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弔詞
- 이병철
나의 죽음은 나의 태어남으로 비롯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삶이란
나의 죽어감이었다
내가 살아온 것만큼 나는 죽어간 것이었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아름답게 죽어간다는 것
그러므로 죽음이란
삶을 경작하여 피워내는 꽃이었다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아야 하는 것은
오롯한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것
너를 향한 내 사랑은 그 꽃의 향기였다
마침내 내 걸음에서 내 숨결이 떠났을 때
내 눈빛이 다해 다시 너를 그릴 수 없을 때
지난 내 삶을 바쳐 가꾼 그 한 송이 꽃을 품고
첫 설렘의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자리가 다시 떠나는 자리였으므로
그 길에서 내 사랑으로 피운 그 꽃의 향기는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였다
그러므로 하나의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다시 하나의 문을 새롭게 여는 일이었다
나의 삶이 나의 죽음으로 비롯되었듯이.
- 시집 <흔들리는 것들에 눈 맞추며>(들녘, 2009)
* 감상 : 이병철. 호는 여류(如流). 농부이자 시인, 영성가.
1949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으나 유년 시절은 통영에서 성장했습니다. 1974년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학생운동(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어 제적되었다가 2006년 명예 졸업했습니다. 학생운동을 계기로 농민 운동과 환경 생태운동을 해오면서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우리밀살리기운동 활동을 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녹색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생명의 숲 가꾸기 등 환경단체 운동을 했고, 1996년 전국귀농운동본부를 만들어 이사장으로서 2008년까지 단체를 이끌며 삶의 변화를 통한 개인의 깨어남과 사회의 변혁이 함께하는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산문집으로 <밥의 위기 생명의 위기>(종로서적, 1994), <살아남기, 근원으로 돌아가기>(두레, 2000),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이후, 2007) 등이 있고, 시집으로는 <당신이 있어>(민들레, 2007), <흔들리는 것들에 눈 맞추며>(들녘, 2009), <고요한 중심 환한 미소>(민들레, 2015), <지상에서 돋는 별>(2018), <신령한 짐승을 위하여>(한살림, 2018) 등이 있으며, 시 산문집으로 <밥과 똥의 노래>, 그리고 사진 산문집 <애련일지(愛蓮日誌)>(수문, 2022)가 있습니다.
2019년 (사)한국산림문학회가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상으로 숲 사랑, 생명 존중, 녹색환경 보전의 가치를 담은 작품에 주는 <녹색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현재 경남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에서 텃밭을 가꾸며 전국귀농운동본부 생태귀농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숲처럼 넉넉하다. 흙처럼 따뜻하고 샘물처럼 맑고 깨끗하다. 들꽃처럼 아름답고 들짐승처럼 싱싱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사람과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든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 이것이 곳곳에서 별처럼 빛나면서 그의 시로 하여금 또 하나의 숲, 또 하나의 흙이 되게 하고 있다.”
이병철 시인의 시집 <흔들리는 것들에 눈 맞추며>에 대한 신경림 시인의 추천사입니다. 시인은 환경운동을 해 나가면서 자연과 인간이 결국은 하나라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생각에서 모든 것을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개체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의식, 그리고 그 모든 개체의 조화와 평등,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시인의 삶 자체이니, 그가 쓰는 글은 곧 수행자의 노래이며 구도자의 시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의 제목이 ‘조사(弔詞)’입니다. 조사란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조문의 뜻을 표하는 글이나 말’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었을 때, 그의 영정 앞에서 그가 살아온 삶을 칭송하면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이 조사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죽은 자나 살아남은 자, 태어남과 죽어감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치 두 개의 세계가 대립하여 존재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둘이 하나’임을, 그의 특유의 은유적인 언어로 풀어가고 있는 과정이 한 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나의 죽음이 나의 태어남에서 비롯하였다’는 시의 첫 문장과 시의 마지막 부분의 표현 - ‘그러므로 하나의 문을 닫는다는 것은 / 다시 하나의 문을 새롭게 여는 일이었다 / 나의 삶이 나의 죽음으로 비롯되었듯이.’ - 은 수미상관(首尾相關)을 이루는 중요한 구조입니다. 죽음과 태어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하나의 문을 닫는 의미가 있는 ‘죽음’이나 하나의 문을 새롭게 여는 의미가 있는 ‘태어남’도 결국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조사(弔詞)는 슬퍼하는 노래가 아니라, ‘아름답게 죽어간다는 것’은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아’내면서 ‘오롯한 한 송이 꽃을 피워’ ‘내 사랑으로 피운 그 꽃의 향기’로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희망의 노래가 됩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영원히 없어지는 사라짐과 이별이 아니라, ‘삶을 경작하여 피워내는 꽃’입니다. 그리고 그 한 송이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 오롯이 너를 향한 사랑이 있어야 향기로운 꽃이 됨을 시인은 노래합니다. 마침내 그 꽃의 향기는 너와 내가 일체가 되어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길 가다가 따르는 무리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나를 따르겠느냐’고 그들에게 직면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땅의 가치관을 너머, 전복적인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그를 따르는 것이 부담이 된 무리들이 다양한 핑곗거리들로 둘러댔습니다. 그중에서 ‘먼저 가서 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해달라’는 자에게 예수께서 하셨던 대답이, 오늘 이 시를 감상하면서 갑자기 떠오른 건 왜일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말한 사람에게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자들로 하게 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천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음과 태어남, 태어남과 죽음을 별개로 생각하면 결국 평생을 죽은 자를 슬퍼하는 조사(弔詞)만 하다가, 오롯이 지금 여기에서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운동’은 요원(遙遠)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아야 하는 것은 / 오롯한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것 / 너를 향한 내 사랑은 그 꽃의 향기였다’
화려했던 벚꽃이 고작 일주일도 못버티고 져버렸습니다. 봄꽃들의 사라짐을 보며 슬픈 조사(弔詞)로 서러워하기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보라 /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노래한 정호승 시인의 시로 조사(弔詞)를 하며 '다시 하나의 문을 새롭게' 열어야 겠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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