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찰옥수수 / 오징어 - 김명인

석전碩田,제임스 2020. 8. 12. 06:35

찰옥수수

- 김명인

평해 오일장 끄트머리
방금 집에서 쪄내온 듯 찰옥수수 몇 묶음
양은솥 뚜껑째 젖혀놓고
바싹 다가앉은
저 쭈그렁 노파 앞
둘러서서 입맛 흥정하는
처녀애들 날 종아리 눈부시다
가지런한 치열 네 자루가 삼천 원씩이라지만
할머니는 틀니조차 없어
예전 입맛만 계산하지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지금은 꽉 차서 더 찰진
뽀얀 옥수수 시간들!

- 시집 <파문> (문학과지성사, 2005)

* 감상 : 김명인 시인.

1946년 9월, 경북(당시엔 강원도) 울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울진 후포고, 고려대학교(학.석.박사)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재학시절 고대신문사에서 주최한 전국대학생 문예현상공모에 시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출항제’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1981년 경기대에서 대학 교직에 몸을 담았고 1999년부터 모교인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12년 2월 정년퇴직하였습니다. 1975년 김창완, 이동순, 정호승 등과 <반시>동인을 결성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시집으로 <동두천>(문학과지성사, 1979), <머나먼 곳 스와니>(문학과 지성사, 1988), <물 건너는 사람>(세계사, 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문학과 지성사, 1994), <바닷가의 장례>(문학과지성사, 1997), <길의 침묵>(문학과지성사, 1999),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지성사, 2002), <파문>(문학과지성사, 2005), <따뜻한 적막>(문학과지성사, 2006, 시선집), <꽃차례>(문학과지성사, 2009), <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 2013),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민음사, 2015),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문학과지성사, 2018) 등이 있습니다. 1992년 김달진 문학상, 소월시문학상, 1995년 동서문학상, 1999년 현대문학상, 2001년 이산문학상, 2005년 대산문학상, 2006년 이형기문학상, 2007년 지훈문학상, 2010년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울진 평해 시장 골목에서 옥수수 장사를 하는 늙은 할머니 앞에, 치마를 입은 젊은 여학생들이 흥정을 하는 장면을 재미나게 묘사한 시입니다. 시적 은유로 쓰이는 소재는, 고르게 영글은 튼실한 옥수수와 튼튼한 여학생들의 종아리, 그리고 여학생들의 상앗빛 고른 치아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면서 시인 자신의 ‘꽉 차서 뽀얀 옥수수 시간’인 과거 추억을 소환해내는 시입니다. 굳이 ‘울진 평해 시장’이라고 한정 지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에게 있어서 잘 익어 속이 꽉 찬 옥수수는 그저 ‘옥수수’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양식이요 노동이요 젊은 시절 그를 참으로 힘들게 했던 하나의 장벽 같은 삶의 한 곡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찰옥수수를 보고 치열이 고른 건강한 젊은 미인을 떠올린 것은 시인이 찰옥수수를 통해서 세월의 속절없음을 느낀 탓입니다. 이제는 합죽이가 되어 버린 ‘쭈그렁 노파’와 ‘상앗빛 가지런한 이빨과 탱탱하게 살이 오른 날 종아리를 가진 젊은 처녀애들’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가격을 ‘흥정하는 광경’ 속에서 마치 한 세대와 다른 한 세대가 ‘인생을 흥정’하는 듯한 시적 모티브를 발견한 것입니다. 시인의 눈에는 쭈그렁 할머니도 한 때는 저런 찰진 옥수수처럼 ‘뽀얀 옥수수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도 아니고 ‘울진 평해 시장’ 내 고향의 장터이니까요.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이여! 그 눈부시고 뽀얀, 속살들이 어느 샌가 우수수 빠져 나가버렸으니 할머니는 그저 앞에 선 처녀애들의 ‘눈부신 젊음’에 예전 입맛만 계산할 뿐입니다. 평범한 ‘찰옥수수’라는 제목의 시이지만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세월의 흐름에서부터, 한 늙은이가 살아 온 삶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아내는 시가, 찰옥수수 같이 깊은 단맛이 나는 이유입니다. 이 장면을 뒤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니 더더욱 그 단맛 끄트머리로 다가오는 ‘쓸쓸한 맛’이 동시에 나는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에게 있어서 고향 울진은 언제나 떠나야만 했던 답답하고 좁은 곳이었으며 또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와도 늘 정을 붙이기 쉽지 않은 장소였나 봅니다. 젊은 시절 시인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맥들이 줄지어 서쪽을 가로 막고, 동쪽은 망망대해 동해 바다가 막고 있는 꽉 막힌 동네쯤으로 인식했으니 말입니다. 시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열병으로 시를 앓던 젊은 날은 안팎으로 삶의 남루를 겪어내야 했던 고단한 시절이었지만 시에 기대어 사는 일로 나는 위무(慰撫)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시 쓰기는 애초부터 질문을 넘어서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시를 향했던 이 원초적인 그리움은 내 태생의 환경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다와 산맥으로 가로막힌 내 고향 영동의 기막힌 자연과 척박한 살림살이, 그리고 유년시절의 배고픔을 통해 일깨워진 본능적 감각과 일상으로 마주쳐야 했던 무한도피에의 열망을 자극하던 가없는 바다, 동해. 태생과 성장기의 아픈 흔적들로 어우러진 바닥 모를 그리움은 나의 시 쓰기 이전부터 내 문학에 스며들었던 자양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징어배가 새벽에 들어오면 서둘러 선창으로 나가 생 오징어를 오백 두름이나 받아다가 사나흘에 걸쳐 배를 따서 말려야 했던 어머니. 그 곁에서 하릴없이 오징어 창자들을 만지며 암울한 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시인입니다. 그가 이 공간을 벗어나는 길은 산맥을 넘어가거나 바다로 나아가는,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어번기'를 맞아 그는 울릉도 쪽으로 나가는 오징어잡이 배에 올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이 길을 택한 동년배 친구들은 이미 바다에 익숙해져 제 몫을 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혹시 바다 쪽 탈출구를 곁눈질해 볼 요량이었는데, 그는 3시간 내지 4시간을 나가 오징어들과 겨룰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멀미에 시달리다가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선실에서 초죽음 상태로 누워 있다가 간신히 기운을 차려보니 모든 작업을 마치고 귀항하는 뱃전 너머로 새벽녘 후포항이 내다보였습니다. 그의 인생길이 바다 쪽으로 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호시탐탐 산맥을 넘어가는 일만 남았던 것입니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그리고 바다에서 나는 오징어 등은 강원도, 특히 동해와 맞닿아 있는 울진 평해에서 나는 대표적인 먹거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이런 모든 것들이 특별한 감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첨이자 마지막으로 탔던 오징어잡이 배의 체험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는 시 ‘오징어’도 어쩌면 오늘 감상하는 시처럼, 그저 오징어를 묘사하는 단순한 시라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 ‘오징어 배’를 탔던 그 어느 날에서부터 서울이라는 대도시로 진출하여 ‘30년 저 쪽’까지 평생을 그리움과 외로움에 천착하며 살았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징어

