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내꺼 - 김선우

석전碩田,제임스 2022. 1. 5. 05:44

내꺼

- 김선우

젊은 여자 개그맨이 TV에서 연애시절 받은 편지를 읽는다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니꺼가]
세 음절의 그 말을 힘주어 읽은 후 어깨를 편다 젊은 남자 가수가
노래를 한다 밥을 먹다가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멍해진다
'내꺼 중에 최고'가 노래 제목이다 내꺼 중에 최고…

보채는 당신에게 나는 끝내 이 말을 해주지 않는다
[누구꺼? 당신꺼 내꺼]
이 모든 소유격에 숨어 있는 마음의 그림자노동,
그게 싫어,라고 말하려다 관둔다 내가 좀더 현명하다면
[당신꺼]라고 편안히 말해줄 수도 있을 텐데 여인을 업어
강 건네준 후 여인을 잊는 구도자의 자유자재처럼
모두에게 속하고 어디에도 영원히 속할 수 없는
말이야 천만번 못하겠는가 내 마음이 당신을 이리 사랑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당신꺼]라고 말하지 않는다
햇살을 곰곰 빗기면서 매일 다시 생각해도
당신이 어떻게 내 것인가 햇살이 공기가 대지가 어떻게,
내 것이 아닌 당신을 나는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

-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 감상 : 김선우 시인, 소설가.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습니다.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물 밑에 달이 열릴 때>(창비, 2002),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 200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 2007),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녹턴>(문학과지성, 2016), <아무것도 안 하는 날>(단비, 2018), <내 따스한 유령들>(창비, 2021.8)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 <바리공주>(열림원, 2003), <나는 춤이다>(실천문학사, 2008) 등이 있습니다. 2004년 <현대문학상>, 2007년 <천상병시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선우 시인의 시는 1년 전 ‘입춘’이라는 제목의 시를 입춘 날에 감상했던 적이 있습니다.(https://blog.daum.net/jamesbae/13411047) 몸의 소리를 잘 듣고 그것을 시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시인으로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늘 시를 읽다 보면 ‘내꺼 중에 최고’라는 제목의 신나는 유행가를 듣다가 그 속에 있는 가사 ‘내꺼’ ‘당신꺼’ ‘누구꺼’ 등과 같은 사람을 소유격으로 나타내는 시쳇말을 곰곰 생각하면서 한 편의 시를 읊고 있는, 생각이 많은 한 시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선, 시인은 ‘사랑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문장, ‘내 것이 아닌 당신을 나는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 ...’라고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니지만 이리도 분명히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아주 단순한 내용, 단순한 시이지만 다 읽고 나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이 가는 시입니다.

람들은 흔히 사랑을 그 사람을 소유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7080 세대들이 젊었던 시절, 사귀는 애인이 있는지 확인할 때 ‘쟤 누구꺼냐’고 묻는 것은 흔한 질문이었습니다. TV의 개그 프로에서나 유행가 가삿말에서 내꺼 니꺼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사랑을 보채는 상대방이 자신을 소유하기 위해서 ‘누구꺼? 당신꺼 내꺼’라고 묻는 강요에 답하는 것을 ‘마음의 그림자 노동’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소유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혀 노동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음험한 ‘그림자 같은 노동’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묻고 강요하는 건 싫어!’라고 명쾌하게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현명하지 못할 것 같아 그저 멍해져 있는 시인은 참으로 난감할 뿐입니다.

틀린 과도한 소유욕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스토킹은 집요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스토커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일그러지고 뒤틀려 있어 상대방의 삶이 망가질 정도로 공포심과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사랑을 ‘소유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조차도 부인하게 되고 '사랑'이라는 ‘장미의 이름’으로 포장을 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 폭력성이 끔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은 진짜 사랑은 소유하지 않는 것임을 설득하기 위해서 슬쩍 구도자의 옛 이야기 하나를 소환해 냅니다. ‘여인을 업어 / 강 건네준 후 여인을 잊는 구도자의 자유자재처럼 / 모두에게 속하고 어디에도 영원히 속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 우리 범인(凡人)에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말이야 천만번 못하겠는가 내 마음이 당신을 이리 사랑하는데 / 그런데도 나는 [당신꺼]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결기를 다집니다. 그리고 아무리 곰곰 생각해봐도 ‘당신이 어떻게 내 것인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맙니다.

인이 노래했듯이 적당히 타협해서 그저 ‘나는 당신꺼‘라고 말해주는 것도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집착과 소유욕인 줄도 모르고 ’내꺼‘라고 움켜 잡는 것은 더더욱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저 오늘도 ’모두에게 속하고 어디에도 영원히 속할 수 없는‘ 그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햇살이 공기가 대지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이듯, 그렇게 담담하게 사랑할 일입니다. 수백 마디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나는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는 결기있는 마음을 지닌 한 사람의 구도자로 임인년(壬寅年) 한 해를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