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시
- 정일근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숭어 새끼는 동어,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 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 시집 (시학,2006)
* 감상 :
정일근 시인은 1958년 7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으며 경남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1984년 에 ‘야학일기’ 등 7 편의 시를 발표했고,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라는 시로 당선, 등단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중등학교 국어 교사, 문화일보와 경향 신문 등 사회부 기자로도 활동하는 등 울산 및 경남 지역에서 사회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인 시인이며 작가입니다. 현재는 경남대 석좌교수로 있습니다.
시집으로 (1987), (1991), (1994), (1995), (1998), (2001). (2003), (2005), (2006), (2009), (2013), (2015), (아시아출판사, 2019,한영대역) 등이 있으며 동화집으로 (2014) 등 4권이 있습니다.
정일근 시인은 그동안 그의 시를 몇 편 함께 감상했기 때문에 익숙한 시인입니다. 지난 2005년 12월에 ‘어머니 날 낳으시고’라는 시를, 2013년 3월에 지인 몇 분과 천마산을 오르던 중 산책 코스 중간 중간 매달아 놓은 시 소개 팻말 ‘갈림길’을 감상했고, 가장 최근에는 지난 해 5월, ‘조사와 싸우다’는 시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참으로 이쁘고 착한 시입니다. 시냇물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보면서 시인은 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서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이 너무도 기발하고 이쁩니다. 그 생명들이 자유자재로 원고지를 오가면서 자신의 맨 몸이 착한 시어가 되어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라고 은유한 표현이 탁월합니다.
시인이 물고기들이 물이라는 원고지에 맨 몸으로 시를 쓴다는 ‘시적 은유’로 노래하면서, 온 몸으로 시를 쓰는 그 것이 ‘착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시의 본질을 벗어나 약간의 욕심을 부렸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를 쓴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욕심 부리면서 잔뜩 움켜쥐고 있는 세상의 추잡한 탐욕들을 자기 자신도 놓치 못하고 있으면서 ‘시를 쓰고입네’하면서 거들먹거리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표현한 건 아닐까.
시인이 나열한 물고기 새끼를 부르는 낱말들이 모두 분명 우리말이긴 한데, 생전 첨 듣는 이름도 참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관심 없이 지나쳐 온 게 많다는 말입니다. 젊은 시절 가끔씩 옛 친구들이 모여 1박을 할 때면 놀이로 하게 되는 ‘고스톱’ 게임을 다른 말로 ‘고도리’라고 부르는 줄만 알았지 고등어 새끼를 ‘고도리’라고 부르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명태가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알았지만 그 새끼를 ‘노가리’라고 부르는 줄도 미처 몰랐습니다. 물고기들의 새끼를 부르는 말이 의외로 참 앙증맞고 ‘이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쩌면 시인이 그들의 헤엄치는 모습이 마치 ‘물’이라는 원고지에 자유롭게 시를 쓰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는 순간 더 이쁘게 다가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들이 시를 쓰는 시인인 이상,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의 이름이 어떤 시인의 이름보다도 더 빛나는 이름이 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며칠 전 모래내 시장을 가기 위해서 사천교를 걸어서 건너다가 다리 밑을 내려다 봤더니, 홍제천 개울물에 어른 팔뚝보다도 더 큰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유영(遊泳)을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피라미들이 떼를 이뤄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가 좋은지요. 모래가 쌓여 홍수 철이면 늘 범람했던 홍제천을 개발하면서 양쪽에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등을 내고 물고기들이 살 수 있도록 중간 중간 신경을 써서 작은 간이 보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번잡한 도회지 한 가운데서 이런 평화로운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그 고기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우리 부부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회지 생활이다 보니... 사실, 그동안 우리 국토는 각종 난개발이 진행되면서 농촌이 되었든 도시가 되었든 하천의 물이 말라 야생 민물고기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시인이 노래했듯이 물에서 물고기가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물고기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착한 시’들이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유를 잃어버리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그저 하나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 그런 삶 속에서 시가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갑자기 오래 전 의미있는 화두를 던져주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어른들의 무리한 욕심, 그리고 학교라는 조직과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이 아닌 것을 강요하는 기득권자의 탐욕 등을 향해서, 온 몸으로 ‘착한 시’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그려 낸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했던 대사, ‘Thank you boys. Thank you!’라는 말을 오늘 이 시를 쓴 정일근 시인에게 꼭 말하고 싶습니다. 바쁜 일상의 시간 속에서, 물 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의 몸놀림을 ‘착한’ 시라고, 그리고 그 어미와 새끼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는 여유를 가진 시인의 마음이 무엇보다 착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짤막한 시 한 편으로 ‘착하고 이쁜 ’화두를 던지면서 스스로 시와 한 몸이 되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모습이 참 고맙기 때문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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