩客)이라는 말에 매창이 ‘유희경과 백대붕 둘 중 누구신지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 당시 유희경과 백대붕의 이름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알려졌다는 말입니다.

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모아 참전했던 공을 인정받아 양반이 된 유희경이 63세가 되던 1607년, 이별 15년 만에 매창을 다시 만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열흘 만에 유희경은 가족이 있는 한양으로 다시 떠나면서 둘은 또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매창과 유희경은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들이 헤어진 3년 후인 1610년(광해군 2년) 여름, 매창은 38세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녀의 시신은 그녀의 유언대로 부안읍 오리현(五里峴) 공동묘지 ‘매창이뜸’에 그녀가 아끼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지 45년 만인 1655년에 묘비가 세워졌고, 1668년에는 부안의 아전들이 매창의 수많은 시 작품 중에서 당시까지 전해지고 있던 한시(漢詩) 54편을 모아 매창집(梅窓集, 변산 開岩寺 刊)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습니다. 현재 ‘매창집’ 원본은 세 권이 남아 있는데, 미국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한 권, 간송미술관에 두 권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1983년 매창의 묘는 지방기념물 제 65호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그 묘비를 중심으로 ‘매창공원’이 조성이 되었다가, 2015년 그 규모를 더 넓혀 ‘매창 사랑의 테마공원’으로 확장이 되었습니다.

성 삼절이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라고 하듯, 부안 삼절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라고 합니다. 전해지는 시들에 표절 논란이 있는 ‘허난설헌’이나, 실존은 했으되 그 실체가 불분명한 ‘황진이’와 달리 매창은 직접 지은 시들이 후대 사람들이 시집을 만들어 남길 정도였다는 점에서, 또 그녀의 이름이 다른 사람의 문헌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존재가 분명한 여류시인이었습니다.

대 최고의 시 비평가였던 허균(許筠)은 매창에 대해서 그의 문집에,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는데 생김새는 시원치 않으나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하여 종일토록 술잔을 놓고 시를 읊으며 서로 화답하였다.'고 썼습니다. 매창과 허균은 그 후 10여 년 동안 남녀 간의 육체적인 관계는 갖지 않고 서로 문학의 벗으로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매창이 죽기 전, 허균의 영향을 받아 참선을 시작했고, 선시(禪詩) 계열의 한시(漢詩)를 본격적으로 짓게 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가 죽은 후, 허균은 ‘애계랑(哀癸娘)’이라는 시 두 편을 지어 그녀를 기렸습니다.

학 도반(道伴)의 죽음을 이런 멋진 시로 애도를 했으니 매창의 죽음은 결코 불행만은 아닌 듯합니다. 조금 길지만, 허균이 남긴 ‘애계랑’ 시 중 첫 번째 시와 그 서문을 소개해봅니다.

哀桂娘(애계랑)      
계랑(이매창)을 애도하며

- 許筠(허균)

其一

妙句堪摛錦(묘구감리금)
글귀는 오묘하고 뛰어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淸歌解駐雲(청가해주운)
청아한 노래는 머물 던 구름도 흩어지게 했네.
偸桃來下界(투도래하계)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계로 내려오더니
竊藥去人群(절약거인군)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에서 떠나 갔다네.

燈暗芙蓉帳(등암부용장)
부용꽃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香殘翡翠裙(향잔비취군)
비취색 치마엔 향기가 아직 남아있구려.
明年小桃發(명년소도발)
내년에 작은 복숭아 꽃 필때엔
誰過薛濤墳(수과설도분)
누가 설도의 무덤에 들리려는지.

-* 偸桃(투도) : 동방삭이 仙桃[선도]를 훔쳤다는 고사.
-* 竊藥(절약) : 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먹고 달나라로 도망간 고사.  

허균의 ‘애계랑’ 서문(序文)

桂生扶安娼也。工詩解文。又善謳彈(계생부안창야. 공시해문, 우선구탄) 性孤介不喜淫(성고개불희음) 余愛其才。交莫逆。雖淡笑狎處(여애기재, 교막역, 수담소압처) 不及於亂。故久而不衰(불급어난, 고구이불쇠) 今聞其死。爲之一涕。作二律哀之(금문기사, 위지일체, 작이율애지)

[계생은 부안 기생이라. 시에 뛰어나고 글도 풀이하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그러나 천성이 고고하고 깔끔하여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고 비록 담소하며 가까이 지냈지만, 난잡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아 오래 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 죽음을 듣고 한 차례 눈물을 뿌리고서 율시 두 수를 지어 슬퍼한다.]

금없이 왜 갑자기 한시이며, 또 이매창의 시는 왜 소개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사실 몇 주 전에 청계천 6가에 갔다가 아직도 영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헌책방에서 책 몇 권을 샀다고 한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때 구입했던 책 <시로 쓰는 사계>(정호 著, 가온, 2019)를 읽다가, 전국에 있는 시비(詩碑)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요즘 같은 봄날에 감상하기에 딱 어울리는 ‘이화우(梨花雨)라는 제목의 매창 시조를 만났고, 계속해서 매창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그녀의 문학 세계에 푹 빠졌기 때문입니다.

무 살 꽃다운 나이에 쉰에 가까운 시인 유희경을 만나 ’순전한 사랑‘에 빠졌다가,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 그리워하고 애달파하기만 했던 그녀의 인생. 그러나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수많은 절창의 시를 남겼으며,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과 교류하며 살다 간 매창. 매년 음력 4월 5일, 매창공원에서 그녀를 기리는 매창제가 열리고 전국적으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으니 매창은 길이길이 ‘만인의 연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교류하는 이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걸 보면,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