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마음을 여는 시] 환하다는 것 - 문 숙

석전碩田,제임스 2017. 8. 29. 17:49

어제 저녁, 고향의 동창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비보를 받고, 퇴근 후 친구들 몇명이 가을비를 맞으며 조문을 갔습니다. 광명 철산동에 있는 조그만 병원 영안실엔 황당한 비보를 듣고 달려 온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비좁았습니다.  

 

옆에 있는 다른 영안실이 마침 비어 있어 다행히 그 많은 조문객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식사라도 챙겨줄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황망히 먼저 간 친구를 생각하며 둘러앉은 우리들은 이런저런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었지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 중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친구가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 삶의 고민들과 염려들이 참 많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삶의 무게들을 소통하면서 지낸 친구들이 몇명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들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본인 스스로 감당했어야 했는데, 그게 결국 쉽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없이 환하게 잘 사는 것 같지만 화려한 이면에는 각자 나름의 어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화려한 꽃 그늘 뒤에 누군가 고통하며 눈물 흘리는 것까지도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아침 하늘을 보니 어제 저녁 그렇게 퍼붓던 비는 그 새 그치고 가을 하늘이 환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시가 다가 왔습니다  

 

삼가 친구의 영전에 이 시를 바칩니다.  

 

[마음을 여는 시]   

 

환하다는 것은  

 

- 문 숙  

 

중심이 없는 것들은 뱀처럼 구불구불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며 길을 간다  

능소화가 가죽나무를 휘감고  

여름 꼭대기에서 꽃을 피웠다  

잘못된 것은 없다  

시작은 사랑이었으리라  

 

한 가슴에 들러붙어 화인을 새기며  

끝까지 사랑이라 속삭였을 것이다  

꽃 뒤에 감춰진 죄  

모든 시선은 빛나는 것에 집중된다  

환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꽃을 피웠다는 말  

낮과 밤을 교차시키며  

지구가 도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돌고 돌아 어느 전생에서  

나도 네가 되어 본 적 있다고  

이생에선 너를 움켜잡고  

뜨겁게 살았을 뿐이라고  

한 죽음을 딛고 선  

능소화의 진술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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