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장
- 김나영
공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곁에서 서성거리던 바람이 가끔씩 책장을 넘긴다.
길고 지루하던 산문의 여름날도 책장을 넘기듯
고요하게 익어가고
오구나무 가지 사이에 투명한 매미의 허물이 붙어 있다.
소리 하나로 여름을 휘어잡던 눈과 배와 뒷다리의 힘,
저 솜털의 미세한 촉수까지도 생생하게 붙들고 있다.
매미의 허물 속으로 입김을 불어넣어 주면
다시 한 번 여름을 공명통처럼 부풀려 놓을 것만 같다.
한 떼의 불량한 바람이 공원을 지나고
내 머리 위로 뚝 떨어지는
저 텅 빈 기호 하나,
정수리에서부터 등까지 북 내려 그은
예리한 저 상처.
* 시 감상 : 늘 지나 다니는 사무실 옆 어린이 공원 길.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와는 이제 서로 눈 인사를 할 정도로 안면이 익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청소를 하다말고 지나가는 저에게 먼저 말을 건넵니다. "매미가 참 불쌍하다"고.
"오늘은 바람이 불어서 나무에서 떨어 진 매미가 여럿인데요, 그 매미를 개미들이 뜯어먹고, 어떤 매미는 까치가 파 먹고...빈 껍데기 밖에 없는 것들이 불쌍해요."
매미 빈 껍질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나무에 붙어 있고, 도회지의 공해 때문인지 건강하지 않은 목청으로 마지막 울음까지라도 쏟아내는 소리가 애달프게 들리는 아침입니다. 시인 누군가가 이런 비슷한 상황을 노래했을 법도 해서, 시를 검색해보니 김나영 시인의 '여름의 문장'이라는 제목의 시가 눈에 띕니다.
바로 엊그제까지 우리를 엄습했던 폭염도 이제는 한 풀이 꺾인 듯합니다. 그리고 그 성하의 여름이 긴 산문이었다면, 그 속에서 힘차게 합창했던 매미들은 하나의 작은 문장이며, 작은 기호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 기호가 힘 없이 내 앞에 텅 빈 채 뚝 떨어지니, 아주머니의 눈에도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겠지요.
간 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바람이 유난히 시원한 오늘,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마지막 매미들의 합창 속에서 가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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