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고영
두 사람이 한 자전거를 타고
한 묶음이 되어 지나간다
핸들을 조정하는 남자 뒤에서
남자를 조정하는 여자
허리를 껴안고 중심을 잡는다
남자의 근육세포가
미세함 그대로
여자의 가슴에 전해진다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조정해가는
완벽한 합일!
지금,
세상의 중심이 저들에게 있다
- 시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문학세계사, 2009)
* 감상 : 고영 시인.
1966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습니다. 2003년 <현대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첫 시집으로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천년의시작, 2005)을 낸 후,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문학세계사, 2009), <딸꾹질의 사이학>(실천문학사, 2015) 등 세 권의 시집을 냈고, 감성 시 에세이 <분명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었던>(문학의전당, 2015)이 있습니다. <고양행주문학상> <한국 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천상병시문학상>(2016) 등을 수상했습니다. 2020년 9월호를 끝으로 폐간된 월간 <시인동네>의 마지막 발행인 겸 편집주간을 맡았습니다.
고영 시인은 2020년 4월, ‘달걀’이라는 시를 감상하면서 제 블로그에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https://blog.daum.net/jamesbae/13410888) 그런데, 애석하게도 바로 그 해 7월, 신인문학상 선발과 관련하여 ‘위계에 의한 권력 행사’ 논란에 휘말리면서 결국 당시 편집인 겸 발행인이었던 고영 시인은 문예지 <시인동네>를 일방적으로 폐간해버렸고, 이 일로 인해 기존 문단의 시인들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시를 쓰는 시인과 그 시인이 쓴 아름다운 시가 반드시 동일한 삶의 철학 위에 서 있어야 하겠지만, 이런 경우 오래 전 그가 쓴 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두 사람의 연인이 함께 타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광경을 보고 ‘사랑’을 노래한 시입니다. 앞에는 남자가 타고 뒤에 탄 여자는 그 남자의 허리를 껴안은 채 함께 달리고 있는 모습이 시인의 눈에는 ‘한 묶음이 된 완벽한 합일의 사랑’으로 보였나 봅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핸들을 조정하는 남자의 허리를 의심 없이 껴안고 한 묶음이 되어 지나가는 다정한 남녀의 모습은 알콩달콩 사랑을 나타내는 광경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실, 자전거를 타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서로 닮은꼴입니다. 더욱이 둘이 타는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은 알듯이, 뒤에 앉은 사람이 앞에서 핸들을 조정하는 앞 사람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으면 넘어지고 맙니다. 사랑도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면서 완벽하게 합일이 이루어져야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한 합일이 된 상태가 된 바로 그 순간, 자전거는 앞을 향해 나아가듯 사랑도 두 사람이 서로 합일이 되어야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 세상의 중심이 저들에게 있다’ 바로 이 시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 문장이요 이 시의 시적 은유일 것입니다. 완벽한 합일의 상태를 시인은 ‘남자의 근육세포가 / 미세함 그대로/ 여자의 가슴에 전해진다’는 달달한 시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미세함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서로 조정해 가는' 모습이 '완벽한 합일’의 사랑이라고 시인은 서슴없이 ‘느낌표(!)’를 쾅 찍었습니다. 서로 조정해가는 것이 곧 사랑의 가장 핵심이라는 것을 시인 자신 뿐 아니라 독자들도 느끼라고 윽박지르 듯 느낌표를 사정없이 찍어 놓은 것도 재미있습니다.
진정한 용서와 사랑이 이 땅에 왔음을 선포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흥청망청 연휴의 분위기만을 즐기는 이맘 때쯤의 세상 풍경이, 올 해는 코로나로 인해 조용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가 우리 인간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반짝이는 은륜 위에 꼭 껴안고 사랑을 가득 실은 채 세상의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는 광경,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조정해 가는 노력이 크리스마스의 계절에 필요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를 통해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했던 고영 시인이 이 시를 썼던 그 때의 그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세상을 향해서 따뜻한 사랑의 목소리를 다시 낼 수 있길 응원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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