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가시 - 정호승

석전碩田,제임스 2018. 6. 26. 11:51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


*


장미가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서 비를 바라보던 나에게 토닥이며 말합니다.

 

나 같은 인생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에게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고 인생에서 가장 날카로운 고통을 겪고 나면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내 귀에 속삭입니다.

 

나는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뽑으려다가 슬며시 그만둡니다. 피눈물을 먹은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하르르 하르르 피어나고 있습니다.

 

늘 하던대로 점심 식사 후, 극동방송 지하 카페에 가서 테이크 아웃 아메리카노 냉 커피 한 잔을 신청해 들고 오면서, 오늘 아침 읽었던 정호승 시인의 시를 다시 한번 읽어 봅니다.

 

우리의 삶의 길에서, 평생 내 가슴에 피 눈물 흘리게 한 가시는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번 뽑아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게 허사를 경영하는 것 같은 일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슬며시 내려 놓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이맘 때 내리는 초여름 장맛비를 매우(梅雨)라고 한다지요. 세차게 내리는 매우를 바라보면서 감성에 젖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