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
- 안도현
어제도 나는 강가에 나가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오시려나, 하고요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는 말은 가슴으로 눌러두고
당신 계시는 쪽 하늘 바라보며 혼자 울었습니다
강물도 제 울음소리를 들키지 않고
강가에 물자국만 남겨놓고 흘러갔습니다
당신하고 떨어져 사는 동안
강둑에 철마다 꽃이 피었다가 져도
나는 이별 때문에 서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꽃 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도란도란 열매가 맺히는 것을
해마다 나는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이별은 풀잎 끝에 앉았다가 가는 물잠자리의 날개처럼 가벼운 것임을
당신을 기다리며 알았습니다
물에 비친 산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던
그 뻐꾸기 소리가 당신이었던가요
내 발끝을 마구 간질이던 그 잔물결들이 당신이었던가요
온종일 햇볕을 끌어안고 뒹굴다가
몸이 따끈따끈해진 그 많은 조약돌들이
아아, 바로 당신이었던가요
당신을 사랑했으나
나는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오늘은 강가에 나가 쌀을 씻으며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 밥 한 그릇 맛있게 자시는 거 보려고요
숟가락 위에 자반고등어 한 점 올려 드리려고요
거 참 잘 먹었네,그 말씀 한 마디 들으려고요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
그리운 당신이 오신다니
-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현대문학북스, 2001)
* 감상 :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임을 그리워하며 만남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내용의 연애시입니다.
이 시는, 중학교 1학년 때 생애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고, 그녀가 사는 마을 하늘 쪽을 쳐다보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생각나게 합니다. 연애 편지에 슬쩍 인용해서 사용할 멋진 표현들이 주렁주렁 가득 차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이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시 때문일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정상 회담의 방북단 멤버의 일원으로 지금 평양에 가 있는 안도현 시인. 그의 투철한 역사의식 등을 감안하면 이 시를 이 땅 한반도에 우리가 그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평화'와 '통일'이 기다리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그 의미를 확장하여 해석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모쪼록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이 잘 마무리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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