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 감상 : 이문재 시인.
1959년 경기도 김포(지금은 행정구역상 인천시 서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잘 알려 진 그는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문학동네, 2014), <산책시편>(민음사, 2007), <마음의 오지>(문학동네, 2011), <제국호텔>(문학동네, 2012),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문학동네, 2003),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호미, 2009) 등이 있습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교수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경향신문에 [이문재의 시의 마음]이라는 고정 컬럼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문재 시인은 생명과 환경의 가치를 내세운 생태시(生態詩) 운동을 이끄는 대표적인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생태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서정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연달아 수상했습니다. 도대체 생태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가 이런 큰 상을 탈 때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를 들어보면 어렴풋이 감이 잡힐 듯 합니다.
‘그의 시는 도시의 일상에 갇힌 몸에서 출발해 걷기와 느림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지구촌의 새로운 생활감각을 재치있게 반영하면서 세속적인 인간 내면에서 성(聖)스러움을 찾아가는 시로 평가 받습니다. 시인의 생태시는 자신의 몸에서 타인과 자연, 지구촌을 거쳐 저 멀리 우주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을 확장하는 시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감상하는 시는 근원과 관계를 성찰하는 그의 생태시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필연적으로 만나야 하는, 우리들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할 지에 대한 힌트를 던져주는 ‘시’입니다. 떠들썩하게 소리 내어, 기도원 주변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뿌리째 몇 그루 뽑아야 기도를 좀 했다고 할 수 있다고 자랑삼아 주장하는 여느 부흥 강사 목사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기도를 그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로 시작되는 그의 시가 던지는 화두는 의미심장합니다. 아마도 그가 평생 삶의 경구(警句)로 삼고 있다는 ‘조금 알면 오만해진다, 조금 더 알면 질문하게 된다, 거기서 조금 더 알게 되면 기도하게 된다’는 내용을 시로 표현한 듯이 말입니다.
시인에 의하면,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하는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에 의하면 기도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시어’들을 읽다보면 그가 말하는 기도는 자기가 바라는 욕망이나 소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충만해지고 자신을 성찰하는 지금 여기(Here & Now)에서의 마음’이 바로 숭고한 기도라는 사실을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려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바다와 섬과 하늘, 그리고 온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지금 여기’에서의 순간을 의식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지리적으로는 먼 곳, 시간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흘러 온 '강물의 흐름'을 깊이 돌아보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성찰의 순간이 바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상투적으로 건네는 안부 인사 중 하나가 바로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저도 이 말을 가끔씩 할 때마다, 별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의례적으로 날리는 말인 ‘다음에 식사나 한 끼 합시다’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합니다. ‘지금 여기서’ 실천하지 않으면 그 말들은 다 허공에 사라지고 마는 공수표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래서 ‘위해서 기도하겠다‘ 는 말 대신에, 당장 그 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저 소소한 마음 씀 - 때로는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그리고, 벌레가 날개 치는 소리를 엿듣기만 해도, 한 겨울 황소의 뜨거운 입김을 또렷이 보기만 해도, 또 욕심을 부린다면 가끔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사랑한다’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를 생각해주기만 해도 - 그 마음 씀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좋은 시 한 편이 세상의 한 귀퉁이를 따뜻하게 덥히고 또 환하게 밝힐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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