- 김명인

영해 지나면 삼십 년 저쪽
오징어 덕장을 다시 만난다, 어깨 겯고
갈바람에 몸 트는 저 수많은 꼬리 煙燈,

새끼줄에 꿰인 사행길 하나 잡아 당기면
그 끝으로 끌려오는 건너편 岬,
일생을 두고 출렁거린 문답이
더 따라오지 못하고 희미하게
눈높이 수평선에 걸려버린다

오징어는 다족류다, 저마다의 물길로 한 몸
부풀게 하던
미망 속으로 뻗친 문어발 시간들,
어둠 저쪽 불 밝힌 집어등을 보고
서로 잡아당기는 욕망 한곳으로 모아 미늘도 없는
낚시를 덜컥 물어 늦가을
차창으로 치장되지만

몸의 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갈 길 저무는데
마음 속 등대도 꺼져버린 고향 언저리,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며칠째 온몸 메마르게 한다

- 시집, <바닷가의 장례> (문학과지성사, 1997)

즘 같이 여름 휴가철, 시골 읍 면사무소가 있는 국도 길을 운전하다보면 도로 옆에서 옥수수를 쪄서 파는 가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야 그런 음식이 비위생적이라고 하겠지만 배고픈 시절을 살았던 세대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그냥 지나치면 섭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전 입맛’을 통해서 아련한 옛 추억인 ‘뽀얀 옥수수 시간들’을 꼭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아마 모르긴 해도 시인처럼 ‘꺼져 버린 마음 속 등대’에 다시 불을 켜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루한 장마가 끝나는 이번 주말, 매년 그랬듯이 온 가족이 모여서 하는 벌초를 위해서 짧은 고향 나들이를 할 예정입니다. 길가에서 파는 성주 참외며, 찰옥수수 가게를 만나면 못 이기는 척 차를 세워 옛 추억을 소환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