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말했더니
- 오은영
사다리가 전봇대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하나밖에 없네."
전봇대도 사다리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두 갠데도 혼자 못 서지?"
사다리가 말을 바꿨어요.
"넌 대단해!
다리가 하난데도 혼자 서잖아."
전봇대도 고쳐 말했어요.
"네가 더 대단해!
사람들을 높은 데로 이끌어 주잖아!"
- 월간 <아동문예>(2007년 3월호)
* 감상 : 오은영 동화작가, 시인.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2년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그리고 2003년 새벗문학상에 단편 동화가 당선되었습니다. 작품집으로는 동시집 <우산 쓴 지렁이>(현암사, 2001), <넌 그럴 때 없니>(파랑새어린이, 2002), <언제나 널 사랑해>(형설아이, 2010), <생각중이다>(바람의아이들, 2013), <팥죽 한 그릇>(느림보, 2014), <맛있는 수학 파이>(바람의아이들, 2018)을 비롯해, 동화집 <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국민서관, 2006), <모자 쓴 고양이 따로>(함께자람, 2021), <한주 동생 똥주>(킨더주니어, 2010), <마음이>(형설아이, 2006), 그림동화 <귀찮은 아이>, <하필이면>(느림보, 2021), 창작동화 <초록도마뱀의 비밀>(효리원, 2006)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동시문학상, 2008년 소천아동문학상 신인상, 그리고 2019년에는 동시집 <맛있는 수학 파이>로 우리나라 좋은 동시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1년 전 바로 오늘, 김현숙 시인이 쓴 동시 ‘특별한 숙제’를(https://blog.daum.net/jamesbae/13411044) 감상하면서 ‘동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름 정리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동시란 첫째 어린이를 주 독자로 하는 시이며, 둘째 어린이의 마음 상태에서 어린이다운 생각이나 눈으로 어린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이나 세계를 표현하는 시여야 하며, 셋째 어린이의 마음, 감정, 생각, 삶, 그 자체를 표현하는 시여야 하며, 넷째 어린이에게 주는 계몽적, 교훈적인 시라야 하는 것 등의 조건을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즉, 동시란 어른이 어린이의 마음으로 어린이다운 정서와 생각을 가지고 쓰는 시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동시도 어른이 쓴 ‘시’입니다.
공교롭게도 정확하게 1년이 지난 오늘 감상하는 시도 동시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시이다 보니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이 누구에게나 평이하게 다가오는 내용입니다. 특히 쉬운 대화체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교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높은 데로 이끌어 주'는 것이 대단히 훌륭하다는 지혜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쳐 말했더니’ 돌아오는 말도 그대로 고쳐져서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똑같은 것을 표현하는데도 부정적으로 힐난하면서 말하는 것과 긍정적으로 배려하면서 하는 말은 천양지차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서로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내가 대접을 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성경에서 율법 중에서 최고의 율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께서는 ‘네가 대접 받고자 하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대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시면서 이것이 ‘황금율(黃金律, Golden Rule)’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최근 서울 시내의 한 여자 고등학교 학생들이 국군 장병에게 쓴 위문편지 때문에 논란이 일파만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여고생들이 자신들이 쓴 위문편지를 트윗트에 올리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그들이 트윗에 올린 위문편지에는 이런 표현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시련이 많을 텐데 군 생활 이 정도는 잘 이겨내야 진짜 사나이가 아닐까요’, ‘사기를 올리는 내용이 뭐가 있나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쫄?만한 게 없는 것 같네요’, ‘눈이나 열심히 치우세요’ 등 위로나 격려하는 말이 아니라 조롱에 가까운 편지글을 버젓이 자신들 스스로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위문편지가 조롱과 성희롱성 발언이라면서 그 여고생들을 공격하는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에 대해 여고생들이 해명을 한다고 한 발언들이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학교에서 강요하는 봉사시간 1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자비로 천 원짜리 편지지를 사야했고, 7줄 이상의 쓰기도 싫은 편지글을 강제로 쓰느라 아까운 공부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이딴 행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명을 하였다지요. 결국 극성 네티즌 중에서 이 여고생들의 신상 털기를 감행하여 공개하는 일이 벌어지기에 이르면서 이 문제는 일파만파 지금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여성 관련 단체에서는 일제히 ‘강요하는 위문편지 쓰기를 폐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렸는데 오늘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 청원에 15만 명 이상이 서명을 하여 마치 남과 여, 진보와 보수의 대결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가는 말이 곱지 않으면 돌아오는 말도 당연히 곱지 않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논의의 본질은 없어지고 곱지 않은 말투나 태도에 서로의 감정이 상해서 엉뚱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논란도 일찌감치 ‘고쳐 말했’다면 금방 수그러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위문편지’라는 말을 하다 보니 오래 전 군 생활을 할 때 내가 경험했던 위문편지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이 납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그야말로 강제로 썼던 위문편지가 장병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는데, 막상 군 내무반에서 받아 본 위문편지는 적잖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내용이 어떠하든 바깥 민간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감격이 될 정도로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당시, 그 위문편지가 인연이 되어 한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여학생 3 명과 펜팔이 시작되었고, 결국 첫 휴가 때 그들 모두를 초청하여 서울 구경을 시켜주는 ‘특별 이벤트’까지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인연은 그 후 그 어린 학생들이 40 중반을 넘긴 중년이 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아마도 서로 오고 가는 말이 고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오은영 시인의 동시를 하나 더 감상하겠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동시를 읽으면 모녀 사이에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이심전심 서로를 존중해 주고 또 서로의 장점과 긍정적인 면을 칭찬해주는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연상이 되는 그런 시입니다. - 석전(碩田)
지우개 엄마
- 오은영
엄마는 날 보고
지우개래.
잔뜩 오른
배추 값 걱정
날 보면
말끔히 지워진대.
내 보기엔
엄마가 지우개 같아.
친구랑 다툰 뒤
머리에 난 뿔
엄마 품에 안기면
살며시 지워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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