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특별한 숙제 / 병원 앞 연못 - 김현숙

석전碩田,제임스 2021. 1. 27. 06:38

특별한 숙제

                                      - 김현숙

학교에 학생 수 점점 줄어든다고

재완이, 도현이, 요한이, 상대
정인이, 민영이, 윤지, 지수, 나

형제 없는 우릴 불러놓고
선생님은 특별한 숙제를 내주셨다

엄마한테 동생 낳아 준다는 확답 받아 오기!

그런데 숙제 해 온 친구
한 명도 없다

- 동시집 <특별한 숙제> (섬아이, 2014)

* 감상 : 김현숙 시인. 경북 상주의 곶감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2005년 <아동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터진다 외 11편’으로 제8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13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제21회 <눈높이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2014년에 첫 동시집 <특별한 숙제>를 낸 후 2020년 12월, 6 년 만에 두 번째 동시집 <아기 새를 품었으니>(국민서관)를 냈습니다.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정확하게 답변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혹자는 어린이들이 읽는 시라고 뭉뚱그려 말하기도 하고 또 어린이가 쓴 시를 동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분적으로 맞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답변들입니다.

1923년 3월 20일 소파 방정환이 우리나라 최초로 순수 아동 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하고, 그곳에 자신의 창작 동요인 ‘형제별’, ‘늙은 잠자리’를 발표하면서부터 동요나 동요 시들이 창작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문학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아동문학가로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동시란 무언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하면서 동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해 갑론을박을 거듭했고, 이원수, 이오덕, 이재철 등 나름 아동문학으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어린이를 주 독자로 하는 시이며, 둘째 어린이의 마음 상태에서 어린이다운 생각이나 눈으로 어린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이나 세계를 표현하는 시여야 하며, 셋째 어린이의 마음, 감정, 생각, 삶, 그 자체를 표현하는 시여야 하며, 넷째 어린이에게 주는 계몽적, 교훈적인 시라야 하는 것 등입니다. 즉, 동시란 어른이 어린이의 마음으로 어린이다운 정서와 생각, 심리에 바탕하여 쓴 시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동시도 어른이 쓴 ‘시’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요즘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어린이의 시각으로 표현한 재미난 시입니다. 형제가 없이 달랑 혼자인 학생들에게만 이런 숙제를 내 주는 선생님도 특이하고 재미있지만 이 숙제를 하기 위해서 그 날 저녁 학생들의 각 가정에서 벌어졌을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는 시입니다. 아마도 이런 숙제를 냈다고 SNS에 올려서 사회적으로 문제 삼았던 학부모는 없었으니 이 시와 이 시집이 아직까지(?) 무사한 것이겠지요?

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대학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잘 알려진 말입니다. 대한민국 대학들의 암울한 미래를 일컬을 때 자주 회자되는데 2 주 전, 올해 대학 입시 정시 모집 원서 접수를 마감한 후 또 다시 이 말이 언론에 등장한 걸 보았습니다. 올해 대학의 정시 경쟁률이 평균 3대1을 넘지 않는 지방대학들이 수두룩한데, 한 사람의 수험생이 가, 나, 다 군에 속한 대학에 한 번씩 지원할 수 있으므로 3대 1이 되지 않는 경쟁률은 결국 ’미달‘이라는 뜻입니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들은 그나마 평균 5대1이 넘는 경쟁률을 겨우 유지하긴 했지만 서울에서 먼 지방, 즉 벚꽃이 피는 지역에서부터 순서대로 이런 미달 현상이 점점 심화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학령인구의 절대적인 감소, 즉 저출산의 문제입니다. 어쩌면 ’특별한 숙제‘가 형제가 없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특히 대학에게 주어 진 특별한 숙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시로 이렇게 재미나게 표현한 시인의 시를 읽는 느낌이 새롭습니다. 이 작품을 대학에 근무하는 사람이 썼다면 ‘대학의 정시 경쟁률은 어떻고’하면서 어린 아이의 마음과 시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의 시선으로, 현학적인 시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시가 점점 어려워지고 난해해지는 요즘, 오히려 이런 심각한 문제를 동시를 통해서 재미나게 표현한 것이 훨씬 더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느 문학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인은 ‘좋은 동시를 쓰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시를 읽을 어린 친구들에게 순수하고 맑은 눈을 갖지 못해 미안하다고, 또 더 밝은 마음을 품지 못해 부끄럽다고 시인은 말했습니다. 동시를 쓰는 시인다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맑은 동시를 쓰되 이 시대의 흐름과 풍속도, 그리고 그 속에 스며 있는 삶의 애환을 놓치지 않고 시에 녹여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시집에는 고령화 시대에 늘어나는 요양원과 요양 병원의 풍경, 그리고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하는 자녀들의 현실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 본 시들도 눈에 띕니다.

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을 담아 자기만의 빛깔로 한 편 한 편의 ‘동시’를 건져 올리는 시인의 남다른 고민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또 다른 시 두 편을 덤으로 감상하면서 오늘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 석전(碩田)

꽃구경 다녀오다가

                                     - 김현숙

꽃구경 다녀오다가
엄마와 아빠랑 싸웠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나도 말 못하고
동생도 말 못하고

네비게이션 혼자 떠든다

- 우회전 하세요
- 유턴 하세요
- 속도를 줄이세요

- 동시집 <특별한 숙제>(섬아이, 2014)

병원 앞 연못

 

                                      - 김현숙

할아버지 입원하신 요양 병원 앞
작은 연못 하나 있는데요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그 연못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님을 돌보지 못한
아들딸들의 눈물이 고여서 된 연못이래요

어버이날 저녁에
할아버지 만나고 돌아오다
눈물 그렁그렁한 연못을 보았습니다

- 동시집 <특별한 숙제>(섬아이,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