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 이명찬
지금도 그대로인지는 모르지만
부산 서면의 시장통에 가면
진짜 칼국수를 파는 집들이 있다.
밀반죽을 밀어서 날 퍼런 식칼로 슥슥 베어 넘기는
숙련된 노동이 아름다운 곳.
설익은 밀 냄새의 칼국수를 주문하던
우리는 정직했었다, 적어도
그 정확한 2백 원어치의 칼질 앞에서.
명동이나 오장동 근처를 지날 때면
요즘도 가끔 칼국수를 찾곤 하지만
그러나 아무도 수고로이 칼질하지 않는다.
기계로 빼내고도 칼국수라 우기는
공인된 공갈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나는
요령부득 적당히 항복하기로 한다.
그래선지 저래선지 요즘의 칼국수는
흐물흐물 자꾸 퍼져 나오고
시장기와 적당히 타협하고 일어서는 내가
어쩌면 한 그릇 칼국수만 같아 낭패스럽다.
칼치가 갈치가 되기 바쁘게
세련된 장바구니만 좇아가듯
순화된 칼국수도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나리.
아아 나의 공갈 국수.
- 시집 <아주 오래된 동네>(문학동네, 1997)
* 감상 : 이명찬 시인, 문학평론가.
1961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으며 2003년부터 덕성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집으로 <아주 오래된 동네>(문학동네, 1997)가 있습니다. 저서로는 <1930년대 한국시의 근대성>(소명출판, 2000), <한국 현대시문학사>(소명출판, 2005, 공저), <한국 현대시문학사>(수정 증보판)(소명출판, 2019) 등이 있습니다.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인 문제를 극복하는데 문학, 특히 시를 활용하여 심리적인 안정과 실질적인 치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시와 상담(정신 치료)을 접목하여 ‘시치료’라는 독특한 분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시치료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과과정을 개발하였습니다. 시는 시인만이 쓸 수 있는 특권에 속한다고 봤던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통념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안에 시심(詩心)을 갖고 있음을 가정하고, 그 시심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고 또 삶 속에서 자기만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게 함으로써 우울과 불안, 강박과 신경증적 증상 등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명찬 시인이 한국 시치료(詩治療)학회 감사를 역임하며 매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며칠 전, 밀면이 뭔지에 대해 지인들과 즐거운 수다를 떤 적이 있습니다. ‘밀로 만든 면(麵), 즉 밀국수’를 밀면이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기계로 뽑은 국수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밀어서 만든 것을 밀면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는 말에서 시작된 수다였습니다.
향토문화 백과사전에 따르면, 밀면은 부산에서 여름철에 즐겨 먹는 ‘찬 국수’의 일종입니다. 정확한 연원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지만, 6.25 전쟁 피난 시절 부산에 처음 만들어졌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입니다. 북한 지역 출신의 실향민들이 북한의 향토 음식인 냉면을 먹고 싶었지만,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어려워 당시 구호물자인 밀가루에 감자가루(전분)을 섞어 냉면 면발과 비슷하게 면을 뽑아 냉면 대용으로 쫄깃하게 만든 음식이 밀면의 효시라는 것입니다. 1952년 부산 남구 우암동에 개업한 ‘내호냉면’이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밀면 ‘원조(元祖)’ 전문 음식점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밀면’은 아니지만 서민의 고달픈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부산 서면의 ‘정직한 칼국수’를 추억하면서 읊은 시입니다. 시인은 적어도 칼국수에 관하여는 자기만의 정확한 ‘기준’이 있는 듯합니다. 우선, 칼국수는 칼로 직접 쓸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 둘째 칼국수는 세련되거나 요령으로 만들어지기보다는 시장통에서 투박한 정직한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밀반죽을 밀어서 날 퍼런 식칼로 슥슥 베어 넘기는 / 숙련된 노동이 아름다운 곳’ 그리고 ‘기계로 빼내고도 칼국수라 우기는 / 공인된 공갈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나는 / 요령부득 적당히 항복하기로 한다’는 표현들은 바로 그가 갖고 있는 이런 칼국수에 대한 기준을 엿보게 합니다. 그리고 2백 원 하던 ‘설익은 밀 냄새’가 나던 그 칼국수를 시키던 시인도 ‘적어도’ ‘정직했었노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의 시적 은유를 굳이 찾으라면, 기계로 뺀 면을 칼국수라고 우기는 지금의 현실을 ‘공인된 공갈’이라고 표현한 것과 그런 현실 앞에서 ‘요령부득 적당히 항복하기로’ 하는 자신을 자각하면서 ‘시장기와 적당히 타협하고 일어서는 내가 / 어쩌면 한 그릇 칼국수만 같아 낭패스럽다’고 노래한 부분일 것입니다. 시인은 정직하지 못한 세상을 향해 숙련된 노동으로 만들어진 ‘진짜 칼국수’가 되지 못하고, 타협과 항복으로 흐물흐물 퍼져버린 공갈 칼국수가 된 자신을 ‘날 퍼런 식칼로’ 채찍질하고 있는 듯합니다.
[칼코]라는 이름의 30년도 더 된 모임이 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청년 대학생 시절, 함께 모여 의논하고 토론하려면 아늑한 장소가 필요했는데, 우리가 선호했던 곳이 바로 칼국수 집이었습니다. 몇 번의 모임이 계속되다가 멤버 중 한 분이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 근처에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칼국수 집이 있으니 다음번 모임은 그곳에서 한번 모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색다른 맛의 칼국수 집을 경험한 우리는 그 이후 이름난 칼국수 집을 전전하면서 모임을 이어가게 되었고, 결국 모임의 이름도 ‘칼국수 코이노니아’를 줄여서 [칼코]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모임이나 만남, 교제’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이니 [칼국수 코이노니아]란 ‘칼국수를 먹으면서 만나는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이명찬 시인의 같은 시집 속에 있는 또 다른 시를 하나 읽으면서 이 글을 맺으려고 합니다. 요즘 같은 때 딱 어울리는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월의 꽃나무
- 이명찬
저토록 많은 세계와 우주들을
도대체 어디다 숨겨두었다가
이천 리 동해 파도가
단번에 몰아치는 듯
무수한 함성들 터뜨려놓는 것인가.
하필이면 왜 사월이 혁명의 물결로
만일滿溢 했던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으다,
극명한 정오의 햇살 아래
튼실하게 뿌리박고 선
대명천지大明天地여.
사월의 꽃나무 한 그루여.
- 시집 <아주 오래된 동네>(문학동네, 1997)
엊그제 KTX를 타고 경주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오면서 바라본 차창 밖 산야의 모습이, 바로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그 눈부신 세계였습니다. 몽실몽실 피어나는 초록빛 나뭇잎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산벚꽃 나무와 어우러져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듯한 ‘무수한 함성’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혁명의 계절에 시인은 튼실하게 뿌리 박고 서 있는 ‘사월의 꽃나무 한 그루’이길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극명한 정오의 햇살 아래 / 튼실하게 뿌리박고 선 / 대명천지大明天地여. / 사월의 꽃나무 한 그루여.'
[칼코] 모임에 대한 추억이 소환되다보니 갑자기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이 생각이 나는 아침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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